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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3. 2019

예술과 일상

창원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공간

문신과 최성숙은 40여 년을 함께한 부부 예술가이다. 창원에 살면서 창원을 사랑했고 창원에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자신이 예술작품으로 평생 벌은 것을 시민들의 예술과 일상을 위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 문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말 그대로 문신(타투)과 관련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원의 예술가인 문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상 조각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한국 미술 조각의 세계 진출을 주도하였으며 조각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탐구자 한 사람이 문신이다. 회화와 조각을 병행해 일찍이 현대 미술에 종합 장르 개념을 도입했고, 작품에 있어서 크기의 감각과 생명적 이미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

지금은 창원으로 통합이 되었지만 문신의 출생지인 예전 도시 이름인 마산에서 태어났다. 일본과 프랑스를 거치면서  파리 북쪽의 라버넬 성 보수작업을 맡으면서 공간적 구조물에 관심을 기울였고 조각가로서의 새 길을 걷게 된다. 

그와 그의 부인의 작품들이 문신미술관에는 전시되고 있었다. 서로 맞고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동화된다. 

문신과 함께한 최성숙은 전통 한국화의 화법과 양식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녀는 한구고가 유럽의 아름다운 풍물, 주변의 소소한 일상, 십이지신을 작품의 소재로 택하여 자연관찰을 통한 본인만의 조형언어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흔하게 보던 일상을 그린 것 같기도 하지만 섬세함이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예찬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라던가 즐거운 경험을 녹이려고 하는 것이 눈에 뜨인다. 

문신에게는 일상이 곧 예술이었지만 최성숙에게는 일상은 예술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부부의 삶의 방식이었다. 

올림픽 조각공원에 대형 조각물을 세우기도 했던 문신은 이탈리아 국제 야외조각전을 비롯해, 파리 알베르 화랑 개인전, 유럽 순회 회고전(1990~92)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순수 추상 조각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며, 프랑스 예술 문화영 주상을 받았다.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예술과 일상전은 작년 10월 26일부터 오는 3월 20일까지 문신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두 작가이며 부부는 순수하였으며 예술 외의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문신과 최성숙은 무려 23년의 나이차가 있었지만 교감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나이차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나이가 아무리 적더라도 노회 되고 고정관념에 물들어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사람의 삶을 조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위대한 독창성은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세 가지의 근본적인 질이 융합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능력이 만들고 나아가는 것은 사람의 몫이며 의무다. 문신이 태어났을 때는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강점기의 아픔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던 잡초 같은 서민들의 삶도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를 살아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아픔만을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신의 작품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1994년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경상남도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개관했으며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대한민국 문화훈장이 추서 되었다. 문신의 공구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발전하면서 성장하는 구조의 방법론에서 생명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 느껴진다. 조각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과 사람의 성심을 만들어가는 것에는 같은 느낌을 받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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