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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1. 2019

일제 강점기

강점기에 세워진 장성 고산서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전국에 있는 수많은 서원이 훼철되고 그 역사가 지워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세워진 서원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장성에 있는 고산서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에 세워졌다. 당시 서원을 세우는 것이 허락이 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서원에 모셔진 기정진이라는 사람과 그의 손자인 기우만에 대한 이야기가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알고 지식이 있는 지식인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찬양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할애했다. 이학 6 대가의 한 사람이며,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기정진은 1862년(철종 13) 삼남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철종은 3 정의 개선책을 듣기 위해 언책(言策)을 모집했으며 1866년(고종 4)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육조소 六條疏〉라 불리는 첫 번째 〈병인소 丙寅疏〉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했다. 

통달한다는 것은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모습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여,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학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고산서원은 그 규모가 적지 않은 편인데 강당, 서당, 동재, 서재, 장서각 등 7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4평의 규모의 장서각에는 노사 문집 목판 980매와 노사진 22 책을 비롯하여 많은 전적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기정진은 경사자집으로부터 백가(百家)·예악·형정(刑政)·병기·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깊은 경지에 이르렀던 사람이라고 한다.  서경덕·이황(李滉)·이이·이진상(李震相)·임성주(任聖周)와 함께 이학의 6 대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정진의 학문은 호남 전역에서 그 뿌리를 내려 김석구(金錫龜)·정재규(鄭載圭)·정의림(鄭義林) 등에 이어졌으며 손자 기우만(奇宇萬)은 가학(家學)을 이어받고, 1895년(고종 32) 전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1906년까지 일본군과 싸웠다고 한다. 

앎이라는 것에 대해 공자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자신만의 잣대로 바라보지만 그 잣대를 제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에게도 말한 적이 있지만 주변에 사람을 두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을 두고 계속 휩쓸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런 사람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바른 사람은 길게 보면 좋지만 바로 앞에서는 그릇됨을 지적하기 때문에 회피한다. 

잘 만들어진 사람은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그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독특한 역사를 가진 고산서원은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생각을 펼쳤던 기정진과 항일의 역사가 같이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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