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3-1

2015.11.20

이른 시간에 일어나 옷장에서 옷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매주 한번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는 프리데이다. 소윤이는 프리데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세미 정장을 입고 출근했었다. 옷은 다른 사람에게도 여러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자신에게도 다른 자신감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단합회 같은 것을 제외하고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없다. 소윤이는 겉옷으로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양면점퍼를 찾고 있었다. 한 면은 단색이지만 다른 면은 아줌마들이 입는 등산 점퍼처럼 화려한 색이 있는 그런 옷이 있었던가. 화려한 색의 점퍼는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안쪽에 유니클로에서 산 옷이 하나 보인다. 그냥 가볍게 입으려고 샀던 점퍼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나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이렇게 옷이 많아도 항상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


"소윤아 밥 먹어."

"엄마 난 오늘 시리얼로 주면 안 돼?"

"왜? 바빠?"

"응 조금 일찍 나가야 될 것 같은데."

"소윤이 요즘에 이상한 것 같아. 아빠 몰래 뭐한 거 아니지?"

"아니야.. 내가 뭘 몰래해." 교도소에서 일해서 그런지 평소와 조금만 다른 변화를 보이더라도 알아채리는 것 같다. "남자친구는 뭐한다고 했지?"

"응 그냥 잡지사 다녀." 소윤이는 시리얼을 넣은 그릇에 우유를 부은 다음 허겁지겁 먹고 일어섰다.

"저 출근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가장 편해 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 소윤이는 차 대신 지하철을 타러 걸어나갔다. 지하철역에 내려서 회사까지 이동하면서 주변 건물이나 사람들 그리고 길거리에 있는 가판대등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걷다가 자신의 회사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에서 건너지 않고 시간을 재었다. 그리고 1~2초 정도 남았을 때 정차해있던 차량들이 움직이는 시간을 체크하면서 다음 신호에서 건너서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


"엄대리 웬일이야. 어디 야유회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의자를 뒤로 빼며 "오늘 불금이잖아요. 즐겁게 보내야죠."

"클럽 의상도 아닌데?"

"불금을 꼭 클럽 가서 보내야 된다는 법은 없죠." 소윤이는 모니터를 보며 어제 작성하다가 말은 CSR방송 기획안을 다시 열었다. 배우 한수희 씨의 이미지와 매칭 되는 광고기획안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배우 한수희라는 이미지는 지적이다. 동시에 웃는 얼굴의 미소가 환해서 인기가 많다. 실제 우리 카드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한수희라는 배우로 인해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될까?


정신없이 기획안을 작성하다 보니 시간이 11시를 넘어 3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윤은 일어서며 지은을 바라보며 "나 점심 약속 있어서 나갈 테니까. 그렇게 말해줘?"

"아 예 엄대리님." 조용하게 점퍼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서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층이 열렸는데 본부장이 타고 있었다. 소윤은 인사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CSR팀 엄대리라고 했나?"

"예 본부장님."

"그때 발표했던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어?"

"예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 우리 카드사의 광고모델로 한수희 씨가 거론되고 있다며."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팀장님에게 결제를 올리지도 않았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난리가 났잖아. 한수희 씨 한 번 본다고 떠들썩했던 거."

"아 그래서 아셨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거지.

"아무튼 다음 주에 밥 한번 먹자고 한팀장에게 전해줘."

"예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정문을 벗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도 느꼈지만 역시 형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두 명쯤 되는 건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경보 수준으로 걷다가 갑자기 우측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최도철과 형사 한 명은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서 걷다가 갑자기 골목으로 튼 소윤이를 보고 그 방향으로 뛰어갔다. 골목을 돌아선 순간 그 골목 입구에는 소윤이가 서있었다.


"왜 놀라세요? 이런 장면 예상하지 않으셨어요?" 최도철은 당황해하며.. 멋쩍은 듯이 "아.. 머 그게 아니라 우리도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으시네."

"그래요. 혹시 몰라서 따라왔어요."

"제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현 오빠 만날까 봐 그런 거예요?"

"걱정이 돼서 그런 거죠."

