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 박문수 조선의 뇌물을 말하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


박문수 생가

박문수 : 1691년에 태어나 1756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문신이다. 예문관검열, 대사성, 충청도 암행어사, 예조참판, 호조참판, 병조판서,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면 소론쪽 인물이다. 탕평의 실을 강조했으며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았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사로서의 활약보다는 정치적인 활동이 많았지만 백성을 생각했던 그 였기에 지역마다 많은 구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교수 : 지난번에 말한 대로 이번 중간고사는 세 팀으로 나누어서 첫 번째 팀은 어사 박문수의 입장, 두 번째 팀은 뇌물이 일상화되었던 조선에서의 양산군수의 입장, 세 번째 팀은 이 두 팀의 입장을 들어보고 판단하는 추관의 역할을 맡는 거야. 내가 점수를 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조사했느냐와 그걸 가지고 합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했으며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기준으로 매길거야. 그리고 사례는 이미 말한 대로 서양과 동양을 가리지 않는걸로.

진수 : 저희 팀은 사다리타기를 한 결과 불행하게도 양산군수의 입장을 맡았고 주만이 팀이 박문수를 수진이 팀이 추관 역할을 맡았습니다. 교수님 시작할까요?

교수 : 그래 어쨌든 대변하는 것은 한 명씩이니까 진수, 주만이가 대변하고 수진이는 조율하는 걸로 해봐.

진수 : 닭을 뇌물로 바쳤다고 해서 파직까지 시키는 것은 과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뇌물을 받은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을 수는 있으나 조선 역사에서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과하지 않다면 어느 선까지는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조선에서 유명한 유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뇌물수수가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태조때부터 세종 때까지 도 관찰사를 지낸 이유는 공금 횡령과 뇌물 수수로 유명했지만 사망 후에 조정에서는 부의를 내려주었습니다. 이는 하급관리부터 고급관리까지 뇌물이 성행했으며 이는 조선이 유지되는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만 : 그렇다면 뇌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민초들이 힘들어져도 된다는 말인가요? 부정한 관리를 적발하는데 이름이 높았던 박문수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만약 닭 한 마리가 쌀 한섬이 되고 비단, 포목, 소까지에 이른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는 적에게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간 사람의 예로 들어 말한 적이 있습니다. 50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100보 도망간 사람이나 차이는 없는 법입니다.

진수 : 그럼 민초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을 지을 때 무상으로 인력을 징발했습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징발이 되어 생계가 유지할 수 없을 때 뇌물을 바쳐 빠져나왔다면 그 사람은 처벌해야 합니까? 양주군수는 조정에서 오는 높은 관리등의 접대를 위해 일부 비축을 위해 준비했다면 그것 역시 지역의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만 : 적절하지 않은 예입니다. 군수와 일반 민초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진수 : 아닙니다. 조선 역사상 백성이 생계형 뇌물등을 제공하여 하급관리, 중간관리, 고급관리에 이르기까지 커넥션이 형성된 예는 적지 않아 있어 왔습니다.

수진 : 참고할만한 사례라고 생각되니 그냥 진행해주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박문수에 대한 사람됨을 이야기 해주세요.

진수 :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박문수는 존경할만하고 중요 요직을 두루두루 겸한 사람입니다. 호남어사로 나갔을 때는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도 기울였으며 함경도 진휼사로 임명되었을 때는 경상도 곡식 1만 섬을 가지고 굶주린 백성도 구제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조선의 전체의 문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어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만 과한 처사는 오히려 관료 조직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박문수묘.jpg 박문수의 묘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 산1-1)



