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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0. 2019

공권력

공주의 국민보도연맹 사건 

국가가 가진 힘을 공권력이라고 한다. 공공의 힘이기에 특정세력이나 특정한 사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  최근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회적인 문제의 핵심에도 바로 공권력이 있다.  힘이란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외부에 의해 제어되지 않은 힘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광복이 되고 나서 한국전쟁이 일어난 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를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 권력의 침묵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밝혀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공주에서 대전을 이어주는 주도로가 아닌 갑사로 가는 길목의 도로를 가다 보면 공주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묻힌 곳이 있다. 1950년 7월 9일 공주지역 국민보도연맹원 200여 명과 공주형무소에서 수감 중이던 재소자 300여 명을 재판이나 절차 없이 4개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M1 소총과 칼빈으로 사살하여 암매장하였다. 

지금은 유해를 발굴하였지만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의 숫자는 397 구였다.  

국민보도연맹은 정부 수립 이후 결성되었지만 조직 성격과 명칭, 운영방침 등은 보도연맹 창설을 주도한 검찰과 경찰 간부들이 일제강점기 때 본인들이 운영·관리하였던 사상보국연맹·대화숙·교외교호보도연맹의 조직 성격과 명칭·운영방침 등을 원용해 조직을 결성하고 주도했다. 친일부역자들이 해방이 되자 친일청산을 하기 전에 재빨리 진영논리와 이념을 내세우며 자신의 입지를 다시 굳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보도연맹원에게는 ‘공민권’이었던 도민증이 지급되지 않았고, 대신 ‘보도연맹원증’이 지급되었는데 이는 정부가 보도연맹 가입자의 신분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의 신분은 보장되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경찰의 검속은 6월 25일 전쟁 당일부터 한강 이남 전국에서 실시되었는데 법적 절차 없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즉결처형’ 형식을 띤 정치적 집단학살이었다.

매년 이곳에서는 그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민간인들을 소집·연행·살해한 기관은 경찰(정보수사과, 사찰계)과 육군본부 정보국 CIC(지구, 파견대), 검찰과 헌병·공군 정보처(G-2)·해군 정보참모실(G-2)·우익청년단체 등 국가기관이 관여했다고 밝혀졌다. 

공주의 밤은 대부분 익어서 수확했지만 곳곳에 밤이 떨어져 있어서 주워 보았다. 공권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에서 볼 수 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수만 명에서 20만 명 내외의 보도연맹원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 이후 1990년대까지 역대 정부는 보도연맹원으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과 친척들을 요시찰 대상으로 분류해 감시했으며 연좌제를 적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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