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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0. 2019

인생의 시작점

미스터 선샤인의 시작점 하동 최참판댁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은 논산에 자리한 선샤인 스튜디오에서 많이 이루어졌지만 전국의 명소 등에서 촬영이 적지 않게 진행되었다. 보통 안동이나 전주를 많이 생각하지만 하동의 최참판댁은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촬영을 했던 곳이다. 드라마 초기에 변요한이 유학길에 오르며 애증의 시계를 받고 유진 초이가 부모가 죽는 것을 목도하면서 도망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날아오르기 위해 긴 시간을 꾸준하게 걸어왔다. 이곳을 둘러보면 발목이 악화될 것을 알면서도 참고 올라가 본다. 최참판댁을 처음 왔을 때는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촬영되기 전이었기에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기에 가는 것이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이곳으로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성인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는 '항자'라면 훌륭하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든 있는 척 꾸미기만 하면서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첫 번째로 왔을 때와 두 번째로 왔을 때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훌륭함을 이끌어내 성장시켜 나쁜 점이 생겨서 커가지 않게 하고 소인은 그 역으로 한다고 한다. 「土地」는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을미 왜병(1895) 등을 거친, 1897년 한가위로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스터 선샤인’은 구한말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으로 간 한 소년이 미 해군 장교 유진 초이가 되어 조선에 주둔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기에 토지의 시대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 

토지에서 평사리는 서희가 조준구에게 땅을 빼앗긴 채 만주로 이주하기 전, 그리고 만주에서 부를 축적하여 귀환한 후 빼앗긴 땅을 되찾은 전후에 핵심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악양면 평사리의 중심은 당연히도 최참판댁이다. 토지의 서사는 윤 씨 부인과 별당아씨, 그리고 서희, 그 주변 인물로서 월선과 봉순, 양현 등의 사랑과 이별, 도피와 추방, 복수와 복귀에 맞춰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 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토지에서 3대에 걸친 불행을 마감하고 평사리의 안주인으로 복귀하는 최서희와 미스터 선샤인에서 부모가 일본인에 의해 죽고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고애신과 닮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농촌 공동체에서 대지주의 몰락 혹은 도시로의 이주는 식민 지배와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가장 극심한 변화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정신이 바로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 악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토지에서 귀녀는 면천과 신분 상승, 애욕의 달성을 최치수에 대한 수단적 사랑을 통해 얻으려 하지만, 그 일에 실패한 뒤 최치수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하는 극한의 타락에 빠져든다. 사람들은 바로 앞의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오는 법이다. 소설 속에서 귀녀 역시 소외 의식을 극복한 채 담담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바로 이곳이 유진의 부모가 죽음을 맞이한, 희성(변요한)의 할아버지 집인 경남 하동의 최참판의 건물이다. 우리의 오래된 전통 차례는 원래 차를 올리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술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술을 마셔 이성을 잃은 가족과 형제끼리 싸움이 빈번해진 것이다. 

토지 속에서 풍요와 불모의 동시적 공간으로 자리했던 평사리는 자연과 생명이 온전히 발현되고, 계급과 사상, 생활의 면모가 다른 다양한 군상들이 화합하고 교류하는 원초적 공간으로 마무리가 된다. 

하동에 유명한 것은 두 가지가 있다. 부엉이와 두꺼비다. 유독 다양한 모양의 부엉이들이 많이 보인다. 비록 평산리를 배경으로 그려진 토지가 허구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마치 실제처럼 느껴진다. 작가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생각해야 비로소 실제가 아니지만 더 실제 같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스님과 포수, 백정 등 전근대의 삶과 현실을 다층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인물들이 살아갈 여건을 갖춘 하동의 지리적 여건은 오늘에 다시 미스터 선샤인과 같은 드라마로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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