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진창 (暗渡陳倉) 기습과 정면공격을 함께 구사한 세조
영화 관상에서 관상가는 세조와 비슷한 역모의 관상을 가진 인물로 태종인 이방원을 거론한다.
“형제들을 죽이고 왕 이 된 자 이방원 역모의 상”이라고 말하는데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들은 조선 역사 속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기방을 운영하는 연홍을 통한 제 삼자의 눈으로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힘겨루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가까운 나라 중국의 역사속에서 당태종의 경우도 어찌보면 역모의 상을 가진 자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 당나라를 세운 아버지 이연의 마음은 큰 아들 이건성에게 있었으나 왕이 되고 싶던 이세민은 사람을 모으고 힘을 키우다가 626년에 행동을 취하여 이건성과 이원길뿐만이 아니라 열 명의 조카를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를 ‘현무문의 난’이라고 부르는데 후에 이세민을 새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었으나 오늘날 중국의 역사에서 보면 정관의 치를 만든 성군 당태종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건성은 이세민의 세력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이세민의 세력은 과감히 행동하였기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가 죽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사이에서도 이건성과 이세민과 같은 힘겨루기는 존재했으나 뛰어난 책사 한명회를 필두로 하여 수양대군 곁에는 능력 있는 무부같은 인재들이 적지 않았다. 호랑이 상을 가졌다는 김종서의 경우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세종때부터 문종, 단종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김종서가 죽음으로서 태종-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는 헌정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계유정난의 승리는 김종서 제거가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김종서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건의 시작은 영화 관상에서도 등장한 황표정사이다. 수양대군에 맞서 김종서의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려는 것으로 조정의 대신들이 기용될 인물들의 이름에 황색 점을 찍어두면, 왕이 그 점위에 검은 점을 찍는 제도로 지나치게 신권이 강화가 되고 왕권은 축소되는 단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단종은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로만 비추어질 수 밖에 없었고 수양대군은 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인물이 아니였다.
결국 이를 빌미로 세력을 규합한 수양대군은 김종서 일행들의 경계를 늦추기 위해 명나라의 사신으로 가면서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볼모로 데려간다. 잠시 이들의 대립은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 같았으나 수양대군 측의 움직임은 긴밀했다. 단종 재위 1년째인 1453년 10월 수양대군은 기습으로 김종서를 제거하고 정면공격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수많은 대신들을 척살하여 하룻밤 만에 조정을 장악하는 계유정난을 자행한다.
결국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한명회의 역사지식이 많이 활용되었을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날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비록 암도진창의 계략을 통해 세상을 얻은 수양대군이지만 친동생을 비롯하여 조카까지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한 그의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만할만한 일이였다.
수양대군이 왕을 꿈꾸다
신권의 몰락을 만든 황표정사를 보면서 대부분의 정권이 행하는 코드인사의 관행역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놓는 황표정사와 정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한다는 코드인사역시 획일적인 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나 지금 대한민국정부에서 그런 인사를 할 경우 정책 효율성 확보나 권력을 지키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건전한 비판이 부재할 가능성이 크다. 비판기능의 부재는 결국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는데 일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공무원 조직을 상호 감시하고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탓이 크다.
그렇기에 정권이나 최고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를 지속적으로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영화 관상에서는 관상가 김내경의 아들 진형이 말단관직에 있으면서도 단종에게 과감히 고하면서 그 폐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발언권을 얻는 위치와 거리가 멀다.
권력은 나눌 수 없기에 단종의 비극은 피할수 없었다.
당시 단종이 어리기도 했으나 그를 보필하던 김종서나 황보인이나 또 다른 숙부였던 안평대군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불렀다. 수양대군 측에서는 권력을 나눌 수 없고 누구를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실권을 쥐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한 반면에 그들은 권력의 냉혹함에 대해 안일하기까지 했다. 힘이 없는 문치주의는 평화 시에만 유효하다. 일단 외환이 일어나면 요란한 말만 앞세워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공리공론만 일삼게 된다.
형제 혹은 조카가 여자일 경우 서로 보완관계가 되나 같은 남자일 경우 권력의 중심에 있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2013년 북한정권의 2인자였던 장성택 노동장 행정부장이 전격 체포되고 재판에서 사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백두혈통 김경희와 결혼하고 김정일의 측근에서 2인자 권력을 누렸던 그가 토사구팽이 된 것은 집권자인 김정은과 권력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일과 김경희의 관계는 그 누구보다 돈독했다고 한다. 생모였던 김정숙이 일찍 죽으면서 김성애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과는 사후권력에 대한 경쟁에서 적이라고 생각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김경희와 결혼한 장성택은 김정일의 패밀리라고 생각했지만 김정은의 경우 장성택과 고모부-조카 사이였을 뿐 권력에서 배제해야 될 대상이였을 뿐이다.
관상에서 김내경은 마지막에서 수양은 왕이 될 사람이였다고 말하면서 사람의 얼굴만 보고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했다고 자책하듯이 말한다.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요“
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져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이다.
- <관상> 내경의 대사 中 -
삼십육계중 8번째 계책 암도진창
손자병법에서 8번째로 거론되는 암도진창은 세가지 계책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측면공격을 통해 정면공격을 대신한다.
두 번째 드러냄으로써 비밀을 숨긴다.
세 번째 정면공격으로 기습공격을 숨긴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는 관상가를 속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상대를 방심케 하기 위해 수양대군 대신 다른 사람의 관상을 보게 하여 김종서와 관상가를 속인다. 중요한 시기에는 수양대군이 직접 나서서 비밀을 숨기기도 했다.
옛 사례중에 암도진창의 계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명수잔도 암도진창'으로 초한전쟁 당시 유방의 측근이면서 명장이었던 한신이 진나라 장군 장한을 칠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한신은 장한을 방심케 하기 위해 병사 1만을 동원하여 한중에서 관중으로 이르는 잔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이에 장한은 잔도에 이르는 길에 주력군을 배치하고 방비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이와 다른 길인 진창을 건너 기습공격을 하여 대승을 한다. 장한은 도망가다가 포위되어 자결하였는데 이 전투로 인해 유방은 한나라를 세우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관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그려진 것은 수양대군이라기 보다 한명회였다. 그림자와 목소리로 등장해 단종과 세조에게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시켰다. 만약 내경이 한명회의 관상을 먼저 보았다면 그를 먼저 제거하고자 김종서에게 건의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정보가 넘쳐난다고 좋아하지 마라. 보이지 않은 칼 끝이 턱밑에 와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