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이 바꾼 한반도

뒤바뀐 유관순의 운명

교수 : 진수는 독립운동하면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나?

진수 : 앞서 말하셨던 윤봉길이나 조병옥도 생각나지만 유관순 열사 아닐까요?

유관순생가2.JPG 3.1운동을 준비하는 유관순

교수 : 맞아 독립운동에서 유관순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이 한국을 통합했던 한일합방만 생각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간과하고 있어.

진수 :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는 한일합방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건가요?

교수 : 미국, 영국, 프랑스의 묵인 속에 일본 제국은 한반도를 지배할 수 있었으나 껄끄러운 존재가 하나 있었어. 바로 러시아인데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왔었거든. 그 상태에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의 전단계인 외교권 박탈을 하는 조약이 무의미 할 수 밖에 없었어. 아직 러시아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결렬이 되고 양측은 전쟁준비에 들어가지. 당시에는 아무리 이빨빠진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이 러시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열강은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여순항에 있던 극동함대에 공격을 시작한 거야.

진수 : 일본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그냥 선제공격을 해버렸군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했을 것 같아요.

교수 : 첫 번째 큰 전투는 바로 여순항을 기반으로 치루어졌고 서로 큰 타격은 입히지 못한 채 소모전이 진행되다가 결국 여순항에 발이 묶여 있던 러시아 제국의 함대는 전략가였던 마카로프 제독의 전사에 이어 비트게프트 제독이 사망하면서 극동함대는 결국 무너져 버렸어.

진수 :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끝이 나버렸네요. 첫 번째라고 하셨으니까 두 번째 전투가 남아 있겠네요.

교수 :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게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이 괘씸한 노란 원숭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생각을 하지 그래서 유럽 방면을 지키는 주력함대인 발틱함대를 일본 원정의 임무를 준거야. 당시 발틱함대는 흑해함대, 동양함대와 함께 러시아의 3대함대라고 보면 되. 극동함대가 무너지기 전에 출발해서 그들과 합류해서 일본과 치려고 했지만 마다가스카르에 정박했을 때 극동함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사기가 바닥을 치지.

진수 : 최악이네요. 수군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었을 건데요. 그렇다면 일본이 당시에 돈이 많았던 것 아니에요?

교수 : 글쎄 당시 러시아의 국방비는 일본의 세배였고 군인들의 수는 110만으로 일본의 여섯배에 달했으니 데이터상으로는 우위였었어.



MG0A8343_resize.JPG 쓰시마 전투에서 러시아 함대의 무덤이 된 바다

교수 : 문제는 러시아가 한 번도 수행해본 적이 없는 작전을 시도한거야. 1904년 10월 15일 핀란드만에서 출발한 발틱함대는 기지정박이나 석탄 연류 공급을 보장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항해하여 일본함대와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거지. 바다의 폭풍우뿐만이 아니라 각종 기계고장, 썩은 고기, 열대 질병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상태에서 사기가 좋을 리가 없었을거야.

진수 : 지금이야 일본, 중국을 강대국으로 인정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냥 키작고 작은 민족이라고 무시했었을거에요. 그래서 그런 무모한 작전도 시도한 것이구요.

교수 : 러시아 사람들은 그런 성향이 약간은 있지. 아무튼 오랜 항해 끝에 쓰시마(대마도)해협에 도착한 러시아 함대는 42척의 군함을 보유하고 있어서 일본 해군 전체보다도 더 강해보였어.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협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수집한 일본 주력 함대가 바로 조선 연안기지에서 출발해. 극동함대를 물리친 것도 쓰시마 해협에 나타난 발틱함대를 막기위해 나선 일본측 지휘자는 바로도고 제독이야.

진수 : 일본에서 그렇게 존경한다는 도고가 거기서 나오는군요. 조선의 이순신을 침튀기게 칭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교수 : 맞아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능력도 있었던 도고는 조선의 이순신이 했었던 함대 전환능력을 보여주는데 이때 12척의 일본 주력함(4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함)을 시속 30km를 유지하면서 단 15분 만에 180도 회전 기동작전을 마치면서 러시아 군함들을 공격할 준비를 완벽하게 해냈어

MG0A8310_resize.JPG 우호 평화의 비 (로체스트벤스키를 병문안 하는 도로 헤이하치로 제독)

진수 : 어떻게 그런 일방적인 전투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도고라는 사람이 대단하긴 하네요.

교수 : 쓰시마 해협에 진입한 38척의 러시아 함대에서 31척이 나포되거나 가라앉았고 총 4,830명의 전사와 5,907명이 포로로 잡히게 되었어. 일본군은 단 117명이 전사하고 전함이나 순양함은 단 한척도 잃지 않았지.

진수 : 그래서 한반도의 식민지화가 가속이 되는군요.

교수 : 맞아 러일전쟁의 패배로 러시아는 폭동이 일어나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포츠머츠 조약에 따라 일본은 조선, 랴오둥 반도, 사할린 섬 남쪽의 지배권을 획득해.

