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실안노을길
차이의 경험은 결국 다름에 대한 경험인데 별도의 개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타자와 차이는 우리가 낯섦과 조우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두 가지 표현이다. 실안노을길은 이미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길이다. 보통 낙조가 아름다우며 바다와 어우러진 길이라는 찬사가 일반적이다. 모충공원~(1.1km) 삼천포 마리나~(0.6km) 영복마을 입구~(1.5km) 선창마을 입구~(0.8km) 실안교~(1.5km) 삼천포대교 공원~(0.2km) 대방진 군영 숲~(0.3km) 대방진굴항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꼭 모든 길을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다.
매일 보는 일상이 아니라서 실안노을길은 두 번째인데도 불구하고 낯섦이 있다. 사실 실안이라는 말도 익숙하지는 않다. 지역명이긴 한데 도시 사람으로는 노을이면 노을이지 지역명을 앞에 붙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조금 독특한 시각이 있다. 보통 남자는 어떤 형상을 보고 그렇다고 이해하는 이성의 기하학적인 정신으로 사물을 바라보려고 하고 여자는 조형물이 가지는 빛의 고유성이나 풍광이 가진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이 고유성을 눈치채지 못하기에 디테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실안노을길의 삼천포 공원에서 가만히 바다를 보니 쉴 새 없이 케이블카만 오간다. 케이블카를 탔을 때는 움직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갯벌이 있는 실안길 역시 파도가 끊임없이 친다. 파도는 수많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래나 조약돌과 부딪치면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지만 우리는 하나의 파도소리로 인지한다.
끊임없이 오가는 케이블카를 뒤로 하고 다시 실안노을길을 걷는다. 우리의 삶이나 자연의 현상은 모두 작은 것에서 크게 통합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수학의 미적분에서 미분처럼 작게 조각해서 미분을 하면 작은 소리들이 들리고 다시 합쳐지면 적분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는 적분 된 것에 익숙한 존재라면 여자는 미분된 것에 익숙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감에 조금 더 발달된 존재가 여자가 아닐까. 그래서 여자의 육감은 무시무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묘한 변화를 여자들은 알 야채 린다.
한적한 어촌마을이어서 조용해서 좋다. 바닷바람 소리만 들려오고 끊임없이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부서지면서 소리를 낸다. 육감이 발달한 사람은 어제 보았던 풍경이라도 그 모습이 어제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미세 지각이 발달을 한 것이다.
말려지는 미역줄기 위로 하얗게 소금이 앉기 시작한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비릿한 바닷 향이 묻어 나오지만 그리 불쾌한 냄새는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냄새라고 할까.
실안노을길의 한켠의 어촌마을에 가면 언제나 갈지 모르는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이곳에서 삼천포대교로 이어지는 해안 바닷길은 그야말로 석양을 담기에 가장 아름다운 명소이다. 그래서 실안 노을길이 생겨났다.
실안마을 앞에는 오래도록 대를 이어내려오는 죽방렴이 있다. 전에 실안마을을 왔을 때는 이곳에서 죽방멸치를 사서 갔었는데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가려한다. 죽방멸치로 끓인 육수는 일반 멸치로 만든 육수보다 훨씬 진득하고 깊은 맛이 있다. 다음에 올 때는 한 상자 구매해야겠다.
실안 노을길은 사천시가 2011년 조성한 이순신 바닷길 가운데 하나다. 바로 이 길은 4코스에 해당한다. 모충공원에서 늑도까지 8㎞다.
누가 말했던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배가 아니라고 말이다. 바다에 나가서 파도에도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배로서 진가를 인정받는다. 사람 역시 안정된 곳에서 있을 때는 진가를 알지 못하지만 위기에서 그 진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걷다 보니 실안노을길을 안내하는 지도가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대부분의 길들이 닮아간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일까.
실안노을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끊임없이 오가는 케이블카를 보는 것도 실안길의 고즈넉한 풍경을 보는 것도 죽방렴과 이유를 알 수 없이 이리저리 오가는 해류를 보는 것은 모두 웃음을 더 많이 짓기 위한 일이 아닐까.
실안마을의 끝까지 왔다. 웃음이 지향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유 연면서 생생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 스피노자가 쓴 에티카에서 보면 사람의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생각하고자 한다고 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