Day 2015.11.15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남긴 쪽지의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거론된 인물들은 지금 인천경찰청장, 여당중진의원, 서울고검장, 서해그룹의 부회장등 이 사회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일개 에디터따위가 밝힐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유력일간지 보도국장이라고 하더라도 이 걸 밝히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누가 그걸 믿겠는가. 소윤이한테 털어놔볼까? 아니야..이건 생각보다 훨신 위험한 일이 될수도 있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알고 계실리가 없겠지.
대체 아버지가 수사하던 것은 무엇이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의 쪽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이들은 실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던 사람들이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책상앞에 앉았다. 95년에서 97년까지의 공개된 기록을 먼저 확인해봐야할 듯 하다. 조용하던 방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소윤이다.
"오빠!"
"응"
"뭐가 그리 시큰둥해? 안반가워?" 현은 스마트폰을 스피커상태로 바꾼다.
"아니야 뭐좀 하느라고 그래."
"그래? 바뻐? 오늘 집에 있을거야?"
"잠깐만 내가 뭐좀 빨리 할 게 있어서 그렇거든?..있다가 전화할께."
"알았어. 점심 챙겨먹고."
"응 소윤이도."
검색해보니 이해진 인천경찰청장은 당시 막 총경을 달고 강남경찰서장에 오른 상태였고 강남에서 나와 2선에 당선된 김풍규 국회의원, 당시 부장검사였던 김광용, 서해그룹 계열사 서해유통의 기획실장 최치호...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나이로 보아 동창이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김광용과 이해진만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고 다른 사람들은 출신학교도 달랐다. 우선 민성우라는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 될 듯 하다. 폰을 들어서 아는 지인중 경찰로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전화를 걸자 건너편에서 벨소리 대신 스콜피언즈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런 취향이었나?
"오래간만이다."
"그래 효식아 어떻게 지냈어?"
"나야..회사다니고 그렇지 뭐."
"요즘 별다른 이슈는 없지?"
"그치 뭐. 너는 어때?"
"나도 별일은 없어. 효식아 뭐 하나좀 부탁하자."
"뭔데? 니네 경찰 DB에서 사람 금방 찾을 수 있지?"
"그거..잘못했다가 큰일나. 왜? 누구 찾을 사람있어."
"아니 어릴때 도움받았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경찰이거든. 찾을려는데 좀 힘드네."
"그래? 이름하고 어디서 일했는지는 알아?"
"97년경 영등포 경찰서 형사계에서 일했던 민성우 경위라고 지금도 일하는지는 몰라."
"잠깐만..."
"오늘 일하는 날이야?"
"응..지금 나와있어. 민성우 경위라. 세 명 나오는데 당시 영등포 경찰서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강동서 생활안전과에서 있네."
"고마워. 가끔 생각났는데 이제야 찾았네. 내가 다음에 술한잔 살께."
"그래..언제 함 보자."
"수고하고 내가 연락할께."
전화를 끊은 현은 강동서 생활안전과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세번쯤 울렸을까.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활안전과 김수진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 거기에서 민성우씨가 일하고 계시나요?"
"민성우 경감님이요? 예 지금 단속나가셔서 안계시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 언제 사무실에 계시나요?"
"무슨일때문에 그러시죠?"
"프리미어 매거진의 최현 에디터인데요. 다음달 기사에 대한 기획취재를 하는데 생활안전을 담당하고 계시는 그런 현장분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요."
"아 그러시구나. 18일에 오시면 사무실에 계실거에요."
"예 감사합니다."
아마 그 사람에게는 내 이름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쪽지를 보여주고 이야기해도 되는건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버렸는데 변하지 않았을까. 세월은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을 변화하게 만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위험에 대해서는 최대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를일이다. 그리고 찾아도 별다른 증거자료가 없으면 소용없는 짓 아닌가.
"현아 점심 먹어." 벌써 점심시간인가. 시간이 빠르긴 빠르네. "예 내려가요."
"어 경희 안나갔어?"
"응..리포트때문에 못나갔어."
"잘 먹겠습니다." 수저를 들며 김치찌개를 한 수저 떠먹는다. "역시 이모의 음식솜씨는 좋은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리포트인데 그래?"
"서양의 성과 한국의 궁궐을 비교하는 머 그런거야..문화나 양식 같은거 말야. 오빠 머 그런거 취재한 적 있어?"
"성은 모르겠고 궁궐은 한 번 한적 있는것 같아."
"주제가 뭐였는데?"
"서양의 성이나 조선의 궁궐은 원래 그 시대에 최고의 기술, 자재, 격식을 갖추고 지어진거잖아. 궁궐은 왕실 가족만의 공간이기도 했는데 동시에 행사장으로 사용되었거든. 그리고 사극에 출연한 배우들의 컨셉사진 촬영과 함께 용장식, 봉황 장식, 다양한 용모양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었던 것 같아. 나중에 기사 찾아서 보내줄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응 고마워."
경희에게 좀더 도움을 주고는 싶었지만 머리속에는 온통 아버지의 쪽지내용이 가득했다. 설사 그들의 숨겨진 사실을 알아낸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바위에 계란으로 내려치는 꼴이다. 만약 그들에게 꼭 숨겨야만 하는 그런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든 간에 입막음을 시도 할 것이다. 재력, 권력, 사법이 더 강해진 지금 나정도를 매장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사고로 죽던날도 무언가 이상했던 것 같다. 목격자가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곳에 어머니가 갔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다. 대체 그곳에는 왜 가셨던것인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이 모든 궁금증이 한꺼번에 폭팔하듯이 머리속을 뒤집어 놓는것도...
난..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잊혀지려고 모든 것을 외면했던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