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뇌물

천년고찰의 대단한 위엄 공주 마곡사

교수 : 진수야 주말에는 뭐했어?

진수 : 수진이하고 마곡사를 갔다 왔어요.

교수 : 수진이하고? 둘이서만 갔다 온거야?

진수 : 예 둘이서 갔다 오긴 했는데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것은 아니에요.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공주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는 마곡사를 갔다 온 거에요.

교수 : 그럼 오늘은 마곡사 이야기를 해볼까. 마곡사는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큰 곳이라는 것은 갔다왔으니 알거야. 김구선생이 그곳에서 은거했다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진수 : 저도 김구선생이 그곳에서 은거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거기에 김구선생이 심었다는 기념 식수도 한 그루 있더라구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전국에 정말 많은 사찰들이 있는데 왜 조선의 백성들은 천주교를 받아들인거죠? 불교라는 종교가 있잖아요.


MG0A5051_resize.JPG 태화산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교수 : 조선이 숭유억불정책을 폈다는 것은 말 안해도 잘 알겠지만 실상 불교는 조선시대에 있어서 일반인들의 종교라고 볼 수는 없어. 조선왕들이나 양반들이나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해. 왜냐면 신앙의 세계에서 신에게 자신의 소원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요하거든.

진수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종교를 가지는데 있어서 무슨 돈이 필요하다구요.

교수 : 그건 순진한 생각이지. 신과 일반인들을 연결해주는데 있어서 매개체가 필요한데 기독교에서는 목사가 천주교에서는 신부, 불교에서는 스님이 그 역할을 맡고 있어.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수요가 많아지면 어떻게 되겠어?

진수 : 그럼 그들이 바뻐지던가 소원을 못 들어주는 사람도 생기겠죠.

교수 : 맞아 현실에서는 그걸 돈이라는 것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밖에 없어. 좀 더 많은 정성을 들인 사람이 원하는 것부터 먼저 들어줘야 겠지.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의 대다수는 가난했거든. 그들이 사찰에 무언가를 해주기는 힘들었을 거야. 베풀어주는 것을 받는 대상에 가까운 거지. 신라시대에 세워져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는 마곡사는 수많은 귀족이나 양반이 그곳에서 불공을 드렸겠지만 일반 백성들이 갈 수는 있어도 불공을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거야.


MG0A5057_resize.JPG 마곡사로 가는길

진수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렇게 큰 사찰이 초가 몇 칸에 사는 백성들에게는 위압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었겠네요.

교수 : 지금 한국에는 오래된 사찰들이 있는데 누구나 자유로이 들어가서 둘러보고 하는 것도 근래의 일이야. 개방된 것 같지만 함부러 가기도 힘들었지. 괜히 갔다가 왕족이나 양반이라도 만나봐. 잘못하면 경을 칠 수도 있었어. 백성들이 승려를 만나는 것은 가끔 출타할때나 만날 기회를 얻을수 있었던거야. 천년을 넘게 그 자리에 있던 마곡사도 고려 문종 이후에 100여 년간 폐사되어 지역도둑때의 소굴로도 이용이 된 적이 있었어.

진수 : 종교에 대해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중세 시대의 면죄부도 그런것의 일종으로 볼 수 있겠네요.

교수 : 그렇지. 면죄부가 초기에는 귀족이나 부자를 대상으로 판매했지만 나중에는 민중에게도 면죄부를 팔았거든. 이건 단순히 천당에 갈 권리를 산 것이 아니라 특권층에게 열려 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특권이 자신들에게도 열린 것에 열광했기 때문이야. 요즘 사람들은 부자라는 가치를 상당히 높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기에 명품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유니크해진 것이라고 위안을 얻는 거야.

진수 : 특별해지고 싶은것은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네요.

교수 :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진수야 심청이야기는 잘 알지? 심봉사가 눈을 뜨기 위해 무얼 했을까.

진수 : 심청이를 팔았잖아요. 공양미 300석에요.

