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의 인물 조병옥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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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진수야, 수진아 도착했다.
진수 : 여기가 지난번에 가기로 했던 조병옥 박사 생가에요?
수진 : 그냥 초가집이네요. 얼핏 듣기로는 돈이 많았던 집안이라고 들었는데요.
교수 : 원래는 초가였는데 기와집으로 변형된 것을 다시 초가로 복원한거야. 그런데 너희들도 등록금 내는 것이 참 부담되지?
진수 : 예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상당수 대학생의 사회생활이 빛으로 출발한다고 하잖아요.
수진 : 저도 부모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교수 : 요즘에 대학 등록금이 참 많이 비싸. 대부분 1년에 평균 천만원 가까이 될거야.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참 부담되는 금액이야.
진수 : 맞아요. 저도 이번학기에는 다행히도 반액을 지원받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어떨게 될지 모르겠어요.
수진 : 너 자랑하는거야? 난 장학금도 못받았는데
진수 : 아니야 수진아 그냥 그렇다고.
교수 :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할텐데.
진수 : 그런데 갑자기 대학 등록금 이야기는 왜요?
교수 : 이 집에서 1894년에 태어난 조병옥 박사가 아버지인 조인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미국 유학을 갔다올 수 있었거든.
진수 : 조인원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교수 : 여기 앉아서 이야기 하자. 둘 다 편한데에 앉아봐. 날씨좋네.
수진 : 지금도 미국 유학가려면 기둥을 몇 개 뽑아야 한다는데 그 시대라면 엄청나겠어요. 대체 얼마를 지원해준거에요?
교수 : 조병옥은 1914년 배제학당을 마치고 미국 와이오밍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때 조인원이 논밭 120두락을 팔아 3,000원을 학비 및 생활비로 보태주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약 10여년의 유학생활을 하게 돼.
진수 : 아니 3,000원이 얼마나 큰 돈이길래 10여년 동안 유학생활이 가능한 거에요?
교수 :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당시 100원 정도면 서울에 괜찮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어. 즉 30여채를 살 수 있는 돈을 아들의 유학비용을 위해 대준거야.
수진 : 와~ 돈은 걱정하지 말고 충분히 공부하고 오라는 배려였네요. 조금은 부러워요. 돈 걱정없이 유학할 수 있다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교수 : 원래는 일본 유학을 가려고 했었는데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때문이기도 했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강함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라나. 그것 때문에 바꾼 것이라고는
자서전등에서 밝히고는 있어. 당시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묵인 속에 격랑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고 있었거든.
진수 : 저도 가끔 그것이 의아했어요. 왜 다들 외면했는지 말이에요.
교수 : 대한제국의 주권과 영토와 국민에 대한 지배를 인정하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고 나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면 그것이 당연하다는듯이 말하고 있었어.
미국 "일본의 한국에서의 행정은 매우 선의에 차있고 한국민의 행복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 역력"
독일 "앞으로 일본의 지배에 의한 조선의 경제적 발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 "조선과 일본의 병합은 이해관계가 있는 열국의 동의를 얻어 단행되었고 러시아도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영국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수진 : 말도 안되지만 힘이 없는 나라의 비극이네요.
교수 : 국제세력의 동조와 승인, 대한제국정부의 무능, 국민의 정부를 세우지 못했던 국민 개개인의 역량한계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겠지.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일본이 영국에서 선진문물과 정보를 많이 배우고 왔다면 조병옥 같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었어. 조병옥은 10여년의 유학생활을 거친 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답게 경제학의 이론에 기반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는데 그 핵심 내용을 보면
첫 째. 인류사회는 절대적 평등사회는 이룰 수는 없으나 상대적 평등사회로는 지향할 수 있다.
둘 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사유재산을 근거로 그 소유자가 공익을 위해 신탁할 수 있는 것이며, 경제적 경쟁으로서 토지, 자본, 금융의 독점을 막아야 비로소 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 발전시킬 수 있다.
셋 째. 인류의 질적 향상의 운명은 개조에 있는 것이므로 공산주의와 같은 일개 이데올로기의 유물 변증법만 가지고는 현하 인간지옥 같은 사회로부터 돌변하여 지상낙원을 건설 할 수 없다.
진수 : 그때 미국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았을까요.
