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9
목요일에도 포스코 사거리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를 빠르게 오가고 있다. 다행히 그중에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에 PC방을 찾으며 빠르게 걷는데 앞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는 모양인지 매캐한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기침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기침소리에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침 도화타워 뒤의 건물 지하에 PC방 간판을 보고 입을 막으면서 PC방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PC방으로 들어간 나는 카운터에 있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잠깐 쳐다보고 앞에 있는 11번 게스트용 카드를 들고 구석에 있는 PC 쪽으로 이동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서 게스트용 번호를 넣으라는 창이 오른쪽 위에 떴다. 11번을 누르자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 RPG 게임인듯한 광고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닫기창을 누른 후 크롬 브라우저를 띄운 후 한수희 팬카페를 찾았다. 폰을 버릴 때 한수희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지 못해서 그녀의 스케줄을 알기 위해서는 팬카페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에서였다. 19일 스케줄 중 공개된 것은 오후 2시에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있는 CJ E&M의 공개홀에서의 공개녹화다. 스케줄을 확인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입구 쪽에서 검은색 잠바를 입은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남자 한 명이 신분증 같은 것을 들어 아르바이트생에게 보여주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내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 다음 왼쪽의 통로로 이동했다. 통로의 중간쯤에 누가 먹으려고 했는지 몰라도 컵라면에 물을 부은 다음 젓가락으로 입구를 틀어서 막아놓은 것이 보였다. 컵라면의 주인공은 화장실을 갔는지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조용히 컵라면을 들고 몸을 낮춘 다음 앞쪽으로 나아갔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옆을 지나쳐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어 내 컵라면 어디 갔지?" 남자는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내가 앉았던 자리로 가던 남자 두 명은 순간 그 남자의 목소리 방향을 쳐다봤고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 최현 맞지?" 난 대답 없이 입구 쪽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남자 두 명은 빠르게 뛰면서 입구 쪽으로 달려왔고 나는 때 맞춰 들고 있던 컵라면을 남자들 얼굴에 던져버렸다.
"아 뜨거워. 이 새끼 너.." 아직 익지 않은 면발을 얼굴에서 떼내며 화가 났는지 뒤에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입구를 빠져나온 나는 뛰기 시작했다. 남자들.. 아니 형사들이 나를 쫓아서 달리기 시작했고 포스코 사거리에서 삼성역까지 도심 추격전이 벌어졌다. 테헤란 로를 달리던 나는 마침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앞에 횡단보도의 신호에 맞춰 뛰어서 건너갔고 형사들도 나를 따라서 쫒아왔다. 금세 숨이 턱턱 막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을 선택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이것저것 고민할 때는 아니었다. 삼성역 부근에서 코엑스몰로 가는 지하도로 뛰어내려갔다. 문을 향해 달려가는데 마침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는데 가속도가 붙은 내가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쓰러졌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형사들이 뒤에서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서라는 소리를 질렀으나 나는 최선을 다해 그곳을 벗어나려고 뛰기만 했다. 평소에 갔을 때는 엄청 멀게만 느껴졌던 메가박스가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그런데 메가박스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디선가 본듯한 포스터가 이곳저곳에 붙여져 있었고 묵직한 DSLR을 들은 카메라맨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도리화가 기자시사회'
수지를 보러 팬들과 류승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을 채우고 있었고 여느 기자시사회에서 하듯이 레드카펫과 이들을 응원하려고 온 연예인들이 웃으며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앞으로 뛰어들어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연예인 하나를 치고 상영관 쪽으로 달려갔고 입장을 저지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뿌리치고 안쪽 입구로 들어갔다. 형사들도 그쪽으로 온 것 같았으나 따라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출구로 나가 봉은사역 7번 출구 쪽으로 뛰어내려가서 가볍게 개찰구를 뛰어넘은 다음 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형사들을 따돌린 것 같다.
"이 새끼 어디 갔어. 안보이지?"
"예 어디로 갔지."
"쥐 새끼 같은 놈 하필이면 오늘 무슨 시사회야."
둘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개비씩 꺼내 물은 다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이상 없다고 생각한 나는 객차의 한쪽 구석에 가서 가쁜 숨을 고르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생각보다 내 얼굴이 많이 알려진 모양이다. 잠시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내 얼굴을 알아볼 정도면 지하철 안의 사람들도 안심할 수 없었다. 최대한 얼굴을 돌리고 바깥쪽을 쳐다보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지하철은 벌써 여의도를 거쳐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당산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산역에서 내리는 나는 2호선으로 갈아타고 아주 잠시 아름다운 선유도공원을 감상하며 지난 후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탔다.
지금 시각이 1시 40분이니까 수희의 성격상 이미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렇지 않게 들어간 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개 녹화를 하려던 카메라 한대가 앞에 있자 그냥 들고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