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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3. 2019

탄생 (誕生)

진천 김유신 장군 탄생지

탄생 (誕生)과 출생 (出生)은 같은 의미이면서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생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출생,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것을 탄생이라고 한다. 특정 인물이 태어날 때 탄생이라고 하는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보존되는 경우도 있다. 약 1,500여 년 전의 인물인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진천에 있었다. 태어날 때의 태실까지 보존되어 있으니 진천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만하다.

신라라고 하면 화랑정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 바로 옆에는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가 조성이 되어 있다. 화랑무예에의 정수는 화랑 검법에 있는데 화랑 검법 회검(懷劍)의 형(形) 제1본 우수불(右受拂)은 정면에 앉아 있는 적이 소도(小刀) 혹은 대도(太刀)를 뽑아 정면으로 베어 오고 있으므로 나는 회검(단도)을 세로로 뽑아, 적의 대도 혹은 소도를 나의 머리 앞 위쪽에서 오른쪽으로 받아 재낀다.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에는 연곡리석비와 화랑정, 김유신 장군 태실과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까지 자리하고 있다. 보통 태실은 태봉(胎封)이라고도 하는데 태실은 대개 대석·전석(磚石)·우상석(遇裳石)·개첨석(蓋檐石) 등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태실이다. 

지금도 지자체 등은 기업이나 공사 등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예전에는 태실을 자기 지방에 유치하고자 지역 간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방의 태실의 설치는 군현 명호의 승격·위상과도 밀접히 관련되었고, 영역 확대 등의 특혜가 있다. 

크고 작은 생명이 든 간에 태어나는 것은 모두 그 의미가 있어서 일 것이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는 ‘김유신 장군 유허지(金庾信將軍遺墟址)'과  김유신 장군 태실은 ‘김유신 태실 및 돌담’이라는 명칭으로 1999년 6월 11일에 이 둘이 합해져 사적 제4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앞에 보이는 터가 담안 밭으로 김유신이 태어난 곳으로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 큰 담을 쳤다 하여 '담안 밭'이라고 불리고 있다. 

탯줄은 어미가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감성을 교류하는 통로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태에는 아이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하여 출산 후에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혼자는 못하고 함께할 상대가 있어야 하며 총 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운 과정을 거친 관계를 지나 자손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태어난 갓난아기의 탯줄인 ‘태’(胎)가 생기면 돌로 태함(胎函)을 만들고 그 안에 태를 담은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도 함께 묻었다. 자손의 무병장수를 빌었던 김서현 장군과 그 어머니의 정성으로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김유신이 있지 않았을까. 


김유신 장군 탄생지 :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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