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왕산 역사공원
구미에 가면 왕산 허위라는 인물이 있다.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으로 왕산 역사관도 따로 조성이 되어 있다. 그런데 상주에 오니 왕산 역사공원이라고 해서 구미의 인물과 연관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인물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였다.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였던 상주에는 많은 문과 급제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 힘이 바로 상주시 서성동에 있는 해발 71.3m의 시내 중심부에 솟아 있는 작은 산 왕산에서 이어졌다고 하여 이 산을 장원봉(壯元峯)이라 불렀다고 한다.
작은 언덕에 불과해 보이지만 왕산을 중심으로 조선조까지 관아가 있었고, 산 아래에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이 바다와 연해 있어서 매 자오시(子午蒔)에 조수(潮水)가 오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상주인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역사와 문화의 산실을 기념하여 2011년에 역사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상주 평화의 소녀상 역시 왕산 역사공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노악(露嶽)· 석악(石嶽)· 연악(淵嶽)이 이산을 알처럼 품고 있다는 의미의 삼산, 남천과 북천이 탯줄처럼 영기를 낙동강으로 이어 간다고 하여 삼산이수(三山二水)의 정기가 이어지는 곳이다.
상주 평화의 소녀상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2016년이다. 왕산 역사공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상주의 혼을 살리는 것을 포함하여 유적 발굴조사와 보존대책 수립, 정자, 산책로, 연못, 음수대 등을 설치하고, 금도랑가를 재현(80m)했던 것이다.
보통 명산이라고 하면 그 산세가 남다르고 규모가 도시를 감싸는 것을 연상한다. 왕산은 상주의 정중앙에 자리한 산으로 신라 31대 신문왕 7년(서기 687년)에 상주성을 쌓고 성의 4대 문 중앙에 자리한 작은 산이다. 이곳의 봉을 중심으로 왕산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주에서 태어난 인재들의 이야기와 상주목사로 도임하여 일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청백하고 정사를 올곧게 처리한 이초로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삼도수군절도사를 지냈던 상주 진영장의 이인하 등의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도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는 임란북천적지에는 이 지역의 객사인 상산관, 외삼문인 태평루, 관아 정자인 침천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건물들은 원래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경상감영은 왕산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경상감영의 본영을 경주에 설치하였다가 1408년 상주에 옮겨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까지 경상도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왕산의 위로 걸어서 올라가면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복룡동 마을 가운데 있던 석불좌상이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은 1975년이다.
석불좌상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으며 머리에는 큼직한 나발이 표현되어 있고 둥글고 풍만한 얼굴에 내려보듯이 뜬 눈과 작고 두툼한 입에서 중후한 모습이 보인다. 조각 수법이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신기하다.
왕산 역사공원을 다시 조성함으로써 상주의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인류 원리에는 강한 인류 원리와 약한 인류 원리가 있다. 약한 인류 원리는 시간 그리고 또는 공간이 무한하거나 큰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가 발달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공간과 시간에 의해서 제한된 특정 영역들에서만 만족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상주의 왕산이라는 곳은 그런 필요조건이 만족했던 곳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