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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8. 2019

물 흐르고 가을은 피네

하동 지리산 자락의 국사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물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지역 중에 하동이 있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안갯속을 걷는 것 같다. 정치는 불신의 대상이 되고 경제는 소수만을 위해 몰리는 느낌이다. 이런 때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떠난 고고한 수행은 없다고 한다. 그냥 바쁘게만 살다 보면 시간만 지나가지만 모든 일상을 한결같이 사는 일같이 수행하다 보면 시간조차도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 흐르고 꽃이 핀다는 이곳으로 가는 길은 하동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국사암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유람하다가 시를 하나 짓는다. 


獨鶴穿雲歸上界(독학천운귀상계)

한 마리 학은 구름으로 솟구쳐 하늘로 올아 갔고. 

一溪流玉走人間(일계루옥주인간)

구슬처럼 흐르는 한 가닥 시내는 인간 세상으로 흐르네. 

從知無累翻爲累(종지무루번위루)

누 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心地山河語不看(심지산하어불간)

산하를 마음으로 느끼고는 보지 않았다고 말하네,

이 좋은 곳을 알리지 않았는데 청학동의 맑은 물이 인간 세상으로 흘러간 탓에 기밀이 누설되어 사람들이 그 물줄기를 따라 청학동에 찾아오게 되었고 속인의 발길이 이어지자 청학은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지리산에는 쌍계사와 칠불사가 가장 대표적인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구석구석에 이런 작은 암자 규모의 사찰도 있는데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서 오히려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좋다.  보지는 못했지만 청학이 살만한 곳이 지리산이다. 오래전에 청학 두세 마리가 지리산의 바위틈에 깃들어 살면서 가끔 날아 올라 빙빙 돌다가 하늘을 올라갔다 내려왔다고 한다.  

산사의 아침은 늘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기 전에 순간순간 몸과 말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산 속이라 바깥세상의 소리는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리산을 걷다 보면 단지 폭포수가 소 위로, 바위 위로,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경사길이 등을 떠밀어 불일암을 지나다 보면 폭신한 흙길을 따라 봉명 산장을 지나고 국사암에 도달한다. 암자 일주문 앞에는 1,200살이나 된 느릅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사람의 얼굴에 새의 부리를  상상의 새라는 청학이 왔을 것 같은 국사암은 지리산 쌍계사보다 먼저 신라 839년 진감선사 혜소가 세운 곳이다.   사천왕수에는 혜소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싹이 나고,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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