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9
김윤수의 첫인상은 언론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잔인한 느낌은 아니었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보아왔지만 그에게 받은 첫 느낌은 차분한 가운데 따뜻한 심성을 가진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풍겨나왔다. 그러나 교도관은 법원에서 내린 결정에 따라 수형자들을 가두고 관리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그냥 생각에 머물러야지 입 밖으로 내뱉는다던지 수형자들에게 감정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지금이야 수형자를 교화하는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최대의 목표는 교도소에서 큰 탈이 없도록 지키는 것이었다. 사형이 있기 2주일 전쯤 별 말이 없던 김윤수가 말을 걸어왔다.
"엄교도관님. 부탁이 있는데요."
"무슨 부탁인데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전 곧 갈 것 같습니다."
"그건 모르는 거예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아니에요. 만약 사형이 집행되면 엄교도관님이 그날 집행해주세요."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형을 집행해달라는 부탁은 못할 짓이다.
"왜 꼭 제가 해야 하나요?"
"그동안 봐왔는데요. 그날 부탁할 것도 있고 해서요." 엄교도관은 한숨을 길게 내쉰다. 5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그래요. 만약 집행명령서가 내려오면 그렇게 하죠."
사형 당일 용수를 내릴 때 김윤수는 내 귀에 대고 이 말을 한 것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엄교도관님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것인지 아직도 김윤수의 말의 진심은 알 수가 없다. 김윤수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명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가 그런 일을 벌였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적인 욕심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지금 김윤수의 아들이 쫓기고 있다. 똑같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엄교도관은 지갑을 꺼내 안쪽 깊숙이 넣어둔 쪽지를 끄집어냈다. 김윤수가 사형을 당한 후 쪽지를 잘 보관해왔다. 대체 이 숫자와 글은 무슨 의미일까.
"현철아 바꾸어 해석해서 나무를 심은 책을 읽어라. 100010001011111110011011101010101101110"
1과 0만이 반복되는 저런 숫자는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소윤이에게 5년 전인가 물어보았더니 1과 0으로만 된 숫자는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수로 이진수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쪽지를 현이라는 친구에게 주어야 하는 건가? 그런데 만날 방법이 없으니 건네줄 기회도 없다. 그 친구만 이해할 수 있는 무슨 암호 같은 거 같은데 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잠깐 사념에 잠겨 있던 엄교도관은 교대시간이 된 걸 보고 옷을 갈아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현은 지하철에서 잠깐 본 선유도를 떠올린다. 지금은 선유도공원으로 잘 조성되어서 뮤직비디오와 CF촬영지로 자주 사용되는 곳이다. 선유도 공원 아래쪽에 있는 밤섬은 원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1999년에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섬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다. 아버지와 여러 번 그 섬에 찾아가서 캠핑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심 속의 야생의 모습을 간직한 그곳은 자연과 대화하기에 참 좋았던 곳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1967년까지 그곳에 62세대가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나이가 10살 때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그곳 주민들은 모두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였다. 2009년인가? 김씨 표루기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표류한 곳이 바로 밤섬이다.
마치 나누어진 박스처럼 되어 있는 적지 않은 공간에 PD들이 한 명씩 들어가서 영상을 보고 편집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방을 슬쩍 슬쩍 보며 복도를 걸어갔다. 9개쯤의 방을 지날 무렵 방의 모니터 화면에 영상은 돌아가고 있으나 사람이 없는 곳이 눈에 띄었다. 안쪽을 보니 출입카드가 놓여 있었다. 슬며시 손잡이를 돌려보니 열려 있었다. 조용히 들어가 카메라를 놓고 출입카드를 목에 걸고 나와 한수희가 있는 대기실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시죠?" 한수희의 코디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입구 쪽에서 막아섰다.
"아 이번에 일을 도와주게 된 보조 PD 김판수입니다." 나는 아까 가져온 출입카드를 살짝 들어 보여주고 바로 내렸다. "그러시구나.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대본이 조금 바뀌어서 그걸 전해주고 말할 것도 있어서요. 한수희 씨 안에 있죠?"
"예. 있어요."
"오늘 의상 코디는 모두 끝난 건가요?"
"예 끝났어요. 들어가세요."
