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저수지 기슭 마을
사천은 지난달에 사천 와룡문화제가 열렸다. 와룡문화제는 사천을 대표하는 봄축제로 시민의 화합`, `와룡산과 고려 현종의 고향(풍패지향)이라는 문화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슬로건 아래로 열린다. 올해는`천년의 사천(泗川), 미래를 밝히다`라는 주제로 사천시청 광장 일원에서 열렸다. 그 와룡문화제의 와룡이 바로 이곳 와룡산에서 따온 것이다. 사천의 대표 명산인 와룡산 자락에는 와룡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와룡동 사지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사천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흔적은 바로 고려왕 현종에 있다. 풍패지향 (風沛之鄕)이라는 것은 바로 제왕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도 5년을 임기로 하는 대통령의 고향은 보존되고 있다. 하물며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을 왕의 자리에 있었던 왕의 고향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와룡마을로 가는 길에는 와룡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 주변으로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여행 삼아 걷기에 좋은 곳이다.
도시에서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도 마을은 사회학 및 문화인류학에서는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농산어촌의 지역사회를 총칭하여 촌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와룡마을을 지켜줄 것만 같은 나무가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보통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서는 집촌(集村)과 산촌(散村)이 구분되고, 촌락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평야촌·산촌(山村)·하곡촌(河谷村)·강촌·해촌·교외촌 등으로 나누어진다. 사천 와룡동 사지를 어렵게 찾아서 올라가 보았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곳에는 삼한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이라는 뜻의 삼한갑찰이 있던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가락국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저 먼 곳에서 찾아와 왕후가 된 허왕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따라 궁궐을 버리고 출가했는데 이곳에 있던 와룡사에서 수도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성불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 번성하다가 조선시대에 쇠퇴된 와룡사는 이후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수풀이 무성해서 주춧돌 등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와룡동 절터에서는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김해에 전해진 아유타국의 종교는 인근 지역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와룡산의 정기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와룡사를 비롯하여 백천사, 적선사, 흥보사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적한 마을의 여행지로 돌아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