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여자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 김씨

수진 : 교수님~ 뭐 좀 물어보려고 왔어요.

교수 : 그래 수진이가 무슨일로?

수진 : 교수님한테 강의를 듣다보니 이번에 역사를 말하는 공모전이 있어서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러거든요. 그런데 아직은 부족한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조언좀 구하려구요. 괜찮죠?

교수 : 당연히 괜찮지. 흠 그렇다면 논문을 쓰는 방식으로 주제를 찾아봐야 되겠네.

수진 : 가령.....조선과 유럽의 중세시대이야기 이러면 너무 포괄적이죠?

교수 : 보통 학생들이 첫 번째 논문을 쓰고 싶을 때 너무 포괄적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굉장히 위험한 논문이야. 수진이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많은 것이 쌓였을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예를 들어 물리학이라는 테마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물리학에서 한 분야인 입자물리학도 연구할 것이 많아.

수진 : 설마 제가 그렇게 쓸 수 있겠어요. 그러면 보통 기간은 얼마정도가 좋을까요?

교수 : 수진이가 얼마나 준비했는지는 모르는데 좋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3년 이하가 좋아. 3년 이상이 걸리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주제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6개월 이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거든. 수진이 같이 문헌을 통해 자료를 조사한 적이 없고 그것을 정리하여 글을 쓰려면 6개월은 금방 지나가거든. 이번 것은 1년 안에 완성하는 것으로 시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수진 :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군요.ㅜ.ㅜ

교수 : 자 이번에 첫 도전이니 범위를 줄여보자고. 우선 과거의 테마를 쓰기로 했으니까 기준은 정해졌고 테마는 한정시키고 대부분의 자료가 손쉽게 참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지.

수진 : 시대를 특정하고 인물을 선택하면 어떨까요?

교수 : 그 정도면 도전해볼만 하겠네. 역사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에서 시작해 반드시 정적이 필요하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던가 하는 결말도 좋지. 그리고 무조건적인 좋은 평가가 아닌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같이 있으면 더욱 좋고.

수진 : 저는요 이집트인가요? 거기서 클레오파트라 같은 사람이 좋아요. 무언가 주도적인 여성이야기가 끌리거든요.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69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딸로 태어나 파라오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강대국 로마 제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고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렸던 여제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교수 : 조선에서 클레오파트라 같은 캐릭터라. 여자가 주도적으로 국가를 이끌었던 그런 사람을 생각하면..흠... 문정왕후, 정순왕후 정도가 생각나는데...

수진 : 저 정순왕후 누군지 알아요. 역린에서 본 적있어요.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몇 번 나왔죠?

교수 : 영.정조시대를 이야기하자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니까. 나올 수 밖에 없지.

수진 : 그럼 전 정순왕후라는 사람으로 할래요.

교수 : 첫 도전치고 나쁘지 않겠네. 정순왕후는 인생의 굴곡도 있고 정치관 그리고 남편 영조와 손자인 정조와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았으니까.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역사이고 자료도 많은편이니까.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보려고?

수진 : 근데요. 우선 도서관에 가야 되는거죠?

교수 : 그럼 도서관도 안가보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글을 쓰려고 한거야? 우선 도서관에 가서 기본적인 참고 문헌을 활용하려면 가능한 많은 책을 보는 것이 좋아. 모든 책을 읽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도서 목록에 대한 예비조사를 거치고 독서카드와 참고문헌카드를 손이든 스마트폰을 활용하던 간에 작성하는 버릇도 가지고 말이야.

수진 : 괜히 한다고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직은 아무것도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없지만요.

교수 : 그럼 어떻게 구성해보려고?



MG0A7132_resize.JPG 정순왕후 생가 (충남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39)

수진 : 이전에 잠깐 제가 생각해 본 것은요. 어린시절, 간택,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 정조와의 대립, 여제세상으로 나누어서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교수 : 다했네 이제 글만 쓰면 되겠어.

수진 : 교수님 ~~

교수 : 그래 그래! 우선은 그렇게 시작해도 무난할 것 같긴 해. 남다른 어린 시절을 두드러지게 하고 간택의 일화를 언급해주는 것도 좋지. 정조의 암살시도와 연관된 정순왕후의 정치적인 배경,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 순조를 수렴청정하면서 펼친 정치력, 그 이후에 평가를 넣으면 좋겠네.

수진 : 그런데요. 정순왕후가 정말 어릴 때 시집갔다고 하는데 맞나요?

교수 : 15살이었으니까 지금으로 보면 어린 나이였지.

수진 : 그럼 영조는 몇 살이었는데요?

교수 : 가례를 올릴 때의 영조는 66살 이었어.

수진 : 와 진짜 엄청나네요. 그런데 그런 나이차이에도 시집을 가는 것이 조선에서는 일반적이었어요?

