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kiln)

도요지와 도공 이삼평

가마솥밥이 맛이 더 좋은 이유는 밀폐된 구조에서 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릇 역시 밀폐된 공간에서 만들어야 높은 열을 받을 수 있기에 서서히 경질 가마의 제작을 위해 밀폐형 가마로 진화하였다. 가마에는 승염식(昇焰式)과 도염식이 있는데, 근대 이전에는 승염식 가마가 중심이었고 현대의 가마는 대부분 도염식이라고 보면 된다. 공주에는 일본에서는 신으로 자리한 도공 이삼평의 혼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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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동학사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학봉리 요지가 있다. 이곳은 조선 전기에 철화분청을 굽던 가마가 집중적으로 분포되는 곳이다. 계룡산 기슭은 점토와 유약, 땔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수많은 도자기 가마들이 이곳에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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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청자를 만들던 곳은 전라남도 강진이지만 조선시대 백자는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렇게 발달하던 자기 문화는 산화철 성분의 자연친화적인 장식 무늬를 새겨서 넣은 흙갈색 철화문이 특징인 철화분청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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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있었던 조사는 1927년에 일본인 학자가 발굴하여 가마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고 나서 1992년, 2007년 정밀 지표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도자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출토된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완 등으로 다양한데 일본 다완의 일부 뿌리는 바로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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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는 경사진 석비레 암반을 이용했고 봉토 부분은 내화토로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룡산 도예촌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도공 이삼평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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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만들었는지 몰랐다가 우연하게 도공 이삼평 공원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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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자문화는 비교적 늦게 발달하였다. 1590년대 조선 침입 때 조선의 도공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일본 도예는 완전한 전환을 하게 되었다. 이때 조선인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아리타[有田]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제작하여 보급시켰고 가라쓰[唐津] 요지도 조선인 도공들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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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나무로 생활집기를 제작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도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발달하여 유럽으로 수출되어 비싼 값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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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 이삼평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가서 도신이 된 이삼평은 일본은 도자기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됐고 그 자금이 유럽의 문명을 흡수해 일본을 근대화시킨 ‘메이지유신’의 밑천이 되게 만들어 준 것도 사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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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살펴본 학봉리는 흙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처음에 도자기를 만들 흙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20년에 걸쳐 일본 전국을 누비며 흙을 찾아 헤맸는데 결국 사가현에 있는 아리타(有田)에서 흙을 발견해 계룡산 학봉리에서 만들던 분청사기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616년 고품질 일본 도자기의 역사가 조선 도공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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