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몇 번이고 지하철을 탔다가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뒤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쫓아오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예원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긴 그렇지만 지금 처지가 누굴 배려할 처지가 아니라서 나중에 잘 해결이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간에 보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신고서점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보는데 중고책을 판매하는 곳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왜 신고서점이지? 외대 앞 역에서 내린 소윤은 신고서점 쪽으로 걸어갔다. 중고책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해서 상당히 허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깔끔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예 안녕하세요." 소윤은 안에 들어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점의 규모가 작은 편이 아니라서 사람을 찾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소윤이를 껴안았다. 깜짝 놀란 소윤은 오른손으로 껴안은 손의 중지를 움켜잡고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왼발로 뒤쪽의 발을 밟았다.
"아으윽.."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 소윤의 앞에는 현이 있었다. 매우 고통스러웠는지 인상은 찡그리고 있었지만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 오빠. 몰랐어." 소윤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현을 껴안았다.
"네가 운동을 배운 것을 깜빡했어. 너무 반가워서 먼저 껴앉았어."
"아니야. 괜찮지? 마음고생 많이 했지. 주변에 사람도 없고." 소윤은 양손으로 현의 얼굴을 감싸면서 가볍게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게 어떻게 안 잡히고 여기까지 왔네."
"그런데 왜 여기야? 여기에 뭐가 있어?"
"그때 소윤이가 보내준 메시지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항상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더라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생각의 나무를 키우지 못한다'라고."
"그래서? 책이 열쇠라는 거야?"
"응 그런데 어떤 책인지 감을 못 잡았어. 한 참을 생각해봤는데 혹시 아버지가 나한테 책에 관심을 가게 해주었던 책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니까. 그때 감이 오더라고."
"무슨 책인데? 응? 궁금해."
"그런데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거기서 해답을 얻는다고 해도 아지 한 고개가 남아 있는 거 같고."
"여기 오래된 책이 무지 많다고 하던데. 일제시대에 발간된 책도 있다는 소리도 있어."
"너 정채봉이라고 알아?
"누구 오빠 친구야?"
"아니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데 동화작가야."
"아.. 그렇구나. 그 사람 책인가 보네?"
"응 내 예상대로라면 재 발간된 것이 아니라 1판이 분명해. 그리고 소윤이가 보내준 숫자 있지? 그거랑 페이지랑 연결되어 있을 거야."
"언제쯤 발간된 것일까? 흠..."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이 1995년쯤이었으니까. 그 전에 발간된 걸 거야."
"그래? 책 제목은 뭔데?"
"책 제목은 '이 순간 생각하는 동화 5'이야."
"무언가 의미심장한데. 이 순간이라."
"소윤이가 90년대 책들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와줘. 난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알았어." 소윤은 앞쪽 계산대 쪽으로 가서 일하는 점원과 여러 번 대화가 오고 가더니 다시 현이 있는 데로 걸어왔다.
"지하로 내려가 보래." 현과 소윤은 손을 잡고 지하로 걸어내려 갔다. 평일이라서 사람들은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미 현의 얼굴은 팬카페가 만들어진 곳에 공개되어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상태였다. 엄청난 양의 책을 보며 현은 오른쪽 끝에서 소윤은 왼쪽 끝에서 세세하게 찾기 시작했다. 30여분쯤 찾았을까.
"와우! 오빠 찾았어." 소윤은 매우 기뻐하며 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른 중고책을 찾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무슨 일인가 하고 이쪽을 쳐다봤다. 소윤은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현쪽으로 걸어갔다. 현은 책을 건네받고 표지를 보았다. 맞다. 어릴 때 보았던 그 표지가 맞았다. 조그마한 나무 한그루가 표지의 중앙에 있고 정채봉이라는 작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소윤이가 푼 거랑 내가 생각한 거랑 같은 거 같아. 열쇠는 65, 101, 166에 있어." 현은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겼다.
65page 에는 섬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고 내용은 '섬에서 백 리 -> 바닷가의 깎아지른 절벽에서 그 작은 나무는 살고 있었다.'
101page에는 두 사람이 물고기와 무언가를 먹고 버린 뼈 같은 그림이 있고 내용은 '이내 인간이 왔다. 그 인간은 빈둥거리며 놀면서 벼를 거두어 먹었고, 물고기와 토끼를 잡아먹었다.'
166page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 있고 몸에는 큰 눈이 그려져 있었고 내용은 '아인슈타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고요히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목표가 빗나가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현은 얼굴 표정이 진지해졌다. 5분쯤 지났을 때 소윤은 현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알 거 같아?"
"알 거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네. 뭐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암호야 풀면 되지만 문장 속에 숨은 메시지는 더 힘들거든. 그런데 섬, 무언가를 먹었다. 이 눈이 의미하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 혹시 아버지랑 같이 갔던 여행지중 하나가 아닐까?"
"한 두군데야지. 섬이라 해도 거제도, 홍도, 제주도, 강화도... 그리고 거기는 모두 넓잖아.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지."
"솔직히 그 채권 못 찾으면 1%의 가능성도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해. 그런데 무얼까. 작은 나무라... 물고기? 두 사람... 알 거 같다. 나가자."
현은 소윤의 손을 잡고 1층으로 올라갔다.
"소윤아 이거 좀 계산해줘."
"응 알았어." 책을 계산한 두 사람은 몰래 고개를 숙이며 서점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