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Nov 07. 2021

서구의 게으른 여행자이며 산책자

시간이 흘러 마흔이 되려 하다는 것, 그것도 내가 긴 삶을 서구에서 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 동안 서구에서 살면서 행복한 때도 있었고 행복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 살던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지켜지고 되새김질해볼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대전 그것도 서구에서 오랫동안 삶을 영위했다. 멀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꽤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세월이란 억지로 버티려고 할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반드시 흘러간다.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생명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해왔다. 좋은 사람도 있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서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바뀌지는 않을 듯하다. 항상 서구는 대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가장 북적거리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에너지가 전달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 삶의 반경을 말하라면 아마도 서구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래 살았기에 편안하기도 하지만 편안하다고 생각하기에 오래 살았을 것이다.


서구에는 갑천도 있고 노루벌이라는 곳도 있다.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곳도 적지 않다. 트레킹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도 갑천변을 걸어서 서구 끝자락에 있는 노루벌까지 걸어본 적도 있다. 노루벌을 지나면 가끔씩 가서 휴식을 취해보는 장태산의 메타쉐콰이어길은 서구에서 느껴볼 수 있는 힐링공간이기도 하다. 노루벌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반딧불이 3종 모두가 출현하는 도심 인근 청정지역으로 생태자원과 지역자원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환경부의 생태보전 협력금 반환사업으로도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대전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주 못 보는 친구와 만날 때면 갑천길을 걷기도 한다. 갑천은 길이 62.75㎞. 금강의 제1지류로 으뜸이기에 갑이라는 한자가 붙어 있는 하천으로 구석구석에 생태가 잘 살아 있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도 마을축제라는 것이 열리기 시작했다. 미묘한 변화가 마을 단위로 일어나고 있는데 대전의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구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구에는 적당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성실하고 빈틈없이 일한다. 마을 축제에서는 혼자서 묵묵히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그들이 만든 물건에는 생활의 깊은 맛이 배어 있다. 그런 부분이 서구에 사는 사람들의 저력이 아닐까.


하물며 시장은 어떠한가. 도마 큰 시장과 한민시장은 대전 서구를 대표하는 시장이면서 나아가서는 대전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 장보기를 하는 것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요즘은 옛날과 많이 달라져서 상인들의 표정도 많아 바뀌고 있음을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서구의 한 집에 살면서 주택이라는 것이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미래에는 주택이 거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다고 한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환경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지켜주며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의 일원처럼 변한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서구가 더 애착이 가게 되지 않을까.


요즘도 비가 내리지 않을 때를 포착하여 자주 보라매 공원을 한 시간쯤 걷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보라매공원 일원에서는 서구 힐링 아트페스티벌이라는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서구에도 이런 축제를 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계속하고 있다. 올해에 찾아간 서구 힐링 아트페스티벌에서는 작가가 손수 만든 소박한 소품을 하나 구입했다. 자신의 재능을 통해 만든 것을 누군가과 공유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때론 서로 같음을 보기도 하고 서로 다름을 보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대전에 살고 있지 않은 친구가 대전에 오면 한밭수목원을 구경시켜준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수목원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이 산이었고 자연이었고 그 자체가 힐링이었지만 엑스포가 열리고 나서 대전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자연이 사라졌지만 대전의 대표적인 인공수목원으로 생태 숲과 수목원 개념을 접목하여 생태계 복원에 중점을 둔 한밭수목원이 다시 들어서면서 무언가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나는 말하자면 나만의 인생 중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서구에서 10대, 20대, 30대를 거치면서 나만의 사고방식에서 무언가를 삭제하기도 하고 삽입하고 이동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서구에서 살기에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중심에서 살짝만 비켜나면 늘 뜻밖의 풍경들과 에피소드들이 생길 것 같은 지역이 서구였던 것 같다.  


사람이 살만한 곳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산처럼 생각하라는 말은 자연속에 자연스럽게 안착한 도시의 삶과 그것에 만족하는 서구의 삶은 서구만의 매력이라는 느낌이 아련하게 온다.


서구의 게으른 여행자이며 산책자, 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죽을 때까지 선명하게 살리면서 간직하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는 결국 내가 걸어서 만난 서구의 평범하지만 색다른 골목이었다. 서구는 그렇게 늘 탐험하는 만큼 존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성 생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