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2-03

2015.11.16

오후 4시경 취재를 핑계로 사무실에서 나와 강동서로 향했다. 강동서에서 일한다는 민성우경감을 만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겨날 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무죄를 밝힌다기보다는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만약 아버지의 쪽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직 경찰서장뿐만이 아니라 간부급을 모함할 수 있는 그런 집단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롯데월드 2가 개장하고 나서 이쪽은 항상 막힌다. 저 높은 빌딩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까. 빌딩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생활을 한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높게 높게 올라갈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송파구청교차로가 어느새 앞에 와있었다. 폰에서 벨이 울리고 화면을 보자 얼굴이 떴다. 2개월 만인가? 오래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다. 배우 한수희.. 3년 전 재벌 3세와 치명적인 스캔들 기사가 났을때 모든 언론은 대서 특필하고 벌떼처럼 그녀를 찢어대기 시작했다. 막 떠서 배우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할 때 치명적인 칼은 그녀의 폐부를 찔러댔다. 아무도 그녀에 대한 옹호글을 쓰지 않았을 때 혼자 그런 글을 쓰고 적극적으로 그녀를 방어해주었다. 5년 전 첫 번째 스쳐가는 만남에서 그녀의 진가를 확인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보았다.


상사에게 욕먹어가면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결국 그녀에 대한 소문이 거짓임을 밝혀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언론이 말하는 대로 믿지 않는 내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때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모르지만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 이후로 나보다 네 살 어린 그녀와 터울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그런 친밀한 관계 말이다. 물론 수희도 내 여자친구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여보세요. 오래간만이야."

"그러게 오빠는 연락 한번 안 하고 너무한 거 아냐?"

"그냥 조금 바빴어."

"이번에 들어간 영화 촬영이 지금 끝났는데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전화해봤어."

"고마워 내생각도 해주고."

"그래 내가 엄청 바쁜 사람 이긴 한데 전화해주는 배려 좀 할 줄 알지."

"별일은 없지? 저번에 출연한 영화 잘 봤어. 연기력 많이 늘었더만."

"연기는 전부터 잘했거든?"

"어디 가는 중인가 봐. 네비소리 들리네."

"응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오빠 잡지에 특별 기사 하나 실어줄게. 언제 한번 찾아와. 밥도 먹고 이야기도 좀 하게."

"응 그래. 항상 고마워."

"고맙기는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잖아."

"나 도착한 거 같아. 내가 다음주에 바로 전화할게."


강동경찰서는 처음 와본다. 강남경찰서에 비해 무언가 촌스러운 느낌? 아니 그냥 시골구석에 있는 경찰서 같다. 생활안전계라고 했나? 아니 생활안전과다. 그쪽 계열이 아니면 경찰서에 가서 기사를 쓸릴 은 거의 없다. 아는 사람도 드물고 경찰 쪽으로는 인맥이 많지는 않다. 다행히 형사계가 아니라서 유치장 같은 분위기는 덜하다. 형사계를 가보면 그들이 안에 갇혀 사는 건지 범인을 잡기 위해는 있는 건지 햇갈릴때가 있다. 5년쯤 일했을까? 앳되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입구 쪽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며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저 여기 민성우 경감님 계시나요?"

"저기 계시는 분이 먼 성우 경강님인데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풍채 좀 있어 보이는 50대의 남자 한 명이 서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성실해 보이지만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예 감사합니다." 여자는 한 번 나를 흘낏 보더니 자신의 일에 다시 몰입하기 시작했다. 민성우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전에 형사를 했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서 사람을 읽으려는 기색이 엿보였다.

"예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전 최현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민성우는 명함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이..."최현 에디터라고요. 잡지사에서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요?"

"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혹시 김윤수 씨라고 아세요?" 그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 아픈 그런 사연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큰 변화가 있어 보였다.

"김윤수라... 어렴풋이.. 나는 것 같은데요. 왜 그러시죠?"

"궁금한 게 있어서요."

"사람을 워낙 많이 만나서요. 김윤수라면 누굴 말하는 건지?"

"잠깐 담배 한대 피실까요?" 나는 왼손으로 지포 라이터를 꺼내며 오른손으로 입으로 손이 가는 시늉을 했다. 그에게서 담배의 오래된 냄새가 풍겨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지포 라이터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누군가가 말할 수 있는 물꼬를 터는데 때론 효과적이다.

"예 그러시죠." 둘은 천천히 내려와서 밖으로 나왔다. 민성우는 담배를 꺼내서 물었다. 나는 그 담배에다가 불을 붙여주었다. 민성우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손으로 아니라는 듯이 흔들며

"저는 담배는 안 피웁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김윤수는 어떻게 들으시고 오신 거예요? 잡지사 에디터가 궁금해야 할 내용은 아닌데요." 순간 고민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그한테 가족이라도 있고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다면 굳이 위험스러운 일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그냥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상대방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전.. 박민희 경사가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담배연기를 뿜어내던 민성우는 갑자기 나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신 뭔데? 뭐가 궁금한 거야."

