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7. 2 PM
범행이 발생한지 8시간 만에 용의자의 신상과 주변 사람들의 신상이 미디어에 유포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전에 오빠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였다. 오빠의 소식을 들은 것은 포털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출근하고 미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기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를 아는 누구라도 그리고 생각할만한 정보들은 여자친구인 나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형사가 이렇게 일찍 찾아올지는 몰랐지만 대충 법적인 정보를 검색한 보람은 있었다. 압박으로 나를 정보원처럼 취급하려던 그 형사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으니까. 이제 30분쯤 있으면 경희를 만나러 가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지은이를 이용해도 될까. 지은이의 키가 나와 비슷하고 머리 길이도 나처럼 단발이니 적당히 포장할 수 있지 않을까.
"지은 씨 잠깐만." 손으로 회의실 방향 쪽을 가리켰다.
"예 엄대리님." 지은이와 회의실로 들어온 나는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입에다가 손을 대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 산업은행 미팅건 있잖아. 그거 가야지." 그리고 손으로 쪽지에 내용을 적어서 주었다. '지은 씨 산업은행 미팅할 때 내 겉옷 입고 먼저 나가줘.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해주면 좋겠어. 지은 씨한테 별문제는 없는데 나한테는 중요한 거야.' 지은이는 나를 쳐다보며 왜 그래야 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니 지금 말하기는 그런데 미팅에 가서 내가 30분쯤 늦는다고 해주고 있다 나가면 지하철까지 좀 빨리 걸었으면 좋겠어.'
"예 알았어요. 지금 나가면 되는 거죠?"
"나랑 있다가 나가면서 1층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옷만 바꿔 입으면 될 것 같아. 이번 체크카드 제휴 건이니까 어제 작성한 기획서 꼭 들고 가고."
아침의 불길한 기분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내가 알기로는 오빠에게 죽마고우나 친한 친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빠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경희의 태도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보통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왜 경찰을 찾아가지 않고 나를 찾아온 걸까. 경희가 이렇게 행동한 데에는 분명하게 이유가 있을 테니까.
"팀장님 산업은행 다녀올게요." 소윤이는 문서와 가방, 겉옷을 챙기면서 팀장 쪽을 보고 인사했다.
"응 엄대리 이번 프로젝트는 체크카드와 연동된 첫 사회공헌 활동이니까. 잘 하구와."
"예 알겠습니다. 지은 씨 가자."
"예 엄대리님." 둘은 사무실에서 나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소윤이는 지은이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내려온 엘리베이터는 둘이 타기 힘들 정도로 공간은 좁아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을 때 대부분 남자들로 채워진 그 곳에서 남자 한 명이 갑자기 침묵을 깨고. "타세요. 두 분다 날씬하셔서 타실 수 있을 거예요." 소윤이는 지은이를 바라보며 타겠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때 다른 남자가 "빨리 타세요." 둘은 남자들이 만들어준 공간으로 들어가서 섰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가득 찼다는 표시등이 떴지만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1층 화장실에 들어간 둘은 5분쯤 있다가 코트를 바꿔 입었다. 지은이가 먼저 나와 빠르게 지하철쭉으로 걸어갔다. 두 명도 모두 롱 코트라 얼핏 보면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소윤이는 화장실 옆의 비상계단으로 내려가 자신의 차를 지나 회사 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르게 벗어난 차는 주변 블록을 한 번 돈 다음 인근 공용주차장에 주차되었다. 차에서 내린 소윤이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본 다음 사거리의 스타벅스 안쪽으로 들어갔다. 1층에 경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안쪽에 2층으로 올라가니 모자를 깊게 눌러쓴 경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편 지하철역까지 빠르게 걸어가는 지은이의 뒤를 따라가는 일행은 형사 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남자 한 명도 여자와 형사 둘을 지켜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지하철을 탄 지은이를 옆쪽으로 두 명의 형사가 주시하고 있었다.
소윤이는 경희를 보자마자 안아주었다. 경희는 10여분을 계속 울기만 했다. 울음이 조금씩 멈추기 시작할 때 소윤이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경희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경희의 얼굴을 보자 길지 않은 시간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얼굴은 반쪽이 되고 수척해진 것이 눈에 뜨일 정도였다.
"경희야 힘들지. 어떻게 해.."소윤이는 경희의 한 손을 꼭 잡아주고 오른손으로 경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언니. 정말 우리 아빠 엄마 돌아가신 거야?" 소윤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런가 봐. 내가 가보고 싶기는 한데 가족이 아닌 이상 못 보게 할 것 같아. 그런데 경희는 왜 경찰서로 안 가고 이렇게 숨어 다니는 거야?"
"오빠가 연락 끊기기 전에 나한테 연락했어.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어. 뭐라고 말은 안 했는데 누명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근데 전화를 끊고 나서 경찰도 못 믿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선은 언니를 만나봐야 되겠다라고 결정한 거야."
"그런데 경희폰 있으면 바로 추적했을 텐데. 어떻게 한 거야?"
"내 폰은 전원을 꺼서 친구한테 맡기고 그 친구폰 빌려왔어."
