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궁녀들의 해를 품은 달 헌종
교수 : 진수야 왕이 되면 무엇이 가장 좋을까?
진수 :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던 것 같구요.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여자 무한 선택권 아닐까요.
교수 : 비록 요절했지만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렸던 임금은 헌종이야.
진수 : 헌종은 머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왕 같은데요.
교수 : 조선 역사상 궁녀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군주를 투표하라고 하면 헌종이 1위가 될지도 몰라. 잘생긴데다가 머리가 좋고 정력까지 좋았으니 얼마나 인기가 많았겠어.
진수 : 금시초문인데요. 얼굴 잘생기고 정력이 좋았으니 궁녀들에게는 마치 해같은 존재였겠네요.
교수 : 한때 해를 품은 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잖아. 그 실사판 모델이 바로 헌종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첫눈에 반했지만 삼간택에서 떨어진 경빈김씨를 어떻게든 찾아서 자신의 후궁으로 들인 것을 보면 나름 로맨틱한 사람이기도 하고.
실제 헌종은 미남에 글을 잘써서 궁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궁궐내에서 좀 이쁘다고 하는 궁녀들은 대부분 헌종의 승은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승은을 입지 못한 궁녀들은 추녀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많은 궁인들이 유혹을 하기도 했지만 워낙 색을 밝혔던 헌종은 잦은 성관계등으로 인해 기력이 쇠하여 2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진수 : 저도 해품달은 한편도 빼놓지 않고 본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여성과 잠을 자야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나요. 대단하네요. 친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면 많은 여자를 붙여주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네요.
교수 : 오늘의 주인공 헌종의 릉은 양주에 있는데 태실은 예산에 있어. 대부분의 태실이 강제적으로 옮겨진 것과 달리 헌종의 태실은 명당자리에 남아 있는 셈이지.
진수 : 왜? 태실이 강제적으로 옮겨져요.
교수 : 일제강점기때 조선왕실의 기를 쇠하기 위한 그런 목적으로 태실을 모두 파내어 1928년에 한 곳에 모아놓았던 거야. 조선왕실에서 왕자가 될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백자 항아리에 담아 산실안에 안치해주었다가 전국의 명산에 태를 묻었거든.
진수 : 일본이 별별 짓을 다했네요. 그런데 헌종은 야사만 전해지는 것 같아요. 하기사 외척의 힘이 강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거에요.
교수 : 정조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정순왕후 김씨의 사후에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 안동김씨에게 권력이 넘어간 상태에서 헌종이 즉위했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어.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고 15살(1841년)의 나이에 직접 정치를 하면서 내영, 총위영의 설치, 초계문신제를 운영했지만 그의 왕권강화는 실패했지. 그래서 그의 사랑이야기가 더 크게 부각된 듯해. 왕후조차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현실과 자신을 옥죄어 오는 세도가들 사이에서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더 와닿는 법이지.
진수 : 어떤 사랑이야기에요?
왕후를 선택하기 위한 삼간택에 최종적으로 올라온 사람은 세명 이었다. 홍재룡의 여식 홍씨, 박시, 김재청의 여식 김씨가 올라왔다. 이때 순원왕후의 눈에 들었던 것은 홍씨였다.
"주상~ 나는 홍재룡의 여식 홍씨가 나은듯 하니 그녀와 혼례를 올리도록 하시오."
"할마마마 소자에마는 마음에 든 처자가 있사옵니다."
"주상의 자리는 마음에 든다고 선택할 수 없는 법, 후사를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니오"
"그게 아니옵고 소손은 김씨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사옵니다."
"중전의 자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세울수가 없는 법! 어찌 그리 약한 말을 한단 말이오. 이 할미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을 듣고 이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말인가"
더 이상 대비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헌종은 우선 대비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한다.
"알겠습니다. 할마마마의 뜻을 따라 홍씨와 혼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잘생각하셨소"
효정왕후로 궁에 들어온 홍씨는 대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간다.
"중전~ 이나라 조선을 위해 후손을 잘 만들어 주시오"
"대비마마의 은덕을 잊지 않겠사옵니다."
대비의 강력한 권유로 홍씨와 가례를 올리기는 했으나 헌종의 마음은 이미 김씨에게 가있는 상태였다. 여성을 그토록 좋아하는 헌종이라도 마음속에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성이 한 명은 있었다.
"중전 내 비록 내의지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당신을 맞았으나 난 중전과 애뜻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시오."
"전하 너무하십니다. 어찌 제 의지대로만 중전의 자리에 오른 것이겠습니까."
"중전의 가문이 어떤 영화를 보던지 상관은 안하겠지만 내 마음까지 얻으려 하지 마시오."
삼간택에서 떨어진 여성은 평생 혼인을 못하는 것이 조선시대 간택에 오른 여자의 운명이었다. 그런 김씨를 잊지 못하던 헌종은 오매불망 그녀 생각뿐이 없었다. 3년이 지났으나 효정왕후와의 사이에서 후사를 보지 못했던 헌종은 다시 한 번 대비를 찾아가서 고한다.
"할마마마 중전과의 사이에서 후사가 없으니 후궁을 들여 후사를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주상! 후사가 없으니 어찌 걱정이 안되겠소. 그럼 누구를 후궁으로 들이겠다는 것이오."
"제 마음에 품은 정인이 있으나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으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헌종은 김씨를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이 나라를 이끄는 왕이 아니라 남자로서 물어보겠소. 남은 인생 나와 함께하지 않겠소."
"전하 소인에게 과분한 일이라 황공하기만 합니다."
"다음 인생이 있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당신만을 바라보는 촌부로 태어날 것이오."
"소인은 전하를 처음부터 정인이라 생각해왔사옵니다. 제가 중전이 되지 않아도 전하만을 마음에 품고 살기로 생각하였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헌종은 자신이 사랑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창덕궁에 낙선재를 만든다. 비록 중전의 자리에서 그 세를 누린 것은 효정왕후였으나 헌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은 경빈 김씨이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으며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였다.
진수 :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움직였던 조선 왕실의 혼례를 로멘틱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헌종이네요. 궁궐에 여자들도 참 많았을텐데 마음 한 켠에는 순수함이 남아 있는 느낌이에요.
교수 : 헌종이 비록 왕으로서의 업적은 거의 없었지만 한계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어. 힘 있는 양반들이 조선왕을 선택했던 것은 반정외에 사례는 많지 않았는데 헌종 이후부터는 세도가들이 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난세의 시대라 들어섰었으니까.
순조의 손자로 헌종은 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5년 동안 수많은 재해뿐만이 아니라 천주교 박해가 끊임없이 일어나는등 민심이 흉흉했다. 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고 1836년 남응중, 1844년 이원덕.민진용 등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는 등 임금을 임금처럼 생각하는 양반의 수가 적었다.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죽으면서 강화도령이 왕에 오르니 그가 철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