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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

천년의 시간이 지나간 문

예술가들은 세상에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과거 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배우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모더니즘 미술이 창조의 위대성을 실현하고자 했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복제하고 차용하면서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서는 매년 가을에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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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로부터 자연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왔다. 우리의 건축문화 모두 자연 속의 동물이나 곤충, 식물들이 만드는 것에서 배운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는 직업인이 되었고 예술품은 판매를 기다리는 소모품으로 자리하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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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의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열린 공간에 작품을 전시해두고 있어서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마치 소풍 오듯이 와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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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 모더니즘 예술가가 고독한 천재로서 알려졌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가는 창조주가 아니라 직업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글 역시 그렇다. 작가 역시 책으로만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은 짧은 글로도 사람들과 만나며 직업인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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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투란 자연 속에서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인데 이곳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차용, 복제 등과 연결되며 관람객의 반응, 해석에 모든 것을 맡기며 존재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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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가파른 길이다. 모든 예술작품의 마지막 완성은 관람객의 몫이다. 예술작품이 되었던 글이 되었든 간에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텍스트가 되어 관람객의 반응과 해석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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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보았던 작품들도 눈에 뜨이고 올해 새롭게 만들어진 작품도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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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들과 이곳에 와서 예술작품을 보면서 미래에 새로운 길을 자신도 모르게 모색해볼 수 있다. 어릴 때 예술이라는 것은 전혀 본 적도 없고 미술관은 가본 기억이 없지만 지금은 접근성이 더 좋아져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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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다가 무언가를 쓰고 싶은 날이었다. grafft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에서 시작되었다. 사각형의 스마트폰으로 외부세계와 접속하는 현대인은 사각형의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닐까. 잠시 스마트폰을 두고 자신의 눈으로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자연으로 떠나보자.


by. 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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