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생영화

80년대생이 김지영처럼 산다는 이야기도 새로웠지만 저렇게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남자를 떠나서 자신의 인생이 가장 먼저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되는 자리에 참석을 많이 해야 하는 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왜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분들은 딸 둘의 엄마라던지 아들 셋을 둔 주부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혹시나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오해해서 다가올까 봐 먼저 장벽을 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우선이라기보다는 다른 존재가 우선시된다는 의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그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식 혹은 부모 등의 관계는 그냥 다른 사람과 다른 혈연관계라 조금 더 특별할 뿐이다. 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이유는 없다. 만약 희생을 강요한다면 충분히 이야기하고 따로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참을 이유도 없고 그걸 감내해야 할 마땅한 사유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파괴해가면서 참는 김지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어리 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법적으로 가두어놓은 것이 아니고 충분히 자신의 의지로 벗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사회분위기 혹은 가족, 남편 같은 것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그냥 혼자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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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에 얽매이는 것일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그냥 선택일 뿐이다. 그 사람을 만나서 자신이 더 지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여유로워지는 것 혹은 자식을 낳음으로써 존재의 이유가 더 생긴다고 굳이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존재하고 나서 다른 존재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적절한 것을 참아가면서 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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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가끔 보면 가부장적인 사회의 문제를 유교에서 찾는 사람을 간혹 보기도 한다. 유교의 'ㅇ'도 모르면서 유교가 가진 가치와 철학을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은 유교의 사자소학의 의미도 모르면서 여자에게 어떤 역할론을 강요한다. 유학은 여자가 희생해야 된다고 가르치지도 않고 그런 관점으로 보지도 않는다. 조선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돈으로 양반을 산 사람들이 억지로 유학의 관점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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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그 사람만으로 존재 이유가 있다. 오로지 누군가의 자식으로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편으로 살아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산다는 것은 그걸 대신할만한 이유나 용기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포기할 수 있는 용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게 된다. 그리고 내면에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살다 보니 그렇다 처음에 보았을 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걸 상대방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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