"그러시구나.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소윤은 골목을 나와서 횡단보도 쪽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 횡단보도의 녹색 신호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천천히 걷던 소윤이는 2~3초쯤 남았을 때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진입할 때쯤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었고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들어 좌측에 있는 차들에게 양해를 구하듯이 뛰던 소윤이는 반쯤 건넜을 때 반대편에서는 제각기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도철도 다른 형사에게 동일한 방향으로 뛰라는 신호를 보내고 소윤을 쫓아갔다. 중앙버스 전용차로에서 버스에 거의 치일뻔하듯이 몸이 살짝 부딪친 최도철은 넘어질뻔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소윤은 횡단보도를 거의 건너갔을 때 속력이 붙기 시작한 벤츠 차량의 본넷을 거의 미끄러지듯이 넘어갔다. 창문을 내린 벤츠 운전자의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소윤은 그대로 달려갔다. 최도철도 차들의 클락션소리와 욕을 들어가며 횡단보도를 겨우 건너갔다. 10미터쯤 앞에 회색의 점퍼를 입고 달리는 단발 버리의 소윤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가 다시 한 번 엿먹이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놓치면 대장한테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 무슨 여자가 저렇게 빨리 달리지. 번잡한 강남대로를 재빨리 달려가던 소윤이는 앞에 흔하디 흔한 커피를 들고 나오는 여자 일행을 발견하고 겨우 피했지만 그중 한 명은 갑작스런 여자의 등장에 놀라서 커피를 엎질렀다. 화가 난 여자는 달리는 소윤이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소윤이는 잠시 뒤를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들어 보였다. 여러 가지 크기의 입간판의 사이를 지나 각종 광고판들이 휙휙 지나갔다. 멈추라는 최도철 목소리에 어떤 남자가 소윤이가 입고 있던 오른쪽 어깨 부분을 잡았다. 건강 차원에서 평소에 주짓수나 여러 유술을 연습했던 소윤이는 남자의 왼팔 아래로 머릴 집어넣은다음 오른손으로 남자 바지의 오른쪽 뒤를 잡고 앞으로 당기면서 왼발로 남자의 왼팔을 걸었다. 순식간에 남자는 소윤이의 점퍼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넘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뛰어가던 최도철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저 여자 뭐하는 여자야."


소윤이는 앞에 있던 지하철 역 입구로 내려가서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마침 등산을 가려는 아주머니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화장실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평소에 운동했다고 하지만 갑작스런 전력질주에 소윤이는 입에서 쇠맛을 느끼며 화장실 안쪽의 비어있는 칸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격하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잠시 숨을 고른 소윤은 가지고 온 곱창밴드로 머리를 뒤로 묶고 안쪽에 가져온 야구모자를 썼다. 그리고 입고 있던 점퍼를 뒤집어 입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화장실의 등산객 아주머니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뒤를 쫓아온 최도철은 두리번 거리면서 소윤을 찾고 있었다. 뒤늦게 쫓아온 형사 역시 최도철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고 으쓱하며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제스처를 했다. 최도철은 침을 삼키며 형사를 보며 손짓으로 오라고 한다.


"어디 있는지 못 봤지? 그쪽으로 안 나간 거야?"

"예 이쪽으로 계속 뛰어왔는데요. 못 봤습니다."

"이 여자 보통이 아냐. 우리가 너무 얕본 거 같아."

"그러게요. 혹시 공범 아닐까요?"

"소설 쓰지 말고. 빨리 이 여자나 찾아봐. 난 이쪽으로 넌 저쪽으로 가."


박도철과 다른 형사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며 소윤은 등산 아주머니들 일행에서 벗어나 지하철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수희 씨의 한류 브랜드 CF 촬영이 있는 창덕궁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1시니까 빨리 움직여야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창덕궁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 소윤은 지나가다 때마침 지하철역 반대방향 출구에서 뛰어나와 머리를 헝크러트리듯이 휘젓고 허리에 손을 올린 후 두리번 거리는 최도철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답답한지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꺼내 물던 최도철은 근처에서 단속하는 사람과 실랑이하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갑작스런 배우 한수희 씨의 연락으로 이런 쇼를 벌였지만 어떻게 오빠가 한수희 씨를 만나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한수희는 현오빠의 무죄를 1% 의심도 하지 않고 믿고 있었다. 나 역시 믿고 있기는 했지만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연히 믿기는 어려웠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한 번에 갈 곳을 버스로 가는 바람에 한 번 갈아타야 했다. 한수희와 만나기로 했던 낙선재는 이미 배우 한수희를 보려는 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일행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에 대한 라인 통제가 되고 있어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겨우 사람들을 해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어떤 남자가 가로막고 못 가게 하고 있었다. 날 팬으로 본 모양이다. 하기야 옷차림이 이러니 일이 있어서 왔다고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전화번호를 받긴 했는데 촬영 중이라면 연락이 안될 가능성이 컸다. 다른 쪽을 보니 촬영을 위한 취재차량이 그곳에 와 있는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취재차량으로 접근해서 '21 투데이 Press'라고 씌여요 있는 카드를 집어 들어 목에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누구시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려 잠시 봤는데 그 여자다. 21 투데이의 김수진 기자. 못 들은 척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다시 말을 건다. "저기요. 저 본 적이 있죠?" 조금 더 빠르게 걸어서 촬영장으로 다가갔다. 한수희와 10여 미터를 남기고 있을 때 "이봐요. 여기 아무나 들어오면 안돼요." 김수진 역시 빠르게 접근하면서 그녀에게 다가와 손에 잡힐 거리까지 와있었다. 그녀에게 걸려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아마 이 기회로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억측 기사를 내놓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앞에서 한수희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예."

"빨리 의상 좀 준비해줘." 손짓으로 자신의 스타크래프트 차량으로 들어가는 신호를 했다.

"예 알겠어요." 소윤이는 한수희의 스타크래프트 차량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수희는 뒤따라오던 김수진에게 손으로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차량의 문을 닫고 들어갔다.


몇몇 일들은 평온할 때 더 잘 배우지만 간혹 폭풍이 몰아칠 때 더 잘 배우는 일들도 있다. -월라 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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