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7. 7 PM
CNBC 김성우입니다. 저희 방송사가 단독 입수한 보라매동 아파트 살인사건의 전말을 시청자분들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가 우측으로 돌며 남자를 줌인한다.
"이태훈 기자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잡히지 않고 있는데 새로운 사실이 있다고요."
"예 이례적으로 경찰이 발 빠르게 공개수사로 돌린 후 범인에 대한 신상이 공개되었는데요. 최현이라고 알려져있던 용의자의 본래 이름은 김현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명을 쓴 건가요?"
"아니요. 가명은 아니었습니다. 주민등록상에서도 그 이름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 변경을 하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연이 있다고요. 어떤 건가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찰 일가족 살해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윤수라고 하는 경찰 간부가 저지른 사건이었는데요. 그 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언도받고 사실상 마지막 사형집행일인 1997년 12월 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었군요. 혹시 그것 때문에 연관성이 있다는 말을 하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김현철 씨의 어머니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 집으로 호적으로 옮기고 이름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형수가 된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어떻게 살았나요?"
"계속 이사 다니면서 학교를 여러 번 전학을 가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성우 앵커는 앞에 있던 종이를 한쪽으로 넘기며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한다. "용의자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범죄심리학자 황인곤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황인곤 교수님.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황인곤입니다. 사형수가 있는 집안의 가족들은 대부분 평탄하지 못한 인생을 산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사형수가 된 가족의 소득 수준은 평균 이하로 빈곤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1997년 사건의 경우 중산층 가문의 경찰간부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죠."
"그럼 그 사건이 이번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을까요?"
"어릴 때 받았던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이번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 그를 지지해주던 어머니마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자아에 큰 상처를 입혔을 겁니다."
"그걸 꼭 나쁜 피 콤플렉스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모든 사형수의 자손들이 그런다는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 사건의 경우 빚 독촉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분노를 폭발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죠."
"이태훈 기자. 빚이 얼마나 되었길래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겁니까?"
"정확한 금액은 나와있지 않지만 빚과 도박 등으로 약 3억 원 정도의 빚이 있다고 수사결과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황인곤박사를 쳐다본다.
"어릴 때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을 못 내리는 거죠. 얼마 전에 빚까지 져가면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던 부부가 빚 독촉 때문에 자살한 사건이 있는데 이 역시 사회의 이목과 자신들이 바라던 그런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괴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이태훈 기자. 그 딸이라는 사람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건가요?"
"예. 아직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화로 본임임을 밝히고 자신은 괜찮으며 최현의 무죄를 주장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가요?"
"같은 집에 살던 오빠라는 사람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가상의 범인을 만들어내는 거죠.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범인에게 협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개수사로 돌리면 시민들의 제보가 잇따를 텐데요. 어떻습니까? 용의자의 행동반경에 큰 제약이 가해질 텐데요. 그러면 추가 범행이 발생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용의자가 자신을 같이 살던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것은 자신이 제어하기 쉬운 환경에서 범행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 같은 약자를 대상으로 하면 몰라도 추가 범행의 가능성은 아직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여자친구라는 사람도 비협조적이라는데 도피를 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네요."
"자신 속에 있는 악의를 억누르며 신뢰를 쌓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유형의 범죄자들은 이성에게 호감이 가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 다시 한번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공개하겠습니다. 키는 175cm 정도에 몸무게 73kg로 보통 체격입니다. 얼굴은 호감형으로 사라질 때 입고 있던 옷은 퀼팅 소재 카키색 블루종과 광택이 도는 카키색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니트 머플러를 잘 두르고 다녔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이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을 보신 분들은 02-2412-2811로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신 황인곤 박사님과 이태훈 기자 모두 감사합니다. CNBC의 김성우였습니다."
김성우는 일어나며 황인곤 박사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며 손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도망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CCTV 같은 카메라가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안전을 지켜줄 것 같은 감시장치들이 이렇게 가슴을 억누르는 듯한 기계로 탈바꿈하다니 입장 바꿔 생각해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지만 아까 방송을 보니 오히려 이것이 나를 옥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쪽지에 대한 진실을 100%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믿게 된다. 아니 그들이 믿게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세상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윤이에게 전화해도 괜찮을까? 연락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연락하지. 모르긴 몰라도 많은 걱정을 할 텐데...
"오빠 저게 무슨 소리야? 저거 진짜야?"
"아~ 보라매동 아파트 살인사건! 응 그런가 봐."
"그래서 잡혔대?"
"아니 잡히지 않았으니까 저렇게 공개 수배하는 거지. 한국도 너무 위험한 거 같아. 저런 놈들이 설치니 말이야."
"그런 말하지 마. 정확한 것도 아니잖아."
"방송에서 거짓말하겠냐?"
"거짓말을 안 해도 오해가 갈 방송은 많이 하지. 나도 그랬잖아."
"니경우야... 조금 다르지. 그런데 왜 갑자기 관심을 가져."
"저 오빠 몰라? 3년 전 내 기사 써주었던 사람. 덕분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거잖아."
"아~ 그 사람이구나. 왜 그랬대."
"오빠 이야기 그만하고. 다음 스케줄 뭐야?"
"2시간 후에 라디오 방송 잡혀 있어. 이제 새롭게 드라마 찍잖아. 그거 홍보방송."
"알았어. 나 잠깐 쉴게."
방송이 나가자마자 전국에서 온갖 제보가 쏟아졌다. CNBC의 관련 방송은 리트윗 되면서 순식간에 100만 명이 넘는 사용자에게 전달이 되었다. CNBC 홈페이지의 트래픽은 갑자기 증가했고 나쁜 피사건으로 재확대 생산되기 시작했다. 2012년 개봉 당시 별다른 호평을 얻지 못했던 '나쁜 피' VOD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고 덩달아 1986년작 프랑스 영화 '나쁜 피'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특정 사이트의 유저들은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나쁜 피 빙고 게임'이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부모의 행동습관 중 안 좋은 것을 리스트처럼 만들어서 동그라미 개수를 쳐서 해당되면 나쁜 피를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임이다.
소윤이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9시였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서 뉴스를 보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온통 현 오빠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냥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면서 인사한다.
"나 왔어."
"응 그래 소윤아." 잠시 멈춰 서서 TV를 바라보며 "저 뉴스 그만 보면 안돼?"
"왜 그러니?" 사실 방송을 보는 엄교도관의 속내도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과거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머리 복잡한데 회사에서도 온통 저이야기였거든. 좋은 뉴스도 아니잖아."
"그래 그러마. 나도 끄려던 참이었다."
"아빠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이해해주시는 거죠?"
"그럼 딸 이야기 잘 들으면 떡 하나라도 얻어먹는다고 했잖아."
"떡은 못 사 왔어. 여기 제 카드 드릴 테니까 내일 엄마랑 외식이라도 해요."
"어! 이번에는 현금이 아니라 카드야?"
"아~~ 내가 소득공제 금액이 조금 모자란 거 같아. 카드를 조금 써야 해서."
"알았다. 내일 외식할 테니까 너도 일찍 들어오지 말고 데이트라도 해라."
"알았어. 알아서 할게."
소윤이는 방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역시 전화 온 내역은 없었다. 문자에도 카톡에도 어디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다니는 건지. 잘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오빠도 나도 연락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