"아 그래서 경희를 못 찾았구나. 그렇다고 계속 도망 다닐 수는 없잖아. 경찰서로 우선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모르겠어. 이 상황에서 경찰한테 가서 오빠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나 때문에 오빠가 잡히면 어떻게 해. 언니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
"대체 왜 그렇게 된지 짐작도 안가. 혹시 오빠가 어릴 때 친구가 없는 거나 아주 옛날에 무슨 일과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닌지 추측만 해볼 뿐이야."
"나도 아주 어릴 때 있었던 일인데.. 언니한테 말하여도 되나..."
"뭔데 그래?"
"그게 말야. 오빠가 어릴 때 오빠 아버지가 지병이나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오빠가 부모님 죽음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어. 근데 말 못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만 했었지."
"내가 말하긴 그런데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오빠 아버지는 살인죄로 사형당하셨고 어머니도 6년인가? 그 뒤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우리 집으로 입양된 거구."
"그 정도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휴우.. 그럼 오빠 이름이 현이 아니라는 소리네."
"응 원래 이름은 현철이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만 내가 사람은 볼 줄 알거든. 적어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거 말야."
"나도 오빠랑 같이 살아서 잘 알아. 그런데 왜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정말 모르겠어."
"음... 잘은 모르겠는데 요즘 오빠가 뭘 찾는 것 같긴 했어. 그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 오빠를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우선 나도 미팅에 가야 하니까. 나한테 연락하려면 이 번호로 연락하는데 직접 전화하지 말고 공중전화 위치를 남겨." 소윤이는 볼펜을 꺼내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공중전화 위치를 어떻게 알아?"
"대부분의 IBK 길거리 365 코너에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는데 IBK기업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영업점 안내에서 찾을 수 있어. 그러면 거기서 반경 100m 이내의 커피숍 중에서 가장 먼 곳에서 만나는 시간만 뒤에다가 적어서 보내면 내가 갈게. 봐 앞에 두 자리는 그냥 랜덤으로 두 자리 숫자를 적고 중간에 전화번호 그리고 뒤에는 만나는 시간을 24시간으로 표시해서 보내."
"언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 지금 방금 생각한 거야?"
"그냥 생각났어. 그리고 돈은 있니?"
"지갑에 7만 원이 전부야." 소윤이는 지갑을 열어서 5만 원짜리 8장을 건네주었다.
"자 40만 원이야 우선 이걸로 써."
"무슨 현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내일 우리 부모님 결혼기념일인데 두 분이서 식사하시라고 뽑아두었던 돈이야."
"나 이거 받아도 돼?"
"응 그리고 정말 부모님 일.. 뭐라 해줄 말이 없어." 소윤이는 일어나며 경희를 다시 껴안아주었다.
"언니 고마워. 나도 누굴 찾아갈 사람이 없었는데.."
"그래 그럼 갈게. 그리고 정말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경찰서를 가. 오빠 걱정하지 말고."
경희와 헤어져서 미팅 장소로 이동하던 소윤이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오빠가 이렇게 도망쳐 다닌다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를 약간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내가 도와줄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오빠가 마지막으로 갔던 장소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오빠차는 분명히 압류되어 경찰서에 있을 텐데 내가 무슨 방법으로 차에 접근할 수 있을까.
"뭐라고? 멍청한 놈 같으니 어떻게 했길래 놓쳐?"
"죄송합니다. 그 여자가 생각보다 영악하더라고요."
"영악해봤자. 일반인이야. 멍청한 놈 같으니.. 그러길래 잘 주시하라고 했잖아."
"눈에 안 띄게 조금 거리를 두고 쫓아간다는 것이 얼굴 구분을 못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차이 나는데."
"한 40분 정도 시야에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40분이면 충분히 만날 수도 있었던 시간이네. 지금 위에서 난리인데 1주일내에 그놈 잡으라고 성화야."
"그러길래 언론에는 조금 늦게 오픈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잖습니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거냐?"
"아무튼 죄송합니다."
"오늘이나 늦으면 내일 그놈 사진이 뿌려질 거야."
"벌써 현상수배되는 건가요?"
"그냥 공개해버리라는 지시야. 그리고 그 딸... 누구지? 경희? 그 여자애는 어디 있어."
"다른 애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 여자애를 잡아야 그 놈 잡기도 수월 할 테니까 빨리 찾고. 오늘 그 여자만 쫒아. 놓치지 말고."
"예 여기서 있겠습니다."
최도철은 전화를 끊고 벽을 발로 걷어찼다. 대체 그 여자는 어딜 갔다 온 거야. 한 사람이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대체 미팅 장소는 어떻게 온 거야. 설마 차 타고 나간 건가? 그 여자 차는 그대로 주차장에 있었는데 놓칠 리가 없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위치 추적하는 GPS도 달아놓은 상태다. 생각보다 영악한 여자다. 처음 만났을 때 당차게 나오는 것을 보고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앞으로 골치 아픈 상대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영악한 년... 폰도 사무실에 놓고 갔다. 검사한테 허락받지 않고 하는 불법 위치추적..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수사다. 머 나중에 밝혀지면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