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그렇게 썩어간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 끝이 없는 욕심을 제어하는 방법은 자신을 조절하는 데 있지만 그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하고 규율과 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법은 어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찰, 검찰, 사법시스템은 욕심에서 절제되어야 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클럽 사건에서 보듯이 경찰과 유착되어 불법을 합법이라고 가장해서 운영하는 곳의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뺑반은 경찰이라는 조직의 문제를 과대 해석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경찰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적당하게 그려내고 있다. 과대 포장되었고 말이 너무 앞서기는 했지만 그냥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는 않은 느낌의 영화다. 썩어가는 존재들은 자신들이 썩어가는지 모르고 당연하게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진그룹이 미국에서 대서특필되면서 한국 재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돈의 쓰임에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이 쓰일 때 결국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을 잡기 위해 수사망을 조여가던 시연은 무리한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오명을 쓰고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되면서 시작이 된다. 차라는 것이 참 묘한 것이다. 자신이 보잘것없어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먼 거리를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하나의 갑옷처럼 사람에게 사용이 된다. 갑옷 속에 숨어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에게 차는 매우 유용해 보인다.
영암에 위치한 실제 F1 경기장인 전남개발공사 KIC영업소(영암 국제 자동차 경주장)에서 촬영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F1 경기장이 왜 한국에 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F1 경기장이 만들어졌지만 그다지 활용성은 없었다. 한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맞는 그런 콘셉트의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생각 외로 사람들은 그렇게 장기적인 시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를 제외하고 잊혀간다.
영화는 오버스럽게 포장되었고 카체이싱 장면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보다 한참 못 미친다. 필자(영화 제작에는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라면 카체이싱 장면을 그렇게 찍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차를 무척 잘 운전(?)하는 편이어서 대체 카레이싱을 하면 저렇게 평범하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비빨이라고 했던가. 운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차와 좋은 성능의 엔진과 구동장치 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걸 운전하는 사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