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Feb 06. 2019

효도(孝道)

대전 유회당에서 길을 묻다. 

공자가 미워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남의 나쁜 점을 떠들어대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것을 미워하며,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는 것을 미워하고,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 자기가 원하는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효도는 그렇지 못하다. 부모가 자신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했더라도 미워할 수 없고 모른 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천륜이라고 부른다. 

유회(有懷)라는 뜻은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회당은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유회를 다 왔다고 하는데 이곳에 있는 건물 중 기궁재는 유회당, 삼근정사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재실 건물로 묘사(墓祀)를 지낼 때나 종회(宗會)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말로서 상처를 입히기가 쉽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늘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공경하며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을 효도의 으뜸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권이진과 그의 후손들 또한 선현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소중히 여겼던 지극한 효심 덕분에 오늘날까지 유회당 원림이 전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 뒤로 안동 권 씨의 묘역이 있고 산 중턱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정도 오르면 야트막한 산자락이 거업재와 여경암을 품고 있다. 권이진은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무실(務實) 강직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있다. 시호는 공민(恭敏)이다. 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 수찬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이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기도 했다. 권이진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이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임진왜란에 대한 현창(顯彰)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필자에게 곤궁함을 견뎌낼 수 있는 진실한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자 라야 진실로 곤궁함을 견뎌낼 수 있으며 소인은 곤궁하면 곧 함부로 행동한다고 한다. 힘들게 만들었던 부모와 함께하는 곤궁함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한 효도를 했던 권이진은 1668년 7월 공주의 탄방리(지금의 서구 탄방동)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두 분의 뜻을 간직하면서도 깨치지 못함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로 당호를 유회당이라 하여 그것이 호가되었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리타 : 베틀 엔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