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줄 서기

청양 영모재 이효원의 소북

지금도 과거에도 정치권을 보면 줄 서기 하는 정치인들을 본다. 유력한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유력한 이에 줄 서서 살아가려고 한다. 조선조 임진왜란이 끝나가고 나서 선조의 말년 극심한 정치 대립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민심을 얻은 광해군이 못마땅했던 선조지만 후사가 없어 왕세자로 두었지만 영창대군이 태어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정치인들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어린 나이의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갈라져서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영창대군의 세력이 커지기 전에 선조가 승하하자 장성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소북파는 힘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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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가면 함양 이 씨가 처음 청양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이관과 그 아들인 이효원의 제사를 올리는 청양 영모재가 있다. 이관은 청양에 처음 들어와서 살았고 이효원은 그의 아들로 소북의 측에 섰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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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북의 대표 영수인 유영경은 임진왜란 때 활약을 했으며 류성룡이 전란이 끝나자마자 북인의 상소로 노량해전이 일어난 날 영의정에서 관직 삭탈당하게 된다. 그 후에 류성룡은 다시 올라오라고 했으나 오르지 않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내려오고 나서 6년 후인 북인의 유경영은 1604년 영의정에 오르게 된다. 그는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 이이첨(李爾瞻)·정인홍의 탄핵을 받고 경흥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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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영모재의 건물이 있는 안으로 들어가 본다. 1998년 12월 29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이효원은 대북이 집권할 때 사사되지는 않았지만 거제도로 유배되어 살게 된다. 그리고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내려오자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청빈한 생활로 산수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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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파에 의해 아버지 이효원이 유배되고 형 조차 죽게 되자 그 동생인 이해는 벼슬을 단념했었다고 한다. 그 후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에 오르게 된다. 정권에 줄 서기를 했다가 계속 바뀌는 가문의 흥망을 보는 것만 같다. 이 곳은 재실 4칸, 협문 1칸, 곳간 2칸, 행랑채 9칸으로 지어진지 350여 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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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원처럼 유유자적 독서로 세월을 보내고 촌로들과 산수를 즐기며 일생을 마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속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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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세우기는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아니 학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좋게 말해서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노론, 소론, 북인, 남인, 다시 대북, 소북등으로 갈라졌지만 그 형태는 지금과 비슷해 보인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이효원은 인조반정으로 14년 만에 풀려나 초가에서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집이 재신(宰臣)을 지낸 사람의 집인 줄 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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