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강점기에 세워진 장성 고산서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전국에 있는 수많은 서원이 훼철되고 그 역사가 지워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세워진 서원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장성에 있는 고산서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에 세워졌다. 당시 서원을 세우는 것이 허락이 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서원에 모셔진 기정진이라는 사람과 그의 손자인 기우만에 대한 이야기가 의미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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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글을 알고 지식이 있는 지식인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찬양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할애했다. 이학 6 대가의 한 사람이며,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기정진은 1862년(철종 13) 삼남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철종은 3 정의 개선책을 듣기 위해 언책(言策)을 모집했으며 1866년(고종 4)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육조소 六條疏〉라 불리는 첫 번째 〈병인소 丙寅疏〉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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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한다는 것은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모습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여,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학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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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고산서원은 그 규모가 적지 않은 편인데 강당, 서당, 동재, 서재, 장서각 등 7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4평의 규모의 장서각에는 노사 문집 목판 980매와 노사진 22 책을 비롯하여 많은 전적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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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진은 경사자집으로부터 백가(百家)·예악·형정(刑政)·병기·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깊은 경지에 이르렀던 사람이라고 한다. 서경덕·이황(李滉)·이이·이진상(李震相)·임성주(任聖周)와 함께 이학의 6 대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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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진의 학문은 호남 전역에서 그 뿌리를 내려 김석구(金錫龜)·정재규(鄭載圭)·정의림(鄭義林) 등에 이어졌으며 손자 기우만(奇宇萬)은 가학(家學)을 이어받고, 1895년(고종 32) 전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1906년까지 일본군과 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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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라는 것에 대해 공자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자신만의 잣대로 바라보지만 그 잣대를 제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에게도 말한 적이 있지만 주변에 사람을 두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을 두고 계속 휩쓸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런 사람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바른 사람은 길게 보면 좋지만 바로 앞에서는 그릇됨을 지적하기 때문에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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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사람은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그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독특한 역사를 가진 고산서원은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생각을 펼쳤던 기정진과 항일의 역사가 같이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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