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賦役)

거제 옥산 성지가 자리하게 된 의미

지금이야 어떤 대가를 주지 않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것을 자원봉사라고 하고 자유의지에 달려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부역이라는 합법적인 의무가 있었다. 부역의 기원은 공동경작·관개사업과 같이 공동의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공동체의 사회적 작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역이 국가에서 일정 연령의 일반 남자 모두에게 부과되는 세제로 법제화한 것은 진한시대였다. 고려시대의 특수 촌락인 소(所)·향(鄕)·부곡의 주민은 특산물 생산과 같은 특별한 역을 수행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전의 남선공원에 가면 망이. 망소이 탑이 있는데 그 이름의 주인공의 난이 바로 촌락의 행정구역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IMG_2558_resize.JPG

거제 옥산 성지는 거제의 중심지역에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둘레 778.5m, 최고 높이 4.7m, 너비 3m. 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 거제면 동쪽 계룡산 밑의 수정봉(水晶峰) 정상에 위치한 이 산성은 수정같이 솟아 있다 하여 수정봉성(水晶峰城)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IMG_2562_resize.JPG

산행을 해볼 수도 있고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조금은 더 걸어서 올라가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부역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곳이 부역으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1873년(고종 10) 당시 거제부사 송희승이 읍성을 축조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더니, 거제는 이미 읍터를 세 차례나 옮겨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다.

IMG_2564_resize.JPG

그렇지만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은 도민을 강제로 부역케 하고 큰돈을 거두어 8개월 만에 주위 160칸, 높이 13자의 석축을 완공하고 이곳에 군기 및 군량을 비축하여 바다 방어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거제도가 육지와 분리되어 있었을 때 상당히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옥산성의 축성 공사는 상당히 대규모인 축성 공사로 백성에게 무리한 부담을 입혔다고 하여 송희승은 파직당하였다고 한다.

IMG_2566_resize.JPG

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경국대전'에서는 토지 8 결마다 1명을 동원하며 1년의 최대 사역일 수는 8일로 했다. 하지만 각종 잡역과 임시적인 역의 부담은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인이나 인근 주민을 사역하는 둔전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관둔전도 지주전호제로 경작되고, 각종 요역은 세를 거두어 인부를 고용하는 고립제로 대체되어갔다.

IMG_2571_resize.JPG

성안 동쪽에 비석을 세워 부사 송희승이 이 성을 축조하게 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비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거제면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상리·서상리를 연결하는 성으로 동서남북에 4문이 있고 성안에는 우물이 있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IMG_2575_resize.JPG

옥산성지 수정봉 정상에 오르면 백두산 ‘천지연’이나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마르지 않는 신비한 연못인 수정봉성과 왕의 알은 품은 ‘봉황바위’가 있다. 이런 곳에 물이 마르지 않고 고여있는 모습을 조금 특이하게 느껴졌다. 거제사람들은 봉황바위의 정기를 받아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는데 필자도 소원 하나를 빌어보았다.

IMG_2578_resize.JPG

공짜로 부려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역은 궁궐·도로·성벽·사원·관아 건축과 같은 토목공사와 조세·공물 운반, 수리시설, 공물 생산을 위해 동원되는 부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IMG_2584_resize.JPG

주나라에서 철은 천하에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는 뜻이었고 조는 백성의 노동력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현자였던 용자는 '토지를 다스리는 데는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로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의 힘을 수고롭게 한다고 하는데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몸의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한다.

IMG_2589_resize.JPG

조선의 말기에 만들어진 옥산성과 지금은 옥산성지로 불려지고 있는 이곳은 이미 삼국시대에 최초로 축성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최상단으로부터 최하단 상위까지의 호안석축(침식 차단을 위해 경사면 등에 돌로 시공하는 구조물)은 상당 부분 유실돼 조선 후기에 ‘허튼층 쌓기’ 방식으로 보강 축조되었다. 성이 축조되면서 거제도의 주변 풍광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keyword
이전 26화감성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