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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7. 2021

서구의 품격

삶이 이어지는 공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우리는 살아가는 동력을 얻게 된다. 비록 걱정과 질병을 얻게 될지라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내일은 즐거운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는 곳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가 사는 지역이 과거보다 나아졌고 지금도 나아지고 있고 미래에는 더 괜찮아질 것 같을 때 더욱더 살고 싶어 지면서 살기 좋게 바뀌기를 바란다.  조만간 서구에서 가장 따뜻한 월평 도서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열리는 공공도서관이다. 약간의 기대가 된다.  


살다 보니 대전에 이사 온 지도 30년이 되었다. 그중에 반은 대덕구에서 살았고 반은 서구에서 살았다. 개인적으로 물어본다면 서구가 필자에게 딱 맞는 느낌의 옷이다.  적당한 복잡 거림과 변화 그리고 색다른 에너지도 계속 흘러나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항상 돌아가게 되는 곳은 바로 대전 서구라는 곳이다.  서구의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색다른 매력이 있다. 물론 계절을 두부 자르듯이 그렇게 구분할 수는 없다. 2019년도 봄, 여름이 모두 지나가고 가을, 겨울만이 남아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상의 모든 것이 배움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과 사람들 사이로 때론 안보이던 것이 보일 때가 있다.  


바르트리하리는 '존재가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것을 스포타라고 불렀다.  스포타는 사용자의 말투에 의존하지 않지만, 문장 안에서 단어들과 조합하는 거쳐 확실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이때 의미는 구성 요소로 분해할 수는 없다.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만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단어들로 쪼개는 실수를 한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의 의미는 하나하나 쪼개져서 그 가치를 결정할 수가 없다.  동 단위의 소생활권에서 확대해 보면 서구라는 대생활권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어떤 것을 경험해볼 수 있을까.  


봄이 되면 생각나는 것은 한밭수목원에서 피어나는 꽃과 새싹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 새싹이 솟아나게 만들 대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의 전시도 시작이 된다.  꽃도 보고 미술작품도 만나다 보면 한해 한 해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사라지는 것은 있지만 그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을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듯이 서구는 그런 중력을 가진 공간이랄까.  


만물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여름이 되면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며 갑천누리길을 걷는다. 갑천누리길은 구절초길이며 반딧불이 함께하는 곳으로 노루벌 일원이 서구를 대표하는 생태자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갑천누리길을 조용히 걷다 보면 땀도 나지만 그 속에서 나라는 주체와 타인이라는 객체를 저절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내가 존재하기에 남이 있지만 남이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아직 올해 서구 가을은 온전하게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십수 년 동안은 서구의 가을을 꾸준하게 지켜보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운 여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다.  살고 있는 주변에서도 은행나무 축제가 열리고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가서 가을 전어, 대하, 꽃게를 먹을 수 있는 환상적인 계절이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든 단풍, 대전시 서구 갈마동 가로수길은 이미 가을 단풍의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서구를 대표하는 힐링아트페스티벌이나 힐링 북 페스티벌 말고도 지역별로 가장동 들말 한마음 축제, 도마2동 도마 달, 그림마을 축제, 관저1동 봉우 이야기, 월평2동 선사마을 축제,  둔산3동 아트야 놀자,  괴정동 괴정골 축제, 갈마1동, 갈마울 마을축제,  월평1동 반달마을축제 등 이제 다 찾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마을만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가고 있다.  


살아보니 서구에도 생각 외로 먹을만한 음식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이 되면 그 차가운 온도만큼이나 옷이 두꺼워지기는 하지만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살다 보면 좋은 길만 가고 싶어 하지만 좋고 나쁨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여정을 이어주는 길은 참으로 다양하다.  삶의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다. 매일 지나가는 서구의 골목도 있고 아직도 발길을 해보지 못한 서구의 골목도 있다. 몇 년 전의 트렌트가 골목여행이라고 했던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서구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발길을 이끄는 곳이 많고 만나볼 사람도 많은 서구에서 살면서 품격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은 듯하다. 


삶의 언어가 행복을 부정하기보다는 서서히 적절하게 느린 속도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내내 살고 있는 곳의 믿음, 지리, 사람, 관습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부분적으로 한때 자신이 본모습이라고 믿었었지만 이제는 없어져버린 것이 우리의 본모습일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여전히 예전에 서구가 가졌던 모습을 찾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오래전에 서구라고 불리기 전에 그 서구를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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