교수 : 거금을 들고 미국으로 가긴 했지만 조병옥의 나라 조선은 가난한 나라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었어. 그가 태평양을 건너 만난 미국은 거대한 힘 그 자체로 압도되었고 이후 확실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된거지. 그의 회고록을 보면 "뉴욕의 교통이 세계 제일"이라던가 "세계 최대의 건물"이라는 서술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던 것 같아.
수진 : 저라도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신세계잖아요. 그 의리의리하고 거대한 마천루라던가 조선의 교육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경제에 대한 배운 걸로 조선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을 것 같아요.
교수 : 오랜 유학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조병옥은 신간회의 창립위원과 광주학생운동을 옹호하는 민중대회를 여는 등 독립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만해 한용운과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고 안창호 선생을 존경해서 그를 대통령감이라고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병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을 지지하게 된거야.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했던 조병옥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접하면서 반공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게 돼.
진수 : 결국 공산주의는 실패했잖아요.
교수 : 조병옥도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인 역사유물론을 공부하면서 그것의 한계점을 알았을거야.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가진 극단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했는데 인간소외나 생산과 소비의 과잉, 물신숭배, 극심한 빈부의 격차등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었거든. 이론으로만 보았을 때는 그럴듯해 보일수 있지만 인간의 욕망이나 본성을 외면했기에 한계가 있었어. 그런데 마르크스는 가족들에게 인정은 받지 못했던 것 같아. 일례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내놓았을때 그의 모친은 "자기 자본이나 만들지..."라는 말을 했다고 해.
수진 : 하하 자기자본이나 만들지. 꿈만 꾸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교수 : 공산주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은 후에 제주도 4.3사건이 도화선 이된 1947년 3월 1일 사건을 대응하는 자세에서 드러나게 되. 사건이 일어난지 약 2주일만에 제주에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 내려온 조병옥은 좌파 진영이 주도했던 3.1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과도하게 진압하면서 결국 약 1년 뒤인 4.3사건이 발생했거든. 특히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조병옥과 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과의 난투극은 유명하지.
진수 : 둘이서 치고 받은 거에요?
교수 : 맞아 둘이서 치고 받은거야. 5월 5일 어린이날 4.3사건 진압회의를 하는데 경부부장 조병옥을 비롯하여 제주도 경찰청장 최천은 철저하게 계획된 폭동이니까 철저하게 토벌하자는 입장있었는데 김익렬 연대장은 무력만 사용하지 말고 설득도 하자고 했거든.
김익렬 연대장 : 경찰의 초동대응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한 번 보세요. 경찰 기강이 이따위니 이런 사태까지 온 거 아닙니까.
월리엄 F.딘 장관 : (사진을 자세히 보면서) 이것 보세요. 조병옥 경무부장 어떻게 된겁니까?
조병옥 : 저 공산주의자가 던져준 사진이나 증거물은 모두 조작된 겁니다.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연대장이 되어서 이 자리에 있는건가요? 공산주의자들의 조직력이란 정말 무섭네요. 제주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폭동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 아닌가.
김익렬 연대장 : 닥쳐! 내가 무슨 공산주의자야.
미군정장관 딘장군 : 김익렬 연대장 조용히 해!
조병옥 : 민족주의자의 가면을 쓴 청년들이 외국에만 있는지 알았더니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 저 연대장이 그런 청년이요.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김익렬의 아버지는 국제공산주의자이며 지금도 이북에서 공산당 간부로 일하고 있다고 하오. 자신의 부친의 교화를 받아 공산주의가 된 것이고 지금은 부친의 지령에 의해 행동하고 있는 것이요.
조병옥의 연설에 격분한 김익렬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병옥이 연설하고 있던 단상으로 뛰어가 조병옥의 배를 치고 멱살을 잡아 매다 꽂으려고 하다 실패한다. 유도3단이었던 그는 손쉽게 조병옥을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노인네가 생각보다 힘이 쎈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실랑이를 하였고 이에 최천 제주경찰청장이 말리려고 왔으나 한 방에 급소를 맞고 나가 떨어진다. 민정장관 안재홍과 맨스필드 대령이 김익렬을 떼어놓으려고 했으나 힘이 장사인 그를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익렬 연대장 : 조병옥 그 말 취소하지 않으면 죽여버릴거야.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애국자인줄 알았더니 자신이 잘못한 것이 드러나자 무고한 나를 공산주의자로 모는거냐?
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장군은 위신이라고 세우려고 그랬는지 그냥 자리에 앉아서 몇마디한다.
