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탄생신화

김해시의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릉 (首露王陵)

사람이 태어나는 데에 있어서 이유가 있을까. 말과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상대가 생각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말과 글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토록 원하고 원해서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즉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경주시나 공주, 부여, 고령, 서울 등은 한 국가의 수도였던 곳이기에 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고 나서 백제의 왕릉들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가야의 왕릉은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MG0A9124_resize.JPG

먼 남해의 도시 김해에는 수로왕릉과 수로 왕릉비가 있다. 가락국은 금관가야를 칭하는 다른 말이다.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大加耶) 또는 본가야(本加耶)라고도 불렸으며 지리적으로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가야(南加耶)라고도 하였다. 금관가야를 칭하는 단어가 적지 않다.

MG0A9126_resize.JPG

옛 설화에서 새의 알에서 왕이 탄생했다는 것은 익숙하다.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러운 설화의 기반이 되었다. 솟대 역시 그것에 기인하였다. 솟대와 솟대를 연결시킨 것이 일본 신사로 들어가는 도리이도 그것에 기반한 것이다.

MG0A9129_resize.JPG

구지봉(龜旨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을 수습하여 집에 가져오니 모두 사람이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수로왕으로 ‘가락국’을 세웠는데 그 사람이 김수로다. 김수로와 그 왕후 허황옥은 둘 다 신화에서 등장한다.

MG0A9130_resize.JPG

"하늘에 내게 명하시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워 임금이 돼라 하셨다. 그래서 내가 왔으니 너희는 이 산꼭대기를 파고 흙을 집으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너희는 하늘이 내린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춤추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알을 가져왔는데 아이들의 성을 황금빛 알에서 나왔으니 김(金)이라 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하여 수로(首露)라 지었다. 김이라는 성씨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다.

MG0A9133_resize.JPG

다른 국가의 왕릉에 비해 김수로왕의 릉은 소박한 편이다. 그렇지만 역사만큼은 어떤 왕조보다 유구하다. 김수로왕을 이야기할 때 왕후인 아유타국의 허황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왕이 있으니 그 뒤를 이을 후손이 필요했지만 왕은 느긋하기만 했다. 베필은 그런 식으로 찾아야 되는 것인가?


"내가 하늘의 뜻으로 이곳에 왔듯이, 나의 짝도 하늘이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니 너무 염려치 말라."


참 여유로운 사람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남쪽 앞바다에 배 한 척이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도착했는데 여인이 나와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 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라 하며 나이는 이제 열여섯이라고 자신의 나이까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한 것이다.

MG0A9143_resize.JPG

조용하면서도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돌아보면서 생각을 하기에 좋다. 금관가야를 건국한 왕이라기보다는 태어날 이유가 있는 사람 두 명이 태어나서 만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왕비는 157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떴고 수로왕도 슬픔과 그리움에 빠져 살다가 158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정말 행복하게 오래 산 셈이다.

MG0A9147_resize.JPG

아유타국에서 와서 왕후가 된 허황옥의 후손 중 허선문(許宣文)은 공암촌(孔巖 :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살면서 농사(農事)에 힘써 많은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군량(軍糧)을 보급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해 허선 문은 고려 건국에 대한 공으로 삼한 공신이 되었다. 공암이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지명이 바뀜에 따라 양천 허 씨(陽川 許氏)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양천 허씨의 후손 중 한 여성이 지금의 논산으로 내려와 정착했는데 그녀의 후손 중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가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링컨 MKZ 하이브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