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산리 유적

대전 선사박물관

역사 속에서 생존만 하면 되던 시대를 생각하면 신석기시대까지 일 것이다. 무기로서 활용되고 군대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돼서 철기시대에 이르러 문명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선사시대(prehistory)에는 기록이 없기에 문자를 사용하는 역사시대(history)와 대칭된다. 보통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까지 포함이 된다. 문명의 역사에서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물이 적지만 선사시대의 유물은 상당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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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동을 시작한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대전 선사 박물관은 선사시대에 사람들이 터가 좋은 대전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 선사박물관은 비교적 늦게 발굴이 된 대전지역의 매장문화재를 구석기부터 철기까지 4개의 전시실로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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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상설전시실은 구석기 문화관, 신석기 문화관, 청동기 문화관, 철기 문화관으로 구분되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체험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갖추어져 있는데 기획전시실에서는 제주 고산리 유적 기획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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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은동은 거쳐가는 곳이어서 안쪽까지 들어가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는 지나치는 길이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다. 선사시대를 살펴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시대를 살았을 사람들은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시절에 살던 사람들도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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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비슷한 것은 무언가를 그리고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의 눈높이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교육공간에서는 퍼즐 맞추기, 돌려보기 큐브, 무덤 체험, 스탬프 찍기 등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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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를 만드는 것은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흙을 반죽하고 나름 구우면서 성공하기까지 수세대가 흘러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볼 수 있도록 체험관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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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는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현재 사적 제412호로 지정된 그곳의 유적은 1987년에 알려졌고 고산리 유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바로 '고산리식 토기'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는 '고산리식 토기'에는 식물성 섬유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토기는 아직까지 제주도에서만 발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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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유적인 대전에서 만나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받게 했다. 지금 보는 유적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척이나 낯선 것들이다. 복합적인 문화양상을 띠고 있다고는 하나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오래던에 사용했을 원시적인 도구나 토기에 지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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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에는 토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석기도 출토되었다. 석촉, 찌르개, 새기개, 새석핵 등의 성형석기는 발달한 수렵 중심의 생업 체제를 유지한 집단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으며 동북아 전체의 전환기 특징인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 세삭인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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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이렇게 많은 신석기 유적이 많은지 몰랐다. 고산리 유적을 비롯하여 용수리, 월령리, 비양도, 외도동, 이호동, 도두동, 어영, 병문천, 한천, 아라동, 산지천, 삼화지구, 삼양동, 북촌리, 동북리,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한동리, 면수동, 종달리, 우도, 다랑쉬, 수산벌라리등 여행으로 가본 곳도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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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 · 홈날석기 · 긁개 등 단지 깨진 돌이라 생각했던 각 석기들이 실제로는 가공을 위한 최적의 모양이었음을 확인해볼 수가 있다. 고산리 출토 토기는 고산리식 토기, 무문 양토기, 용기문토기, 점열문토기, 압날문토기 등이 있으며 용기문토기는 겉면에 흙으로 만든 띠를 붙여 장식한 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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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에서 선사시대를 다루는 연구 분야를 선사학 또는 선사고고학이라고 부른다. 선사인들은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갔기 때문에, 의·식·주가 중심이 되는 문화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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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경우 철기시대 전기 말인 서기전 194년을 선사시대로 보고 있으며 중국은 서기전 1,750년대인 상(商)나라, 영국은 로마가 침입한 서기 전후 시기로 시저의 서기전 56년, 클라우디우스의 43년 이전이 선사시대로 보고 있다. 그 후는 역사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문명이 비교적 늦게 발달한 잉카나 아즈텍의 경우 늦은 시기에 역사시대로 진입하고 결국에는 문명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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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산동의 선사 유적지만 아는 대전분들이 많지만 그 외에도 용호동, 구즉동, 가수원동 유적에서 발견된 구석기 문화, 둔산동 유적에서 발견된 신석기 문화, 용산동, 상대동, 관저동, 복룡동 유적의 청동기문화, 용계동, 도안동, 판암동 유적에서 발견된 철기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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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에 남아있는 사용흔을 통해 사용한 나무의 수종과 도구의 목적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선사시대 도구의 높은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다. 날카롭게 가공한 석기는 나무로 된 손잡이인 자루를 만나 인간 신체의 외부 영역으로 도구를 확장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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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좁은 놋단 검·청동단검(靑銅短劍)이라고도 부르는 한국식 동검도 나온다. 한국식 동검은 몸통 가운데 굵은 허리가 있어 비파형 동검이나 중국식 동검·오르도스 동검과는 그 모양이 다르다. 이 동검은 대전 괴정동, 화순 대곡리의 돌널무덤 등 주로 무덤 유적에서 청동 투겁창[銅鉾]·청동 꺾창[銅戈] 등의 무기류, 청동거울·청동 종방 울[銅鐸]·방패형 동기(防牌形銅器) 등의 의식 용구와 함께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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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 시기의 공간을 재현해놓은 것은 부뚜막이다. 이와 같은 화덕이 오늘날의 것과 비슷한 부뚜막으로 발전한 것은 고구려 시대에 들어와서부터로 추측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 부뚜막을 그 기능으로 보아 다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부뚜막은 부엌 가운데에서도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겨왔다. 이곳에 조왕신을 모셨으며 사람이 걸터앉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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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선사시대의 중심에 있던 흔적은 대표적인 곳으로는 둔산동, 관평동, 송촌동에서 발굴이 되었다. 세 곳 모두 택지개발공사 중에 발견이 되었는데 둔산동 신석기 유적은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흔적과 관평동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편, 송촌동에서는 신석기시대뿐만이 아니라 백제시대 유적이 확인되었다.


대전 선사박물관 발굴 유물 특별전

제주 고산리 유적 처음 만난 토기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로 126

2018.11.30 - 2019.02.28

2층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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