"음주운전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사람 열 받게 하지 말고 뭐하는 거야."

"저 사실 김윤수의 아들 김현철입니다. 이름을 바꿔서 최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요." 민성우는 피던 담배를 떨어트리며 나를 쳐다본다. 반가운 건지 아니면 안되었다는 그런 눈빛인지 모르지만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느낌이다.

"진짜 당신이 선배의 아들이라고?" 내 얼굴은 생각보다 어릴 때보다 많이 바뀌었다. 지갑 한편에 넣어둔 사진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사진과 나를 번갈아보던 민성우는 아직은 의심을 풀지 못한 태도를 취했다. 쪽지를 보여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나중에라는 생각에 그냥 침묵하고 있었다.

"사실 민희는 술을 거의 못해. 마셔봐야 맥주 한두 잔 정도 먹을까?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 우리 관할도 아니고 모든 것이 완벽했거든.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38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아버지가 사형당했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잖아. 모든 정황은 거의 완벽하고 조서도 빈틈이 없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갑작스러운 사건들이 터져서 그렇지만 전 아버지가 그랬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민성우는 "사실이 아니라 치자. 무얼 할 수 있지? 그리고 사실로 믿는 게 좋아. 어차피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들쑤실 필요는 없잖아."

"아버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닌가 봐요."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평소에?.."
"어릴 때 당신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뭐 그거야 같이 일했으니까 친분차원에서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것이 사실이고 별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래. 여자친구 있나? 시간 되면 결혼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 더 이상 이 사람과 말해봐야 소득이 없다는 느낌이 든 나는 그냥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을 텐데요."

"그래. 세상은 그냥 돌아가는 거야.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민성우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느낀 감정은 공허함이다. 내가 음모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언가 진실이 담긴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지루하고 험난하고 공허했다. 사무실에서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늦은 시간에 시작한 미팅에 건성건성으로 참여했다. 소윤이에게 전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평소와 똑같이 통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서울에서 퇴근은 늦게 할수록 좋다. 엄청난 차량의 흐름에 막혀 길에다가 시간과 기름을 쏙 아부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서 살까도 생각했지만 사람 냄새가 그리워 아직까지 이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식이 아닌데도 가족으로 받아주고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던 분들이 없었다면 난 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파트에 도착하고 보니 이모가 살고 있는 8층에 불빛이 살작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11시쯤 되었나. 이 시간에 불이 새어나오는 것은 의외다. 경희만 제외하고 10시쯤 되면 잠자리에 드시는 분들이 오늘은 늦게까지 잠에 들지 않고 웬일이지.


"저 왔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조용한 가운데 묘한 비릿한 냄새가 주방 쪽에서 나는 듯했다. 아까 본 빛은 주방에 켜진 불빛 때문인 듯하다. 내 방으로 가기 위해 주방을 지나가는 순간 평소와 다른 아주 냄새가 풍겼다. 이모부는 목에 치명적인 칼날의 흔적을 남긴 채 바닥에 누워있었고 이모는 의자에 앉아 기묘한 자세로 오른팔이 뒤로 꺾이고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쥔 채 누워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밖에서 점점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몰라도 현관문에서는 벨소리가 울렸다.


"괜찮으십니까? 문 여세요." 여러 번 벨을 울려도 대답이 없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만약 이것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면 나는 꼼짝없이 이모부 가족 살해범으로 잡힐 수밖에 없다. 만약 내 뒤를 캐서 사형수였던 아버지까지 밝혀낸다면 이만큼 좋은 먹을거리는 없다. 탈출해야 한다. 맞아 혹시나 몰라 설치해놓은 완강기가 있다. 문을 격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번호키가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완강기에 금속후크를 고리에 걸고 속도조절기를 건 다음 그냥 내려갔다. 하강속도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 채 최대한 맞춘다고 했지만 생전 처음 하는 이 경험이 익숙할 수는 없었다. 내려갈 때의 충격으로 잠시 멍해지기는 했지만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다. 뛰면서 전화를 걸었다. 7번쯤 울렸을 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오빠 웬일이야? 이 시간에."

"경희야. 살아있구나. 집에 오지 말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친구 집에 머물러. 그리고 난 절대 이모부와 이모를 죽이지 않았어. 믿어줘."

"무슨 소리야?"

"미안해. 내가... 아무튼 믿어줘. 정말 너에게 할 말이 없다. 넌 살아야 돼."

"진심이야? 왜 그래?"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 폰도 버려. 나한테 연락도 안될 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정말로.. 내가... 헉헉... 미안해.."


세상이 현을 쫓기 시작했다. 1급 살인죄에 이례적으로 그에게 걸린 현삼금은 1억이나 되었다. 연쇄살인범도 아닌 사람에게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현삼금을 걸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고 적극적으로 누군가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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