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5-6

2015.11.24 밀실

좋은 기회였다. 10살 연상의 유부남이었지만 데스크의 책임자로 있는 그 남자와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고 이번 일만 잘되면 연애부 책임자로 갈 수 있는 황금라인에 탈 수 있는 기회였다. 좀 이슈 좀 있겠지만 그 유부남이 이혼하고 적당히 시간을 두었다가 결혼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 미래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때 들어온 세 장의 사진은 인생에 세 번 온다는 기회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막 뜨기 시작한 배우 한수희가 재벌 3세와 호텔 앞에서 찍은 사진, 재벌 3세의 페라리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던 사진, 외진 곳에서 둘이 찍힌 것 같은 사진이 김수진 손에 들어왔었다. 배우 한수희는 조금 늦은 나이에 떴지만 그냥 그런 연기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중들은 열광을 했다. 그리고 동양인답지 않게 깊숙하게 들어간 두 눈과 오뚝한 콧날은 한국인이지만 외국인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하였다. 그런 그녀가 결혼하여 아이가 두 명이 있는 재벌 3세의 세컨드이라는 기사는 수많은 대중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남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만큼 여자들의 시기가 듬뿍 묻은 악플을 받으며 갑작스럽게 뜬 속도만큼 빠르게 추락했다.


다른 언론사들도 이어서 기사를 내놓았으나 대중들은 사진까지 넣은 첫 기사를 낸 우리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하며 덩달아 광고 매출도 껑충 뛰어올랐다. 3주 동안의 행복한 시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한수희는 다시는 못 일어설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그녀의 출신이나 초기 단역으로 출연했던 것까지 기사로 삼으며 떨어진 콩고물을 먹던 듣보잡 인터넷 언론이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하락시키고 있을 때 의외의 특집 기사가 잡지에 실렸다.


세 장의 사진의 숨겨진 진실과 CCTV 분석 등을 통한 기획기사는 대중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대중들의 사랑이 배우 한수희를 향해 돌아서기 시작했다. 언론이 말하는 기사는 보통 진실을 알기가 힘든데 최현이 내놓은 기사는 진실에 더하여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 반영되었다고 할 만큼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배우 한수희가 다시 떠오르며 대중의 칼날은 김수진이 있는 언론사로 향했으며 김수진은 제대로 변명을 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2년이 넘게 사귀었던 그 유부남과의 인연은 끝이 났으며 모든 기회는 사라졌다. 김수진은 그 이후로 최현이라는 이름과 그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


그런데 지금 최현과 엄소 윤이 어디 있는지 김수진이 알고 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멀리 찍은 사진을 보면 70% 이상은 그들이 분명해 보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만 누구와 접촉해야 좋은 기회가 될 것일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지금 데스크에 있는 그 유부남과 이야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몇 명만 아는 쪽지의 주인공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서해 그룹 부회장이나 여당 중진의원은 상대하기가 힘들 것처럼 보였고 지금 인천경찰청장이 가장 무난할 것처럼 보였다. 적당히 찔러 들어갔더니 역시나 먹혔다. 삼청동의 한식당의 룸은 말이 잘 새어나가지 않는 곳이다. 김수진은 7시에 예약이 된 그곳에 정시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50대의 한 남자가 먼저 인사를 해왔다.


"CNBC의 김수진 씨? 반가워요. 이해진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김수진입니다. 그런데 이쪽은 누군가요?"

"전 서해 그룹의 비서실장 김우석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우선 앉죠. 우리할 말도 많고 여기 음식이 참 맛있어요." 이해진 청장은 옆에 있는 벨을 눌렀다. 2~3초쯤 지났을까. 종업원이 문을 열고 앞에 앉더니 물어본다. "어떻게 음식 들일까요."

"그래 좀 넣어봐. 그 제주도에서 붉바리 공수했다며 요리사와 함께 말야."

"예 지금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김수진 씨 붉바리 괜찮죠? 4kg쯤 되는 거라 먹을 만할 거예요."

"예 뭐 저도 회 좋아하고."

이해진 청장은 손짓으로 넣으라고 한다.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 요리사가 들어와서 부위별로 잘 정리된 회의 부위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회뿐만이 아니라 20여 가지에 가까운 부위가 요리사의 칼날 아래 먹기 좋게 다듬어져서 각자의 테이블 앞에 놓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이해진 청장은 손짓으로 요리사에게 나가라는 듯한 표현을 했다.

"김수진 씨 이 부위가 정말 맛있더라고. 일반 활어회에서 만날 수 없는 맛이야. 한 달에 한두 번은 지인들과 같이 먹는데 역시 돈이 좋긴 좋아. 그래 우리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그 친구들 어디 있어?"

"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제 정보원이 알고 있습니다."

이해진 청장은 잠시 김수진을 바라보더니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돈인가? 돈 때문에 그래? 현인가 뭔가 하는 친구가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돈 욕심이 나는 거야?"

"아니요. 저도 알만큼 압니다. 무기명 채권이라고 해도 현금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요. 그렇지만 제가 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도 최현이라는 사람한테 별로 안 좋은 감정도 있고 그 친구 때문에 3년 전에 제대로 물먹었으니까요. 한번 쓰고 버릴 카드가 아니실 텐데요. 뭐 언론 플레이도 해드릴 수도 있고."

"우리들도 언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많아요."

"그렇지만 저 정도 잘 아는 사람도 없고 뒤를 잘 쫓을 사람도 많지 않을 거예요."

"참 이 여자가 나랑 거래하자는 건가?"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김우석 실장이 잠시 이해진 청장을 제지했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시자는 건가요?"

"저도 정보를 공유해주고 최현이라는 친구를 잡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명 채권 회수하는 데에도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대가는?"

"20억과 지금 서해 그룹에서 운영하는 종편채널의 제대로 된 자리 하나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건가 보네요."

"지금 그 친구들 행보로 볼 때 무기명 채권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떠보겠다는 건가?"

"아니죠. 저도 이 사건이 아주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해진 청장이 말을 꺼낸다.

"그래 그렇게 합시다. 사실 비자금 하니까 검은돈 같은데 우리 모두 나라 잘되게 하자고 그러는 거지. 그걸 가지고 사리사욕 채우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서 조금 노력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어쨌든 한 배를 탄 거니까 잘 하자고. 우린 배 갈아타는 사람들 정말 안 좋아해." 김우석 실장은 가방에 있던 봉투 하나를 꺼내 김수진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김수진은 봉투 안을 보니 5만 원짜리 지폐가 조그마한 봉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정보원인가 하는 사람 있잖아. 활동비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많지는 않은데 우선 쓸 만큼은 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형수 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