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차벽을 세우고 1차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어디다가 만들까요?"
"수원 신갈 IC에다가 만들면 되겠네."
"아직 경찰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을 못했는데요."
"병신아 그럼 경찰차로 만들면 되잖아."
"엄청난 교통대란이 있을 텐데 괜찮을까요. 그리고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비난은 어떻게 하구요."
"서울 경찰청장이 하라잖아. 그럼 부산까지 쭉 보낼 거야?"
"그것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고속도로 위에 있는 차들부터 양쪽으로 다 세우고 혹시 모르니까 오산 쪽에 2차 바리케이드도 만들라고."
"예 알겠습니다."
평일보다 적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서 하행선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 경찰 오토바이들이 진입하기 시작했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도 죽인 판국에 인질이라도 무사하겠어요?"
"그러니까 막아야 하는 거지."
"대화를 먼저 시도하고 나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괜히 자극했다가 사람들이라도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건 저런 놈이 한 것이라고 모두 몰아세우면 돼. 그건 그렇고 SWAT팀은 언제 온대."
"15분쯤 있으면 헬기로 공수된다고 합니다."
"지금 버스 상황은 어때."
"승객들 옷으로 모든 창문을 가리고 있다고 합니다."
14명의 승객의 폰을 모두 수거하고 승객들이 입고 있던 옷으로 대부분의 창문을 가린 현은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았다. OBS의 김혁 기자를 가리키며 앞에 오게 했다.
"미안해요. 저는 누구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상황이 끝날 때까지만 제 지시를 따라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시죠. 믿던 안 믿든 간에 저는 살인자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결백하면 떳떳하게 경찰이나 방송에서 밝히면 되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총은 진짜 총입니다. 아까 보셨죠. 그러니까 그만 말하시고 개인 의견은 받지 않겠습니다."
집에서 OBS의 버스 내 방송과 다른 방송사에서 생중계해주는 방송을 보고 있던 엄교도관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는 오늘 어디 나간다고 그래?"
"모르겠네요. 새벽같이 어디로 나갔어요."
"회사일인가?"
"친구하고 무슨 일 있다고 하던데요. 자세한 건 몰라요."
"한 번 전화해봐."
"왜 그래요?"
"그냥 해봐. 그리고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그래."
"김수진 기자.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21 투데이의 김수진입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저 밑에는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버스가 있습니다. 승객들의 옷가지 등으로 가린 상태여서 안의 상황이 잘 보이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OBS의 방송에 의하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예 지금 방송사의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무고하다는 것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는데 그런 버스에 탑승해서 방송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지가 않는데요. 게다가 상대는 살인용의를 받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현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 인가요?"
"전에 제가 기획기사를 통해 밝힌 적이 있었는데요. 어릴 적에 아버지의 사형으로 인해 받은 트라우마를 철저히 숨겨가며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처럼 보인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그럼 이 인질극은 결국 누군가의 주목을 받으려는 쇼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썼던 기사나 여러 가지 이슈를 일으킨 것을 보면 사람들의 주목받기를 즐겨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경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지금 버스의 앞뒤를 10여 대의 경찰차가 에워싸고 가고 있으며 수원 부근에서 1차 바리케이드를 치고 버스를 막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안에 인질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나요?"
"아직까지 안에는 최현만이 있어서 진압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고 기동타격대와 저격수 등을 배치해 위급상황에 대처하려고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영상을 보니 버스 안의 상황은 잘 보이지 않는군요."
"예 승객들의 옷가지뿐만이 아니라 가지고 온 테이프 등으로 주변 창문과 버스의 운전석만을 제외하고 모두 가린 상태입니다."
현의 손가락으로 김혁 기자를 향해 원으로 돌리는 제스처를 취하자 김혁의 오른손의 집게손가락이 카메라의 녹화버튼을 눌렀다.
"저는 이 버스에서 죽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저에게는 죽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 그들에게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라뇨."
"그건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고요. 저도 마지막 끈은 있어야 하니까요. 저에게는 그들이 숨겨놓은 무기명 채권 6,000억과 그 채권에 붙은 상당한 이자의 금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6,000억이요? 그게 사실이라면 그 돈을 챙겨 몰래 도망가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행동인 거 같은데. 앞뒤가 잘 맞지 않은데요."
"물론 그 정도의 돈을 현금화한다면 모 다단계 사기꾼처럼 다른 나라로 밀입국해서 잘 살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제 인생이 아닙니다."
"혹시 그 채권을 현금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꺼번에 현금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사채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버스에 타고 계신 승객분들에게 이런 위험을 무릅은데 대해 보상도 할 생각입니다."
갑자기 버스 안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묘한 기대감과 의심스러운 눈초리 그리고 공포감이 누그러드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름도 없고 소유도 없다는 그 채권의 주인들이 최현 씨를 죽게 놔둘 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들은 그 돈을 찾기를 원할 테니까요."
"예 제가 죽는다면 그 돈은 절대로 햇빛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대체 그 돈의 출처가 어떻게 됩니까?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나요."
"자세한 건 말해드릴 수 없고 1990년대에 조성된 그들만의 비자금이라고 해두죠."
터미널에서 발이 묶여 사상 초유의 버스 인질극을 보던 사람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빨리 사살하라는 사람과 저 버스 하나 제압 못하는 경찰을 비난하던 사람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진짜야? 야.. 그럼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기만 하면 로또네."
"1억은 줄 거 아냐. 가슴 좀 조리고 지시 좀 잘 따르면 되겠네."
"내가 저 버스 탔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있겠어. 뻥치는 거지."
"아니야 가능할 수도 있어 그때 모르쇠 비자금이 그렇게 많았다며."
"아무튼 재미있는 놈이네. 그냥 그 돈 가지고 사라지면 될걸. 뭐하러 저런 쇼까지 하지."
"혹시 알아 그 사람들 정체를 밝히려는 것일 수도."
"이 나라가 썩었어. 썩었어. 저 돈이 어디서 나왔겠어."
"이자까지 하면 1조 가 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
"아무튼 부러워 저런 로또도 있네."
긴급하게 만들어진 경찰 상황실에서도 사람들은 수근대기 시작했다. 최현이 그런 말을 하기전에 꼭 생포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인질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명령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최현의 신변확보가 우선이라는 상부 명령이 조금은 의아했던 실무자들이 여럿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