진수 : 러시아가 이겼다면 오늘날 유관순이라는 사람을 모를 수도 있겠네요. 러시아가 어떤 정책을 시도했을지는 모르지만요.

교수 : 러일전쟁으로 인해 처칠은 이런 말을 해 “일본은 그릇이나 만드는 야만국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 발트함대를 이긴 것을 보고서야 문명국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 그릇의 장인은 임진왜란때 강제로 끌려간 조선 도공에 의해 전수되었는데 말이야.

진수 : 저도 본 적이 있어요. 지금도 명인의 집안은 태극기를 일장기를 같이 걸어놓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교수 : 도고는 뼈속까지 군인이었어. 자신을 이순신과 비교하는 것에 화를 내며 이순신을 신의 경지와 비교했었던 솔직한 사람이지. 19세기 말 일본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전술전략”이라는 교과목이 있었을 정도니까.

진수 : 유관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이순신이 등장할지 몰랐네요.

교수 : 자 유관순 이야기로 돌아와서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現 병천면 용두리)에서 유중권씨의 삼남이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어. 선교사 부인인 Ms. Alise H.Sharp의 배려로 미션스쿨인 이화학당에 보통과 3학년으로 편입학하였는데 이때 다양한 사상과 세계사 동향을 접하게 돼.

진수 : 그래도 초가집이 태어나 서울까지 교육받으러 가는 호사를 누렸네요.

교수 : 계속 공부를 했으면 좋으련만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서거로 민족이 울분에 도가니에 휩싸이게 돼지. 일제는 학생들의 시위가 두려워 3월 10일 전국적으로 휴교령을 내리자 유관순은 이곳 고향으로 내려왔어.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동안 서울에서 있었던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독립운동을 거론했어. 이때 유관순과 그 부모는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계획한거야.


유관순생가.JPG 유관순 생가 (충청남도 목천군 병천면 용두리)

진수 : 불과 17살밖에 안되었던 딸의 말을 들은 부모님도 대단하지만 무서웠을텐데 그런 것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보통 배포는 아니긴 해요.

교수 : 많이들 연약한 소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정도를 추진할 수 있는 실행력과 베짱을 보면 여걸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이 서는 음력 3월 1일(양력 4월 1일)로 잡았는데 유관순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고, 밤새도록 태극기를 만들었어. 거사일이 되자 이미 연락한대로 알고 찾아온 군중과 장사꾼으로 아우내 장터는 독립운동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하고 유관순은 행렬의 선봉이 되어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

진수 : 그 다음은 저도 알아요. 유관순 부모님은 현장에서 살해당하고 유관순은 체포되죠. 그리고

추국당시 검사가 "너희들 조선인이 무슨 독립이냐?"고 핀잔을 주자 관순은 일어나 걸상을 들어 검사를 쳤는데 이로 인해 법정 모독죄를 추가하여 당시 함께 재판을 밭았던 누구보다도 중형인 7년형으로 되었다는 거요.

교수 : 그런 일화까지 알고 있었던 말이야?

진수 : 중학생때 유관순 관련 독서 감상문을 써본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1920년 9월 말 고문의 영향과 영양실조로 순국했잖아요.

교수 : 그렇다면 매봉교회 이야기는 아나?

매봉교회.JPG

진수 : 매봉교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교수 : 유관순과 매봉교회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 1898년 선교사 스웨러(Wilbur. C. Swearer)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천안 동부지역에서는 최초의 교회이면서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일본에 의해 교회가 불태워지고 강제 퍠쇄된 교회가 매봉교회이거든.

진수 : 아하 사진에서 유관순 생가 옆에가 바로 매봉교회군요.

교수 : 일본 경찰에 의해 교회당이 1907년에 태워지지만 1908년 지역유지 유빈기,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씨, 조병옥 박사의 부친 조인원씨 등 성도들이 재건했어. 이후 1932년에는 폐쇄 조치가 되기도 했지만 이후 1966년에 다시 재개척하여 이듬해 이화 여자 고등학교의 지원으로 기념 교회가 세워지면서 매봉 교회가 되었고, 1998년에 기독교 대한 감리교단의 지원으로 다시 기념 교회를 건축하여 오늘에 이른거지.

진수 : 교회가 항일운동에 앞장 섰다는 것은 조금 새롭네요.

교수 : 유관순 생가 옆에 자리한 매봉교회는 지금은 그냥 평범한 농촌 교회이지만 1층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숨쉬는 곳이야.

진수 : 나라를 지키는 것도 힘이고 과거를 알지 못하면 미래 역시 장담할 수 없는 거네요. 러일전쟁이 일어날 때만 하더라도 한일합방까지 되리라고 생각한 조선인들은 별로 없었을 듯 해요.

교수 : 역사는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철학서이면서 예언서이기도해.

진수 : 살짝 엿보는 전쟁사부터 유관순까지..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