교수 : 영조가 워낙 오래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의 임금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혼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처녀만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거든. 그걸 조사하려면 조선시대 간택에 대해 간단히 알 필요가 있어. 왕비를 간택할 때는 먼저 전국에 금혼령을 내렸는데 이는 좋은 처자를 선택하기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성이 더 강한 경우가 많았기에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

수진 : 그럼 명문 사대문가의 규수 모두가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교수 : 그렇다고 모두가 대상이 되지는 않았어. 근친혼이 있었던 일본과 달리 조선은 본관과 관계없는 이씨, 왕대비전과 동성인 자는 7촌 이내, 이성은 6촌 이내, 대왕대비전과 동성인 자는 5촌 이내 및 병이 있다던가 부모가 병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제외했었으니까. 이씨 왕가의 후손을 위해 많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던거야.


영조 25년 (1749) 사도세자가 15세 되던 해에 대리청정을 명령했다. 이때 영조의 나이 56세였다. 당시 영조는 정실왕비 정성왕후 달성 서씨가 살아있었다. 사도세자를 아끼던 정성왕후 달성 서씨가 1757년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숙종의 유지(후궁이었던 장희빈이 정실왕비가 되어 한차례 파란이 일었던 것을 경계함)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2년 뒤 김한구의 딸을 새 왕비로 간택하였다. 그녀가 정순왕후 김씨다.


수진 : 아~ 그래서 후궁 중에서 왕비가 선택되지 않고 정순왕후 김씨가 선택된 거네요. 장희빈 재미있게 봤는데 그런 이야기가 또 있었어도 재미있을 거 같은데..아쉽다.

교수 : 아무튼 김씨는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당당했던 사람이야. 최종 관문인 3간택에 들어선 정순왕후가 대답했던 것이 남달랐던 일화가 여러개 전해 내려오고 있어.


간택당시 각자 아버지 이름이 쓰인 곳에 앉아서 기다릴 때 혼자만 떨어져 앉아 있었다.


MG0A7133_resize.JPG 정순왕후 생가의 앞마당

“어찌하여 홀로 떨어져 앉았느냐?”

“방석에 아비의 이름이 있어 그 위에 앉으면 아비를 깔고 앉는 것이기에 어찌 앉을 수 있겠사옵니까?”

“부모에 대한 효가 나라에 대한 충이니 그럴수가 있겠구나”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영조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궐 지붕에 기와골이 몇 줄 인지 알겠느냐?

다른 처녀들은 고개를 빼고 기와골을 헤아리면서 말을 했는데 김씨만은 앉은 채로 대답을 올렸다.

“어찌 알았느냐”

“마당에 빗물이 떨어져 골이 패인 것의 수를 세어보니 기와골의 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가장 맛있는 반찬은 무엇이냐?”

“무릇 모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소금입니다.”

“그럼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

“목화꽃은 비롯 먹과 향기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니 가장 아름답다 말할 수 있습니다.”


수진 : 무슨 시험봐요? 전 기분 나빴을 것 같아요.

교수 : 그만큼 현명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다고 보면 되지.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래. 조선시대의 간택은 처녀의 단자를 받은 다음에 택일을 하여 이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아버지의 성명을 쓰게 하는 초간택에서부터 최종 세 명의 후보로 좁혀지기까지 세 번의 절차를 거치고 마지막 삼간택은 왕과 왕비 앞에서 치러지며 삼간택에까지 가면 정승들과 논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어. 마지막 삼간택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진 후보는 시집을 갈 수 없어서 처녀로 늙던지 후궁으로 들어가야 하니 이왕이면 왕후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수진 : 간택대상이 된 죄네요. 악법 아닌가요. 떨어지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해줘야지 처녀로 늙게 한다는 것은 어이가 없다는...

교수 : 조선의 법이 그랬으니 지금 와서 왈가왈부해봐야 의미 없지. 그건 그렇고 앞서 말한 것처럼 김씨가 영조에게 시집왔을 때 조정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에 들어갔을 때였어. 때마침 김씨가 정실왕비로 들어오고 나서 김씨의 집안인 경주 김씨가문과 사도세자의 장인인 풍산 홍씨 가문은 힘을 합쳐 영조와 정치성향이 다른 사도세조 폐위작전에 들어가게 되는거야.

수진 : 정순왕후 집안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사위의 장인 가문이 적으로 돌아선 것은 이해가 안되요.

교수 : 사도세자와 장인의 정치색이 너무 달랐는데 사도세자는 소론을 지지하고 장인은 노론을 대표했던 사람이야. 그 당시 정치색이 다르다는 것은 한쪽이 완전히 그 힘을 잃을 때까지 싹을 제거할 정도로 싸웠다고 생각하면 돼.

수진 : 대단한 집안들이네요. 그래도 사도세자는 죽게 만들었는데 그 아들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봐요.

교수 : 그건 내분이라고 해야 하나. 공동의 적인 사도세자가 없어지자 이 두 집안은 정권을 잡기 위해 각 집안의 실력자를 실각시키려고 노력하거든. 정순왕후 김씨의 동생 김귀주는 풍산 홍씨 가문의 홍봉한을 실각시키기 위해 청주 토반 한유를 사주해서 홍봉한이 세손인 산을 제거하고 이복동생 은언군을 추대하려고 한다고 상소를 올리게 만들었어. 그 사건으로 인해 홍봉한은 청주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고 이후 역풍을 맞아 김귀주가 탄핵을 당했으니 두 집안이 서먹해질 수 밖에 없지.

