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글 쓰는 남자, 글 읽는 여자

Prolog

심연의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것인지 발가락과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것만 같았다. 남자는 자신의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 시도를 해보았다. 상당히 무겁다고 느꼈지만 눈꺼풀은 위로 올라갔고 서서히 눈앞에 사물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른편에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링거병과 좌측에는 집의 침실에 놓여 있을 정도 크기의 미니 냉장고와 음료수들 그리고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 하나가 의자에 놓여 있었고 소변 주머니로 보이는 것이 밑에 늘어져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탓인지 몰라도 그동안 운동으로 다져졌던 몸매는 생각보다 살이 많이 빠져서 근력이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침대는 전동이라 몸을 들어 올리기 위해 옆에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병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2인실이었다. 앞에도 누군가 입원해 있는 것 같았는데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밑에 놓여 있는 물건들과 주변 상황으로 볼 때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며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상당히 젊잖아 보였는데 차고 있는 시계나 옷, 신발로 유추해볼 때 괜찮은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패션 쪽의 사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역시 병실안으로 들어오며 눈을 깬 자신을 보고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폰도 없고 주변에는 날짜를 알 수 있을만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깨어나셨네요." 바로 대답을 하고 싶었으나 목이 잠겨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다 물이 있는 것을 보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아 예. 지금에야 눈을 떴네요. 죄송하지만 오늘이 며칠이죠?"

"아 오늘이 9월 15일이에요. 4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슈트에서 명함지갑을 꺼내 명함을 내밀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의 임원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자신도 명함을 찾았으나 주변에 자신의 것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아마 댁 물건은 이곳에 없을 거예요. 교통사고로 들어왔다고 들었거든요." 내가 누구였는지 잠시 기억해 보았다. "저는 작가입니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무언가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남자는 와서 악수를 청했다.

"이방인의 밤이라는 소설을 쓰신 김주연 작가시죠?" 자신을 알아본 남자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절 알아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제 딸이 작가의 글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 따님이 계셨구나. 따님이 제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잠시 남자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남자는 말없이 앞에 있는 커튼을 열었다. 그곳에는 여자가 누워 있었는데 조금은 특이한 시스템이 앞에 놓여 있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침대에만 있는지가 벌써 7년째입니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안도 나쁘지는 않은 편이서 일찍이 작가의 세계로 뛰어들어 베스트셀러만 세 번째였다. 거리낄 것 없이 살았고 여자도 쉴 새 없이 갈아치웠다. 그러다가 네 번째 작품을 발표하는 자리로 자신의 스포츠카를 몰고 가던 도중에 중앙선을 넘어오는 SUV 차량에 정면으로 추돌하고 나서 기억이 없었다. 아마 그사고로 이 병원으로 입원했던 것 같다.

"많이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그런데 제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방인의 밤은 3년 전에 출간한 소설인데요?"

"그게요. 저 앞에 있는 모니터랑 카메라 보이시죠? 전신은 마비가 되었는데 눈은 움직일 수 있고 의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글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김주연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할 일도 없었다. 전신이 마비가 되어 있지만 여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면 인기가 많았을 여성이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쓴 덕분에 그곳에 가보지 않았더라도 그곳을 간 것처럼 느끼게 만들게 만드는 힘이 자신의 글에 있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글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오직 내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졌다. 그러고 보니 가끔 잡지사에 기고한 글의 묘한 댓글이 달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나에게 딸의 아빠가 다가오며 쪽지를 건넸다.

"제 딸이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쪽지에는 상형문자와는 다른 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그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딸이 표현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만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아마도 작가의 글에 댓글로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쪽지를 보면서 그중에 하나의 댓글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신의 글로 세상을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을사오적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