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4-6

8시간 전

국가정보원의 한 사무실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30대 남자가 열중 쉬엇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못하고 서 있었다.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공허한 공간에 메아리처럼 울려펴져나갔다.


"그게 뭐야. 슈퍼컴퓨터 HERA? 뭐 그게 있으면 2일 만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 뭐야?"

"예 그게 지금까지 움직인 동선이나 SNS 등에 올린 자료와 CCTV 정보는 모두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뭐. 이거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그래 그 여자친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겠어. 그런데 향후 행동이나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는 없잖아. 그리고 가끔 최현도 보이고 그치?"

"예 그렇습니다."


상관인듯한 남자는 갑자가 앞에 있던 골프공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왼쪽 머리 부분에 맞고 튕겨나간 골프공은 옆에 있는 진열장의 유리를 깨트렸다. 남자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뭐가 그래. 너 같은 새끼가 있으니까 조직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야."

"죄송합니다."

"우리가 그 친구들 기소하려고 자료 수집하냐? 결과가 있어야지. 우리가 검찰이냐고. 네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는데 뭐? 패턴인식? 지랄하고 자빠졌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나가서 잡아와."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허리까지 고개를 숙인다음 문을 열고 나갔다.


소윤이는 자신이 아빠에게 받은 메시지를 빨리 현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2시간가량을 생각해봤는데 별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둘 만의 추억이 담긴 무언가 물건에 얽혀 있는 것일 것 같다는 정도다. 18년이나 지난 지금 현오 빠가 이 메시지만을 보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해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 분석, 추리' 다. 좀 쉽게 생각해볼까?


현철아

바꾸어 해석해서

나무를 심은 책을

읽어라

293665101166


이렇게 하면 좀 더 단순해지는 것 같다. 현철 아는 말 그대로 현오 빠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바꾸어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무를 심은 책이라는 것은 표지에 나무가 그려져 있던지 나무를 같이 심을 때 읽었던 책이던지 나무와 관련된 책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숫자다. 이진수는 정상적인 숫자로 치환하기 위해 사용이 된다. 숫자.. 숫자.. 이 패턴은 대체 뭐야. 아!!!!


숫자를 두 단위로 나누어보자. 29, 36, 65, 다음의 숫자가 묘하다. 숫자가 계속 증가하는 패턴에서 낮은 숫자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101, 166일 가능성이 크다. 앞에 두개의 수가 허수라는 가정하에 29+36 = 65, 36+65 = 101, 65 + 101 = 166 흔하디 흔한 피보나치 수열이다. 이 메시지의 열쇠는 65, 101, 166에 있다. 더 이상은 모르겠다. 한수희는 오빠의 연락처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소윤은 가방을 뒤져서 지난번에 받은 한수희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끄집어냈다. 적힌 전화번호를 차례대로 눌렀다. 얼마나 울렸을까. 끊으려고 하는 순간에 건너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저 엄소 윤이라고 하는데요."

"아~ 언니.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오빠한테 1시간 전에 연락이 왔었는데."

"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

"혹시 언니한테 전화 오면 말하지 말랬는데."

"오빠한테 꼭 중요한 것을 알려줘야 해서 그래요."


소윤은 혹시 몰라 전화기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복도의 안쪽으로 갔다.


"뭔데요? 저한테 말해주면 안돼요?"

"제가 직접 말해줘야 해요."

"전화기를 꺼놓을 거라고 하던데요. 22일 아침 8시에 켜놓을 거라고 했어요."

"숨기지 말고 말해줘요."

"그래요. 언니도 알아야 하니까. 8시에 강남역에서 과천으로 가는 3030번 버스를 탄다고 했어요. 그리고 9시 30분에 양재 IC의 만남의 광장 이면도로로 픽업해달라고 요청하였고요. 그리고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인질극을 한다고 했어요."

"인질극이요? 흠... 오빠가 무언가를 알아냈나 보네요.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거네요. 우선 이슈화를 시켜보겠다. 그런데 계획이 뭐래요?"

"전 거기까지만 들었어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내일 무사히 픽업해주세요."


소윤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는지 오랜 시간 전화가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받았다.


"왜? 아빠랑 이야기는 했어?"

"그게 아니라 선배 내일 중요한 것을 해줘야 될 것 같아."

"뭐를 해야 하는데?"

"버스 좀 타 줘."

"버스? 웬 버스야 갑자기."

"현 오빠가 버스를 타고 인질극 할 거래."

"나보고 인질극을 하는 버스에 타라는 소리야?"

"응 무슨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라고."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대체 뭘 가지고 인질극을 한다는 거야."

"몰라. 아무튼 가줄 수 있어?"

"하나만 물어볼게. 그 친구 정말 믿을 수 있는 거지?"

"응 믿을 수 있어."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

"강남역에서 과천으로 가는 3030번 버스. 8시야."

"알았어 그 친구 얼굴 아니까. 갈게."

"선배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가 소윤이네 집 쪽에서 들려왔다. 검은색 복면을 쓴 남자가 집에서 뛰쳐나온 후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엄교도관이 나오면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도둑이야. 도둑." 소윤이는 전화를 끊고 집 쪽으로 달려갔다.

"아빠 무슨 일이야?"

"응 자다가 일어났는데 검은색 복면을 쓴 두 놈이 현관문쪽으로 나가고 있잖아. 그래서 따라나왔는데 금세 없어졌네."

"뭐 없어진 거 있어?"

"아직은 몰라."

"혹시?.." 소윤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봤다. 자신의 지갑과 가방, 아빠가 건네주었던 쪽지가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어떻게 알았지? 도청기가 있었던 것인가?"

따라 방으로 들어온 엄교도관이 소윤을 쳐다보며 물어본다. "뭐가? 없어졌어?"

"아니야. 아빠. 없어진 것이 없는 거 같아."


쪽지는 가져갔지만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을까? 우선 현오 빠를 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통화하는 것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전화는 내 전화가 아니니 알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배우 한수희 씨나 선배의 전화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가 생각한 대로 인질극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이슈화만 하고 스스로 잡히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질극을 벌여서 그들을 끌여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고속도로에서 인질극을 벌인 자체는 범죄행위다.


오빠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거야.


현은 추위에 떨면서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막다른길에서도 항상 길은 있다. 아버지가 해준 말이다.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은 결코 꺽이지 않음이다. 꺽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청춘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난 내 인생의 4%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4%..이것만 해결하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해결해야 한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 어니 젤린스키 '모르고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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