안으로 들어간 현은 문을 살짝 돌려 잠갔다. 한수희는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의자를 끌어다가 한수희 앞에다가 놓고 앉으면서 모자를 벗었다. 한수희는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여기 와도 되는 거야?"
"응 아직은..." 한수희는 문쪽을 쳐다보며 "좀 있으면 매니저 올 텐데 어쩌지?"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고. 형사나 이상한 사람들에게 노출 안된 사람은 너뿐이라서 이렇게 왔어."
"잘했어. 오빠가 한 거 아니지?"
"응 그날 너랑 통화하고 강동서에 민경감인가? 만나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되어 있었어."
"누가 그런 거야?"
"그거야 모르지. 아무튼 소윤이한테 가려고 했는데 거기는 계속 주시하고 있을 것 같아서."
"너한테 미안한데.. 무슨 방법을 써서든 소윤이한테 이것 좀 전해주었으면 좋겠어."
현은 사진 두장과 쪽지를 하나 꺼내서 한수희에게 전해주었다.
"이게 뭔데?"
"쪽지는 아버지가 남긴 거고 이 사진은 서해그룹 최치호 부회장이고 이 사진은 이해진 경찰청장이야. 이 두 사람이 일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럼 어떻게 해?"
"몰라 아직 실마리가 안 잡혀. 분명히 무언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대놓고 찾아다닐 수도 없고 힘드네."
"흠... 아무튼 오빠 여자친구한테 들은 이야기하고 이것도 전해줄게. 근데 언니 회사는 어디야?" 현은 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을 하나 꺼내서 한수희에게 전해주었다.
"아 나 이 회사 임원들 몇 명 아는데. 잘되었네."
"어떻게 하려고?"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지. 의심가지 않게." 이때 밖에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갈게. 아 그리고 전화번호가 뭐지?" 한수희는 눈을 흘기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혹시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가면 내 전화니까 받아줘."
"알았어. 얼른 가." 현은 일어나면서 모자를 들고 걸어나가면서 문을 열고 모자를 썼다. 한수희의 매니저는 들어오면서 슬쩍 현의 얼굴을 보고 지나쳐갔다.
"보조 PD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으응... 내 업무폰 어디 있지?" 가방에서 폰을 하나 꺼내서 한수희에게 건네주었다. 한수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래된 팝송이 조금 들리는 가 싶더니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배우 한수희 씨 오래간만입니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예 회사일 하고 지내고 있죠."
"다름이 아니라 지금 거기 모델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지 않아요?"
"예 그렇겠죠."
"혹시 차기 모델 결정된 거 있나요?"
"아니요. 지금 카드 수수료 인하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 중이에요."
"그럼요. 저랑도 미팅하시면 안 될까요?"
"한수희랑 요? 우리 2016년 광고 집행비가 크지 않아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건 협상하면 되죠." 매니저는 한수희를 보며 두손을 들어 엑스자 표시를 한다. 그만 끊으라는 듯이 목을 치는듯한 시늉까지 하며 질색한다.
"그래요? 그럼 마케팅팀에 한번 말해보죠."
"그런데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마케팅팀 하고..."아까 받은 명함을 보며 "CSR팀 하고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거기 엄소윤 대리가 콘셉트를 잘 잡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컨텍 포인트를 그쪽으로 하면 어떨까 해서요."
"마케팅팀에서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아무튼 한수희 씨가 그 팀원까지 알았다는 게 놀랍네요. "
"그럼 제 매니저가 연락드릴 거예요.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전 촬영 들어가야 돼서."
"아 그래요. 기회 되면 식사 한 번해요."
"예 그래요." 전화를 끊자 매니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한수희를 쳐다보았다.
"그건 내 일 아닌가? 그리고 왜 갑자기 그 회사 모델을 하려고 그래? 지금 카드사 수수료 깎여서 모델 섭외에 많은 돈 지출도 안될 텐데...
"오빠 우선 협상은 해보고... 그냥 그 회사의 엄소윤 씨하고 이야기할 것도 있고 해서."
"그럼 그 사람만 만나면 되잖아."
"스케줄도 그렇고 잘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쪽의 CSR 활동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머 배우가 CSR로 이미지 좋아지면야 나쁠 것이 없긴 하지. 그런데 너무 독단적인 거 같아."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이번 촬영 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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