송호성 장군 : 김익렬! 누구한테 손지검 하는거야. 죽으려고 환장하는 것이 아니면 손을 놓고 말로 해!
한국말로 하고 있는 송호성 장군과 안재홍 민정장관의 말이 궁금했던 딘 장군은 통역관 김씨를 불러 대화내용을 물어보았다. 이에 김씨는 다른 말로 통역해준다.
김씨 : 너는 공산주의자이며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요.
이 말에 화가 난 김익렬은 조병옥의 넥타이를 그대로 잡은채 끌며 통역관에게 달려가 발로 거시기를 차버린다. 통역관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딘 장군이 대기중이던 미군 헌병을 불러 김익렬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진압 회의는 별 다른 소득 없이 끝이 나버렸다.
진수 : 아주 난리가 났었네요. 그래서 완벽하게 토벌하는 방향으로 갔나 보군요.
수진 : 저도 제주도 토벌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봐서 그런지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생각은 했거든요.
교수 : 해방이 되고나서 당시 한반도는 이념전쟁이 극대화되던 때였어. 거기에 이성이 들어갈 틈 같은 것 없었을거야. 조병옥도 해방이후에 빨리 국가를 안정시키고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4.3사건으로 학살된 제주도민은 3만여명 으로 추산은 하고 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민간인들이었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감자로 연명하던 때였으니까.
진수 :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냥 공권력으로만 제압하려고 했던 결과가 비극이었네요.
교수 : 맞아. 사람들은 누른다고 해서 그대로 눌러지지 않고 풍선효과(Ballon Effect)처럼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하거든. 제주도에서 그런일이 벌어지는데에는 각종 질병, 생필품 부족, 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는 배고픈 제주도민들을 만들어냈고 여기에 군정관리의 부정부패는 불만을 야기한 것이 발단이 된 거야. 여기에 공산주의의 이상향인 절대적 평등을 속삭여 주니 솔깃하지 않았겠어?
수진 : 여자들은 강간하고 죽였다면서요. 공산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배운 것 없고 배고프고 희망이 없었다는 걸 조금만 생각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요.
교수 : 조병옥이 생각했던 큰 흐름은 맞았다고 하더라도 디테일한 측면에서 민중에게 다가섰다면 제주도의 4.3사건 같은 역사적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수진 : 그 다음에 정치인이 된 거에요?
교수 :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후에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승만 정부와 의견 충돌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야당화가 되기 시작해.
진수 : 그 유명한 자유당과 민주당이 나오겠네요.
교수 : 1955년 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하고 자유당의 선거방해라던가 금권정치에 항의하는 집회를 여는 등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발걸음을 하지.
진수 : 아 그래서 이 비석에서처럼 조병옥 박사가 그런 말을 남긴건가요?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 혹시 그때의 과오를 생각하며 남긴 건가 궁금하네요.
교수 : 조병옥은 무조건적인 반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야. 협상과 타협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는 태도끝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조선시대 류성룡이나 영국의 처칠같은 정치인과 비슷한 면도 찾아볼 수 있어.
수진 : 그런데 언제 돌아가신거에요?
교수 : 1960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했는데 당시 선거일이 3월 15일이었거든 선거가 있기 한 달전에 갑작스런 지병으로 인해 급서한거야. 그리고 그 선거는 부정선거로 4.19혁명을 일으키게된 도화선이 된거지.
진수 : 그의 인생에서 잘한 것도 있고 과오도 있겠지만 뚝심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네요.
교수 :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을거야. 모든 이론과 시스템은 완벽한 것은 없어. 장점이 많은 시스템이라면 단점은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면 되지. 단점이 부각되었다고 해서 시스템을 부인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거야.
수진 : 그런데요. 교수님 배고파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여기에는 뭐가 유명해요?
교수 : 벌써 점심시간이네. 천안에 오면 당연히 병천순대를 먹으러 가야지. 병천은 순 우리말로 아우내라고 하는데 장터가 있던 곳이라서 그곳에서 장날 국밥을 팔 던 것이 지금 병천순대의 시작이야. 원래는 장터가 열리는 날에만 국밥을 팔다가 1968년쯤 국밥집을 열면서 순대거리가 생겼거든.
근데 수진이는 순대국밥 잘 먹어?
수진 : 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수 : 그럼 지금 가시죠. 얼마나 걸려요?
교수 : 차로 한 5분쯤이면 금방 가. 수진아, 진수야 차에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