주만 : 알다시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재정은 바닥이 났습니다. 이는 공명첩을 남발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족보를 팔고 양반의 수가 급격하게 늘자 폐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닭을 바친 촌부처럼 평민이나 천민에서 적지 않은 효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양반가에서 효자문이나 열녀문을 세운 것을 보면 특권층에 대한 과대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작아보이는 일이라도 쉽게 지나가버린다면 정치적으로 문란하게 되고 결국 백성들의 삶을 피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수 : 그쪽이야 말로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요. 시대적으로 볼 때 뇌물이 성행하지 않았을 때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뇌물의 양이 문제가 될까요. 부패한 정도를 따져서 양형을 따지는 것이 적절할까요. 중세시대에 로마 교황청이 운영 비용등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를 적극 권장했고 유럽의 군주들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권한들을 매관매직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적절하게 맞춰가야하는 것이지 자신의 잣대와 원리원칙만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박문수가 직접 위장하여 닭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것이 선의였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또한 함정수사이며 양주군수에게는 불합리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주만 : 법으로 대항할 수 없는 백성이 닭을 군수에게 가져다가 바치는 것은 후원 형식의 뇌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닭을 가져다준 것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대가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조선 최초의 법전이라는 <<경제육전>>에서는 뇌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대부가 관원에게 사적인 청탁을 하고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받으면 청렴하지 못한 죄로 다스린다" 라고 말입니다.

진수 : 강력한 뇌물 방지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태종이 집권하면서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양주 군수는 청렴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뇌물을 광범위하게 대신과 주요 관원에게 뿌렸다면 박문수가 고발하였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그를 파직할 수 있었을까요. 뇌물은 적게 쓸수록 고발당하기 쉬운 법입니다.

주만 : 그건 시대가 어지러웠기 때문입니다. 조선 역사상 백성들에게 태평성대에 가까웠다는 세종시대로 가보면 대사헌 신개의 사례가 있습니다.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최치가 조정의 관료들에게 상납을 하는데 그중에 신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문어 두 마리에 불과했지만 철저한 조사를 거쳐 그가 혐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서야 대사헌에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은 윗물이 맑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입니다.

수진 : 양측의 입장을 잘 들어보았는데요. 뇌물은 망국병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양주군수의 입장과 박문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내용과 지금 양측에서 내놓은 자료를 통해 판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끝난 것 같은데요.

교수 : 다들 열심히 조사해왔네. 이곳이 법정은 아니니까 너무 법리적인 해석은 할필요는 없을 것 같고. 뇌물 하나가 바꾼 것은 세상에 수없이 많아. 그것이 크든 작든간에 말이야. 오랜 전쟁이었던 십자군 전쟁을 지속으로 하게 된 것은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티오크가 함락되면서 부터인데 함락당한 이유가 어이없게 십자군을 이끌던 보에몽이 수비대장에게 뇌물을 줘서 그렇다는 말도 있어. 조선시대에도 관직을 삭탈하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징벌이긴 했어. 아무튼 수진이 팀은 결과가 나왔어?

수진 : 예 양주군수 파직에 5표, 파직대신 감봉등에 3표, 너그럽게 넘어가자가 1표 나왔어요.

교수 : 결국 뇌물의 크기가 크든 작든 간에 처벌을 해야 한다로 결론이 났네. 팀별로 조사한 것과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 등을 정리해서 내도록 해.

진수 : 교수님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박문수의 경우 영조가 잘 활용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교수 : 박문수가 어사일도 했지만 균역법 제정에 공을 세웠으며 고른 인재의 등용을 주장할 수 있었던 그런 자리에 있었으니까. 영조의 용인술은 빛을 발했다고 봐야지. 조선은 봉건제 국가로 대다수의 백성들은 임금이 청렴하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우러러 보는 대상이었으니까. 임진왜란때 선조나 전국에서 여성을 과도하게 징발했던 연산군을 제외하고는 임금은 백성들에게 하늘이었어. 어사 박문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했던 행동들로 인해 백성들의 환호는 박문수를 향한 것 같지만 결국 영조를 찬양하는 거니까.

주만 : 역사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해본 것은 처음이에요. 박문수가 향교를 후퇴시킨 서원의 문제점을 지적해 안동서원을 철폐시키고 그로 인해 탄핵받아 풍덕부사로 좌천된 것은 처음 알았어요. 어릴때 어사 박문수에 대한 책은 읽어보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났거든요.

교수 : 원래 박문수전은 누가 썼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첫 편만 박문수는 유씨노인을 달랜 다음 무주에 어사출도하여이 일을 처리해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수진 : 뇌물이라는 것이 그냥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양면성을 생각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교수 : 무언가 전달된 것이 있다면 다행이고 오늘 다들 수고했고 잘해줬어. 다음시간에 보자고.



박문수는 사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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