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고령 백송정 추모 향사
최근 고령은 남부 내륙 고속철도 고령 역 유치 등으로 많은 지역민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였을까. 지난 14일 오전 10시 벽송정에서 기관단체장 및 유계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벽송정 향사 봉행을 거행했는데 이곳에서 추모 향사 봉행전 남부 내륙 고속철도 고령 역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도 같이 진행 해 타지에서 오신 내빈들에게 고령 역 유치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자리도 가졌다.
고령의 벽송정에서 열린 추모행사는 고운 최치원, 일두 정여창, 한훤당 김굉필 선생 등 3 선현에 대한 추모 향사를 봉행하는 벽송정 향사 봉행은 곽용환 군수를 초헌관으로, 아헌관에 김맹동(김굉필 후손), 종헌관에 최창돈(최치원 후손)이 각각 맡아 진행되었다.
말년에 해인사 기거하던 최치원 안림천변으로 종종 내려왔다가 들 한가운데 퇴락한 벽송정 중수 1920년 하천 범람으로 유실 잔해 모아 학산 아래로 옮겨지어 500년 전통 유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늙어서 돌아와 송정 아래 누웠으니
한 가닥 가야산이 푸름 속에 숨었네.
최치원의 제영시가 벽송정(碧松亭)에 걸려 있다. 최치원과 수많은 유림이 벽송정에서 본 것은 물과 고령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이 아니었을까.
많은 분들이 이곳에 모여서 글도 남기고 직접 참여도 하고 있다.
벽송정은 6칸의 누각으로 그 밑으로 달구지가 드나들고 도리깨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고 한다. 지금은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에 팔작지붕이 얹어진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직접 와보니 벽송정이 고령군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고령군의 ‘벽송정 유계’는 그 기원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총 10권의 ‘벽송정 계안’을 보면 조선시대인 1520년대부터 벽송정을 중심으로 계가 결성되었고, 그 일대의 전답과 재산의 운용으로 유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 계를 만들 당시 선산김씨, 양천최씨, 고령박씨 등 총 28명이 모여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벽송정은 백산초등학교 뒤편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로는 안림천이 내려다보여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날만큼은 인심이 참 좋은 날이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좋고 술도 한잔씩 마실 수 있다.
고령지역에 생겨난 벽송정 유계에는 조선시대 고령 지방의 양반을 중심으로 전국의 양반이 참여했다고 한다. 명망 있는 고령 지역의 사족은 대부분 벽송정 유계에 가입해 지역 유림의 여론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키웠다고 알려져 있다. 가입 절차와 계원의 자격 유지도 매우 까다로웠던 벽송정의 그 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