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그 남자. 그 여자의 만남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때론 이해야 하는 것들과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생긴다. 개인적인 문제에서 상대방이 존재해야 생기는 관계까지 말이다. 관계의 끝이 있을 수도 있고 영원히 같이 가는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관계도 있지만 항상 선택과 행동에 있어 약간의 망설임이 있을 때가 있다. 그중 남녀 간의 사랑은 항상 이타적이길 원하지만 자기중심적이며 그 순간 볼 수 있는 시야에 갇힌 틀이었다고 해야 할까.
세준은 홀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였다. 아이부터 커서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이 아닌 역설적으로 거꾸로 신체나이를 먹어가면서 겪는 인생 경험과 사랑이야기였다. 독특한 시나리오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챗의 열연으로 기억 속에 깊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우울했지만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와 수많은 작품을 썼던 스콧 피츠 제럴드의 작품이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작품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가고 검은색만이 남았을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사랑의 유효기간 타령은 수없이 연애 프로와 sns 등에서 나온 이슈였다. 만나고 호감 가고 잠자리를 하다가 서로가 맞다고 생각하면 같이 살지만 생의 대부분은 맞춰가다가 포기하던가 극적으로 노년에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걸어가는 삶을 살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 속에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인생은 기회의 연속 속에 사고가 따라온다 버틸 수 있는 사고라면 버티지만 그렇지 못할 때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난다. 사랑도 가장 힘든걸 먼저 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 나중에 오는 사랑을 한다면 어떨까. 남자와 여자는 같이 제대로 걸어보는 걸 해보고 시작은 하는 걸까.
맞춰져서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어주고 나서 보통 가장 먼저 했어야 하는 걸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설렌다면...
세준은 일요일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내일 있을 강의자료를 정리하면서 물끄러미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아픔은 구제해줄 수는 없지만 격려해줄 수는 있다.” 자신이 쓰고도 적합한지 잠시 고민하다가 모니터를 덮었다. 가족이라는 가치관과 저출산 등의 이슈만 난무하지 개인의 행복의 본질을 바라보지 않는 사회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스스로도 챙겨야 하는 보통 시민이 그였다.
LED조명이 중간 정도의 밝기로 작업실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동안 작업한 걸로 보이는 그림들이 있었고 몇 차원인지 모르는 그림을 태블릿 pc에 리터칭 하는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화폭에 먼저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 그림을 디지털화하면서 메시지를 넣는 일명 ‘메시지의 화가’로 알려진 선희였다.
그녀는 작업을 하기 전 수많은 미디어와 책에서 메시지를 수집하고 보면서 자신의 그림과 가장 걸맞은 메시지를 선택했다. ‘인연의 선’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나서 그녀가 선택한 메시지는 박세준 교수가 칼럼에서 언급한 내용에서 영감이 떠오른 것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거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