수진 : 사이좋게 잘 들 살지 참..여자 한 명이 들어감으로 인해 많은 영향력을 미치긴 했었네요.

교수 : 조선은 정순왕후 김씨를 기점으로 당파 중심에서 외척가문 중심의 정치로 넘어가 100여년이 흐르게 된 거든. 암튼 영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조가 즉위하는데 즉위하자마자 정조는 대신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로다. 선대왕께서 종통의 중대함 때문에 나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명하셨던 것이다.”


수진 : 그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네요. 아버지를 죽게 만든 너희들 두고 보자는 거잖아요.



MG0A7135_resize.JPG 사랑채를 돌아 안채로 들어가는 길

교수 : 정조는 그런 발표를 하고 나서 바로 홍봉한, 정후겸, 홍인한, 숙의 문씨, 김귀주등을 모두 귀양보내던가 사사시켰어.

수진 : 정순왕후는 찍소리도 못하고 지냈었겠네요. 조금 불쌍해요.

교수 : 머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 정조대에 와서 명나라 중심의 사대관을 벗어난 것을 비롯하여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는데 그 기술 중에 상당 부분은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어. 그리고 새로운 인재들이 조정에 넘쳐나기 시작하던 때였지. 그러나 정조의 그런 의지는 아들인 순조를 왕세자로 책봉한 해에 세상을 떠나고 정순왕후가 정치일선에 나서면서 꺽여버렸어.

수진 : 세상이야 어떻게 변하든 이제 정순왕후의 시대가 온 거네요. 즉위할 당시에 순조가 어렸던 거죠? 그래서 수렴청정을 한거구요.

교수 : 그렇지. 순조가 즉위할 때의 나이가 11세로 대왕대비가 수렴청정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이때 정순왕후와 정치적인 성향이 맞는 노론벽파들이 정치일선에 대거 등장해. 그리고 남인, 소론 시파, 신서파를 제거하기 위해 좋은 구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주교 탄압이야.

수진 : 종교가 무슨 죄라고.

교수 : 당시 천주교는 사학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름 타당성은 있었어. 천주교가 탄압이 된다는 것은 같이 건너온 선진문물 역시 같이 사장된다는 의미도 포함이 돼. 그들의 생각과 기술은 잘못된 거거든. 천주교 엄금에 관해 정순왕후는 아래와 같이 하교했거든.


“선왕(先王)께서는 매번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듣건대, 이른바 사학이 옛날과 다름이 없어서 서울에서부터 기호(畿湖)에 이르기까지 날로 더욱 치성(熾盛)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 꼴이 되는 것은 교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른바 사학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무너뜨리고 교화에 배치되어 저절로 이적(夷狄)과 금수(禽獸)의 지경에 돌아가고 있는데, 저 어리석은 백성들이 점점 물들고 어그러져서 마치 어린 아기가 우물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으니, 이 어찌 측은하게 여겨 상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MG0A7136_resize.JPG 정순왕후 생가의 안채

수진 : 말도 잘해야 되겠어요. 그럴 듯 한데요?

교수 : 당시 만 1년 동안 학살당한 교인의 수가 300여명에 달했으니 적지 않았던 거야. 그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정치에서 배제된 양반들이었으니 실학자들의 씨가 마른거지. 이후 노론벽파를 중심으로 조정을 이끌던 정순왕후는 수렴청정 4년만인 1780년에 이만 거둔다는 하교를 내려...

수진 : 오~ 물러날 때를 알았던 건가요?

교수 :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직 순조의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더 하고 싶었지만 조선에 여러가지 변고가 발생해 민심이 흉흉해지니 불미스러운 일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신들이 철회해달라고 간청하리라고 생각했던 거야.

수진 : 그런데 대신들이 간청을 안했던거죠? 아쉬웠겠다.

교수 : 이미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아버지인 김조순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거든. 저물어가는 태양이 아닌 새로운 태양을 대신들이 선택한거야. 그리고 1년 뒤에 정순왕후는 61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이야기도 막을 고해.

수진 : 그래도 멋져요. 대단한 사람이네요. 왕실에 시집와서 46년 동안 별별 일을 다 겪기도 하고 그 똑똑하다던 정조와 대결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네요. 그런데요..말을 듣고 보니 심히 걱정이네요.

교수 : 우선 시도는 해봐. 중간 중간 나에게 와서 점검을 해봐도 좋고. 아! 진수한테 물어봐.

수진 : 진수는 전에도 조금 그랬는데 교수님하고 이야기하더니 점점 더 애늙은이가 되가는 것 같아요. 아는 척만 하고 아무튼 감사해요. 많이 도와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을게요.


정순왕후 김씨의 유해는 경기도 동구릉의 원릉에 영조와 합장되었으며 그녀는 수렴청정 1년이 되는 해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을 삼사로부터 가족이 사교(천주교)에 물들도록 단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강화도에서 사사시킨다.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는 그보다 3개월 먼저 사역형을 받고 죽는다. 이후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던 은언군의 서자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이었던 이변이 순조-헌종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강화도령 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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