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와 역사

금산 역사문화박물관

금산에 박물관이 생긴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금산 박물관은 향토사료관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작년에 재단장을 거친 금산 박물관은 체계적인 금산의 역사를 만날 수 있도록 역사문화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좀 더 체계적으로 금산이라는 지역에 대해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해두어서 군더더기 없이 돌아볼 수 있도록 조성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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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역사박물관은 1층 금산 역사관과 2층 금산 생활관으로 나눠진다. 1층에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현대관 등 5개의 전시실로 구분, 시대별 변천사를 연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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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물을 비롯해 제원면 수당리 유적, 음지리 금동여래입상, 태조대왕 태실, 덕흥대원군 태석함, 임진왜란 자료 및 유물, 독립운동과 인물, 향토유물 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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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예전에 향토관이 조성될 때와 많이 달라진 점은 없다. 물레방아가 놓인 곳에는 연못과 화원처럼 조성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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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 밝혀진 역사적인 흔적은 11개소로 구석기유물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 년 전부터이며 사냥과 식량의 채집을 했던 것이 일반적인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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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구석기시대의 찍개, 여러 면 석기와 후기 구석기시대의 돌날 몸돌 등이 발견되어 금산지역에 선사인들의 생활터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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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요충지로 자리한 것은 웅진시대를 열면서부터이다. 475년 백제는 고구려의 파상적인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자 지금 공주로 수도를 옮긴 다음 금강 상류지역에 자리한 금산지역을 신라와의 접경지대를 방어하기 위한 요충지로 활용한다. 금산에 자리한 백령산성은 신라와의 각축전에서 활용되던 방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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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백제의 체제 안에 편입되고 나서 삼국시대에 방어이자 공격의 기반을 다졌으며 교류를 하던 곳이자 교두보로서 활용되던 곳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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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지역의 수당리에서는 둥근 고리 큰 칼, 흑갈유도기편, 살포등 적어도 5세기 무렵 수당리의 토착세력이 백제 중앙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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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을 보존하고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토기가 필수적이었다. 금산지역에서는 백제, 신라, 가야의 토기가 모두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당리에서는 백제토기가 창평리 유적에서는 가야토기, 장대리 고분군에서는 신라토기가 발견되었다. 신라토기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6세기 백제가 관산성 전투에서 패한 후에 신라가 금산지역에 진출한 증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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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패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는 김무력(金武力)·고간(高干) 등이 거느린 신라군에 크게 패하여 성왕은 전사하고 좌평 4인, 군졸 2만 9600 여인이 전사하였다. 이 곳 싸움으로 나제 동맹은 깨어졌고 신라는 한강유역을 점유하여 통일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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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조선시대에 와서야 행정구역상으로도 지리적으로 중요하게 활용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치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며 왜군이 전라도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아낸 기념비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초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지역도 바로 금산이다.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운 진산 사건으로 인해 박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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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일제 한일합방 당시 절개를 지킨 유일한 군수가 있던 곳이다. 1907년 태인군수,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하였는데 항일의병을 보호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를 구하지 못한 것에 한탄을 하며 조종산에 목매어 자결하였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360여 명의 군수 중 절개를 지킨 유일한 사람이었다.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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