교수 : 심봉사는 눈을 뜨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그것 때문에 승려에게 물어보니 공양을 하기 위해 300석이 필요하다고 한거야. 눈을 띄기 위한 정성을 들여야 되는 가치가 300석이야. 300석


MG0A5068_resize.JPG 마곡사의 극락교

진수 : 소설로 읽었을땐 그냥 300석이려니 했는데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겠네요.

교수 : 석섬도 아니고 삼십 석도 아니고 무려 300석이야. 조선시대에 쌀 한 석은 당상관 (정삼품이상의 한 달 월급을 웃도는 수준이야. 그냥 산술적인 계산으로 따져봐도 고위관료의 25년 월급이니 상당히 큰 돈이지.

진수 : 그러게요. 부처라면 백성들의 아픔을 보다듬어 주어야 할텐데 정성에는 돈이 들어갈 줄이야.

교수 : 불교가 아니더라도 제대로된 제사를 지내려면 돈이 필요한데. 일반백성들은 제사상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어. 사대부들이 불교에 속죄한다던가 일련의 행위들을 비판했다고 하더라도 1년 동안 행해지는 수많은 제사는 그들 역시 사후 세계를 조상들과 연결시켜 생각한거야. 생각을 해봐 1년에 행해지는 그 수많은 제사를 준비하려면 인력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해. 농사지어서 입에 풀칠하기 바쁜 백성들이 그런 제사를 준비하기도 힘들뿐더러 제사음식을 만들기 위해 귀중한 노동력을 소비할 수도 없었어.

진수 : 뼈대 있는 집안도 돈이 있어야 행세도 할 수 있었겠네요.

교수 : 마곡사에 들어서면 해탈문이 나오는데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입문한다는 해탈도 결국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MG0A5060_resize.JPG 마곡사 해탈문

진수 : 해탈도 있어 보이고 고행이라는 말도 무언가 그럴듯 해보였는데 풍요로움과 세속에 지쳐봐야 그런 것도 의미가 있겠네요.

교수 : 이제 철학적인 것은 조금 벗어나서. 마곡사에 가면 오층석탑이라고 있는데 고려 후기 양식의 석탑인데 임진왜란 때 탑안의 보물의 대부분은 도난당했어. 그래도 탑은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진수 : 저도 보고 왔어요. 마곡사는 사찰이라기 보다 마치 민속마을을 보는 느낌이 들정도로 건물이 참 많더라구요. 대광보전도 고풍스러웠구요.



MG0A5085_resize.JPG 마곡사 대광보전과 5층석탑

교수 : 대광보전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 마곡사 대광보전은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옛날에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이곳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하고 나서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대광보전은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진 것을 순조13년(1813)에 다시 지은거야.

진수 : 그래서 저도 소원을 빌고 왔어요.

교수 : 대광보전뿐만이 아니라 응진전, 명부전등 볼 것들이 많지. 특히 김구선생이 1896년 명성왕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우 마곡사에서 은거했던 것을 회상하며 심은 향나무도 의미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소원을 빌어서 걷게 된 것은 아니야. 걷게 해달라고 했지만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올리다 보니 90여일이 되던 날 자신이 얼마나 염치없는 욕심을 가지고 비는지 알았던거지. 그렇게 욕심을 버리고 빌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걷게 되었다는 일화였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없는 것을 더 갈망하는 경향이 있어.

진수 : 제 욕심에 소원을 빌었던 것이 조금 챙피해지네요.

교수 : 머 사람의 기본성향이 그런걸 어찌하겠어.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잘 가다듬어야지.

진수 : 교수님 말씀처럼 저도 제가 잘 살아온 것인지 살펴봐야 되겠네요.

교수 : 벌써 저녁이네. 저녁 약속없으면 학교 식당이나 가서 식사나 하자.

진수 : 그러고보니 저도 배가 고프네요. 먼저 나가 있을게요.


MG0A5097_resize.JPG 김구선생이 심은 기념식수

오늘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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