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5-4

2015. 12.05

심문하던 형사는 일어나더니 CCTV 카메라에 종이를 붙였다. 이어 콜라캔을 헝겊에 싸더니 인정사정없이 현을 때리기 시작했다. 현은 몸을 최대한 웅크려서 맞는 면적을 줄였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속에서 서서히 정신이 가물가물 짐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은 깨어보니 취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네가 죽인 거 맞잖아. 여기에 자세히 써, 그리고 그 돈 어디 있어."

"정말로 몰라요. 제가 알면 여기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돈이 있다가 그 쌩쑈를 해. 이 새끼가 덜 맞았네. 캔을 이렇게 헝겊에 싸서 때리면 자국도 잘 안남아. 네가 뭐라고 말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다니까." 다시 헝겊을 들어 때리려는 찰나 취조실 문이 열렸다. 만 하루 동안 잠도 안 재우고 맞던 최현은 현실과 가상의 기준이 모호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전 최현 씨 변호사입니다." 남자는 명함을 꺼내서 형사에게 건네주었다.

"변호사요?" 명함에는 최경호라고 쓰여 있고 밑에는 형사사건 전문이라는 소개도 곁들여져 있었다.

"예 지금부터 제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식의 취조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기 가린 거 때시죠."

"아 예.. 별일은 없었습니다." 최현은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뭐가 웃겨. 씨발."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아 바로 오려고 했는데 좀처럼 협조를 안 해줘서요. 어디 다친 데는 없나요?"

"아직은 버틸만해요." 최현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앉았다.


"누가 왔다고?"

"변호사가 왔습니다."

"변호사? 누군데."

"최경호라고 하는데요."

"골치 아프네. 며칠만 더 털어주면 끝나는 일인데. 아니 제발로 걸어 들어온 놈 하나 처리 못해?"

"그게 말이에요. 더 골치 아픈 게 있습니다."

"뭔데 그 최경호라는 사람은 1997년에 김윤수 상사로 있던 사람이더라고요. 사시 합격하고 특채로 경찰로 들어와서 경정으로 근무하다가 잠시 경찰대학교로 옮겼다가 그만둔 후에 변호사로 개업한 후에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나름 자리를 잡았습니다."

"왜 몰랐지?"

"사건이 있기 1주일 전인가? 팀에서 자진해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감 좀 몰아주고 물러서라고 하면 안 될까?"

"그게 형사사건 변호할 때도 협상이 잘 안 하던 사람으로 유명하더라고요."

"제 발로 걸어들어온데에는 이유가 있었단 말이지? 교활한 놈 같으니. 그건 그렇고 그 여자친구 행방은 아직도 몰라?"

"예 최현이 자수할 때쯤 잠적한 다음 집이나 회사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 년도 연관이 있어. 빨리 수배 내려."

"수배요? 무슨 죄로요."

"누가 진짜 수배 내리래. 빨리 신병을 확보하라는 거지."

"신병확보의 근거가 없잖아요."

"알아서 해. 임의동행을 요청하던지 해서 뭐라도 만들어봐."


2일 전 최현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청계천을 걸어갔다. 누군가 최현을 알아보고 외치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최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최현의 행적이 SNS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중계를 했고 어느새 언론도 달려와서 최현을 카메라에 담았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최현은 청계 4가 교차로로 올라가서 종로 4가 교차로로 향했다. 어느새 최현의 뒤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이어 쫓아갔고 마치 행진하는 시위대처럼 보였다. 종로 4가 교차로를 건넌 최현은 서울 혜화 경찰서로 들어갔다. 정문 앞에 서있던 전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봤고 최현은 형사계로 바로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예 무슨 일로 오셨죠?"

"제가 최현인데요."

"예~ 최현 씨 무슨 일이죠?"

"제가 최현이라니까요." 최현은 손가락으로 한쪽에 붙은 수배자 사진을 가리켰다. 그제야 알아챈 형사는 최현을 잡았다. 최현이 들어간 혜화경찰서는 단숨에 SNS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불과 30여분 만에 서울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소처럼 뜨기 시작했다. 1조 사나이 최현은 그렇게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나온 기사는 몇 페이지 뒤로 밀려갔다. 담당 형사는 광수대로 연락을 했고 광수대는 즉시 혜화경찰서로 팀을 파견했다.


"이곳 혜화경찰서에는 지난달 자신을 키워준 이모와 이모부를 살해하고 인질극까지 벌였던 최현이 자수를 해온 곳입니다.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어 자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변호사까지 선임하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수사는 진행하고 있지만 자신의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인질극 부분만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NBC의 김수진이었습니다."


검찰은 즉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살인죄 및 공무 집 행방 해등 여죄를 포함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조서를 작성하기는 했으나 살해 범행도구인 칼 외에 뚜렷한 범행 동기나 행적을 증명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전날 만났다는 민경 감은 별다른 증언을 하지 않았다. 시신이 굳어진 상태나 위속에 음식물의 소화 상태를 볼 때 이들을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은 30여분 정도로 추정하고 있었다. 당일 아파트의 CCTV를 조사했으나 마침 당일 1시간 정도의 녹화 분량이 사라진 상태였고 최현이 들어가는 장면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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