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6-1

2015.12.06

"우리 쉽게 쉽게 가자고. 그렇잖아. 살해도구에 당신 지문이 묻어있고 살해 동기도 인터넷 도박하다가 진 빚을 사채로 막으려다가 안되니까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니까 말도 안 되는 무기명 채권 이야기를 꺼내며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거잖아."

"제 의뢰인이 인터넷 도박을 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조서를 쓰던 형사가 여러 장의 종이를 앞에 내밀었다.

"여기 보시면 세 자리로 된 숫자로 네 개가 보이시죠? 이게 바로 IP주소인데 그 주소가 바로 피의자의 집에서 나온 겁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수십 차례 접속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건 조작하기 힘든 부분이죠. 설마 지금의 이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했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죠?"

현은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 온라인 도박사이트 접속 기록을 살펴봤다. 대부분 밤에 접속이 이루어졌지만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생각났다. 현이 입을 열었다.

"이런 IP주소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그 비자금 문제가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변호사는 현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어 입에다가 대었다.

"그놈의 음모론을 아직도 말하는 건가요?" 형사는 말하다가 증거물인 칼을 거칠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살해당한 이모와 이모부 사진을 흩뿌리듯이 현 앞으로 던졌다. "좀 사람이면 솔직해집시다. 이렇게 증거도 명확하고 칼에 당신 지문이 묻어 있는데 뭐라고 발뺌할 거야. 누가 봐도 당신이 한 거잖아. 그리고 당신 집에서 발견된 이 사채 계약서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리고 당신 통장으로 돈이 입금되었다가 출금 된 기록이 남아 있어."

"제 의뢰인이 그 돈을 출금 한 증거가 있나요?"

"그게 말이죠. 돈 입금과 출금이 조금 오래전에 이루어져서 CCTV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현의 이름의 통장으로 입출금 사실이 확실하게 남아 있는데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할까요."

"직접적인 증거는 살해도구로 사용된 저 칼 하나고 나머지는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확실하지 않은 정황 증거에 가깝군요. 이걸로 기소가 가능할까요."

"그건 검사가 할 일이고 어쨌든 범행을 부인하겠다는 거죠? 그럼 전 정리해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합니다. 이번 사건에 배당된 검사가 누구였던가? 김판수 검사였던가.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던데 그 사람 손에 걸려서 유죄 평결을 안 받은 사람이 없다던데... 자백하면 깔끔 하레 될걸 어렵게 가려고 그래."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제 의뢰인이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그것까지 신경 써줄 것은 없어요. 그럼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죠. 조서를 써서 기소의견으로 넘기시려면 바쁘실 텐데." 형사가 취조실을 나가자 변호사는 최현을 말없이 1분 정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그 친구가 배정된 것을 보면 검찰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아."

"김판수 검사가 누군데요?"

"사법연수원 37기 출신인데 사법연수원 졸업성적 2등으로 졸업한 친구야. 아주 사소한 틈이라도 보이면 파고들어서 결국 자백을 받아낸다던가 자신의 범죄사실을 시인하게 만드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알려진 친구지. 일명 면도날이라고도 불리는데 중요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친구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아."

"어째 분위기가 직접 보신 적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친구가 사법연수원에서 3,4학기 때 강의를 나간 적이 있어. 그리고 친한 후배가 검찰에 있는데 김판수가 검찰 시보로 일할 때 그 후배 밑에 있었나 봐. 수사 진행하고 공소장 작성하는데 웬만한 평검사보다 나았다고 하더라고."

"쉽지 않겠네요."

"아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잘 버틴다 하더라도 재판장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소윤은 곰곰이 생각했다. 현 오빠와 말했던 그 방법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산으로 들어가면 호랑이에게 반드시 물려 죽을 테고 그 호랑이를 산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뿐이 없는데 순순히 나올 사람들이 아니다. 나온다 하더라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덫이나 공격할 때 확실하게 몸을 지킬 수 있는 총 한 자루 정도는 필요한데 우리한테는 그런 게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끌어내야 한다. 호랑이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데 호랑이 목에다가 방울 정도를 달아놓으면 피할 수 있을 텐데 누가 달아야 하나. 상념에 빠져 있는데 문쪽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심심했죠?" 한수희 집에 있는 것도 벌써 며칠째이다.

"아니에요. 수희 씨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해요."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나도 오빠한테 빚진 것도 있고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밥은 먹었어요?"

"대충 챙겨 먹었어요."

"잘 먹어야 해요.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되는데 사람은 밥을 먹어야 힘이 나잖아요."

"그럴게요. 그런데 수희 씨 현 오빠 말대로 하면 그쪽에서 어떻게 해서든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텐데 괜찮겠어요?

"각오는 했어요. 그리고 그래야 될 것 같고요.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는 거죠?"

"뭐 그렇게 하면 한수희 씨에게 이목이 집중은 될 거예요. 그러면 제가 좀 자유로워지겠죠."

"진행되면 알려줘요."

"그런데 한수희 씨 재즈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LP판이 정말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곡들도 있고요."

"아 전 재즈는 잘 몰랐었는데 5연 전인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간 적이 있었어요. 한 달 정도를 그곳에서 있었는데 거리에 재즈 뮤지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거기서 생명을 느꼈다고 할라나. 그때부터 재즈를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구매하던 재즈 LP판이 벌써 저렇게 쌓였네요."

"사람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재즈의 선율의 변화처럼 즉흥적으로 자신의 인생도 갑작스런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기도 하고 운명에 굴복하기도 하잖아요. 현 오빠처럼 질 확률이 훨씬 높은 인생의 벽에 맞서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수희 씨가 좋아하는 음악은 뭐예요?"

"전 Gipsy Kings의 Volare가 좋더라고요. 원래는 'Nel Blu, Dipinto Di Blu'였는데 후렴구에 나오는 Volare가 더 인상적이어서 그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

"나도 그 노래 참 좋아하는데 그 가사에서 '꿈을 꾸면서 나는 난다, 나는 노래한다. 푸르름 속에서 푸른색을 칠해라 그래서 행복하다.'라는 부분이 가장 좋더라고요. 국내 가수 중에서 웅산이 부른 것도 좋고요."

"저도 들어봤어요. 또 다른 느낌이던데요." 한수희는 일어나서 LP판 하나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경쾌한 느낌의 Volare가 흘러나오면서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이 두 여자에게 잠시의 안도와 행복한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Psenso che sogno cosi

non ritorni mai piu,

mi dipingevo le mani

e la faccia di blu,

poi d'improvviso venivo

dal vento rapito,

e incominciavo al volare

nei cielo infinito.


volare ho ho

centare ho ho hoho,

nel blu dipinto di blu,

felice di stare lassu,

e volavo vol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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