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이순몽이 살았던 영천 숭렬당
세종대 쓰시마를 정벌했다는 역사적인 사건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당시 왕위에 있었던 세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조선 전기 중군 절제사, 경상도 도절제사, 영중 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인 이순몽이 살던 집이 영천에 남아 있다.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이성계나 최영 장군이 왜구를 정벌했지만 조선초에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상황이 혼잡하면서도 먹고살기 힘든 환경도 한몫을 했다.
영천시내에 자리한 숭렬당은 잘 지어진 건물이다. 이 곳이 바로 세종대에 대마도 정벌에 대전과를 세웠으며 433년 중군 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이순몽이 살던 숭렬당이라고 한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복원 이후에 지속적인 보수는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순몽은 영천의 삼현사(三賢祠)와 숭렬당(崇烈堂)에 봉향 되었으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이순몽 역시 고려말, 조선초에 살았던 인물이다. 태어난 것이 1386년(우왕 12)이며 사망이 1449년(세종 31)이다. 경상좌도 병마절제사, 중군도총제, 좌군도총제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그 전과가 남달랐던 터라 세종의 많은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이순몽은 김효성(金孝誠)과 함께 대전과를 거두어, 대마도주 도도웅이(都都熊耳)가 항복하고 수호를 요청하였으며 여진을 정벌하고 돌아오자 세종은 노비와 의화(衣靴)를 내려주었고 총애가 극진하였다고 한다.
영천 숭렬당은 보물 제52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앞면 5칸, 측면 3칸의 15칸 규모의 건물로 원래의 모습을 잃었는데, 1970년에 보물로 지정된 뒤, 해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의 형태를 보면 막돌로 허튼층쌓기를 한 기단(基壇) 위에 있는데, 기단 윗면에는 다듬지 않은 둥글고 넓적한 자연석을 주춧돌로 놓고서 그 위에 둥근 두리기둥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한 동의 건물의 규모로 작지는 않은 편이다. 건물의 가구(架構)는 5량(樑)이며, 공포(栱包)는 2익공(二翼工)식으로 결구(結構)되었다. 건물 안쪽의 고주(高柱) 머리에는 보아지를 놓아 들보를 받치게 하였고, 대들보 위에는 작은 기둥인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마루보와 중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영천 숭렬당은 세종대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인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인데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지붕을 덧달았다.
이순몽은 1447년(세종 29) 영중 추원사(領中樞院事)로 승진하였으며, 1449년(세종 31) 8월 본가에서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에 있으며, 진성(眞城) 이원윤(李源胤)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