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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4. 2015

특종 량첸살인기

일생일대의  기회는 없다.

스토리 개연성의 부족인가 아니면 감독 역량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그럴듯하게 출발했다가 확 망가지는 영화가 특종 량첸살인기다. KBS나 다른 방송사에서도 매주 미디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나 항상 문제는 반복이 된다. 다른 방송이나 언론보다 더 빠르게 발표해야 효과가 있고 그 내용은  자극적일수록 더 좋다. 언론인은 일생일대의 특종을 건지는 순간 뜬다. 언론사와 기업과의 유착관계는 생각보다 끈끈하다. 비리가 있더라도 눈감아주어야 하건만 허무혁은 특정 기업의 납품비리를 폭로하고 이에 해고의 위기에 처한다. 융통성이 없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허무혁은 임신 6개월 차인 와이프와도 별거 중이다.


사람의 진가는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온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과 신의 한 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전자 쪽이 훨씬 많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 이 모든 상황이 시야를 좁게 만들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허무혁은 익명의 제보자인 클라라를 만나 그녀의 옆집에 살고 있다는 연쇄살인범의 집에서 여러 단서들을 발견하는데 이걸 바로 보도해버리면서 연쇄살인범의 단서를 잡았다는 특종을 터트리게 된다.



사람이 막 다른 길에 몰리게 되면 하는 선택이 있다.


특종을 터트리면서 한 번에 주목받았지만 그 내용이 소설 량첸살인기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론윤리 같은 것은 사실상 관심 없는 언론사와 언론사가 이야기하는 대로 믿어버리는 대중들의 광기 속에 덮어버리기 힘든 사건이 되어간다. 이 영화는 언론사들의 문제점을 살짝 비꼬는 블랙코미디의 형식에 스릴러라는 양념을 더했지만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잡지 못했다.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잘못을 하는 경향이 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누가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문제가 꼬여갈수록 원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해버린다.


언론사는 대중들에게 사실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따옴표를 양쪽에 붙인 후 툭 던져 버린다. 누군가가 한 말을 그대로 실었을 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다. 우리는 던져주었지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누가 머라할 것도 없이 앞서서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내고 이를 무한반복 생산한다. 현명하지 않은 대중들은 뉴스가 자극적일수록 그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자극적인 댓글을 달아댄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표현은 다한다. 진실은 개나 줘버려..


언론윤리와 상관없이 가장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사와 언론사에 잘못 책잡힐까 걱정하며 휘둘리는 경찰,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진실은 외면하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대중들을 다룬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과 기존의 다른 블랙코미디 장르를 베껴놓은 듯한 클리셰만이 넘쳐난다.


이 영화는 그냥 그렇다. 재미도 그렇고... 의미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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