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 죽다.

황산벌의 주역 계백장군

성현 : 차를 사려면 조금 큰 차를 사지 이게 뭐야. 뒷좌석은 좁네.

주만 : 차도 없어서 얻어 타고 가면서 참 말많네.

진수 : 성현아 그냥 가자. 얼마 안남았잖아.


주만이의 차는 수입차이긴 하지만 퍼포먼스를 강조한 작은 차로 마니아층에게 인기가 있는 그런 차

종이다. 오늘 가는 곳은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위치한 계백장군의 묘다.


수진 : 주만이는 오늘도 숙제 안해왔지? 물어보나마나 뻔하지.

주만 : 아니 한국 사람이 계백장군 모르는 사람 있어. 그냥 그곳을 안가봤다 뿐이지 황산벌 전투에서 결사대와 함께 몰살당했잖아. 이 정도는 나도 안다고.

수진 : 그럼 왜 황산벌이라고 부른거야?

주만 : 그거야. 그 지역 이름인가 보지. 황색흙이 많은 곳 그래서 황산벌 머그런거 아냐?

수진 : 그래서 황산은 아니고 호남과 호서지방의 중간지점으로 연산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논산 평야보다 황산벌로 더 잘 알려져 있어.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곳을 보면 숫자 3이 연상된다고 하더라구.

주만 : 그래 말 잘했다. 그럼 숫자3이 완벽한 수라는 것은 알어?

성현 : 완벽한 수? 그냥 좋아하는 수 아냐?

주만 : 봐봐 소수 73은 가장 완벽한 수로 외국에서 생각하기도 하는데 73은 37번째 소수이거든 거꾸로 놓아보면 다시 37은 21번째 소수이고 73을 이진수로 표시하면 1001001으로 가운데 1을 중심으로 숫자 3개가 좌우대칭이며 37을 곱하면 21이고 37의 소수 21을 더하면 3, 곱한수 21을 더하면 3이 나와. 이건 몰랐지?

진수 : 주만이 전공 나왔다. 누가 물리학 전공 아니랄까봐. 하여간 숫자3은 한민족 역사에서 삼신할매, 삼일장, 삼족오, 삼재수등에 사용될만큼 중요한 숫자이기도 해.

소희 : 애들아 머리 아프다. 얼마나 남은거야?

주만 : 한 20분 남았다고 나오는데? 그전에 도착할 것 같어. 그런데 질문 계백장군의 계급이 뭐였어?

수진 : 이야 주만이가 궁금한 것도 있네. 백제의 관등은 총 16단계였는데 그중에서 최고는 좌평 그리고 다음은 달솔, 은솔, 덕솔, 한솔 이런식으로 나아가는데 계백장군의 계급은 좌평이었어. 많이 들어본 성충, 흥수가 좌평이었고.

주만 : 그래도 꽤나 높은 자리에 있었네.

성현 : 그런데 이상한 건 황산벌 전투 이전에 그럴듯한 전투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이야.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던 그때에 최고 지휘관으로 전쟁에 나가본 적이 없던 장수가 과중한 책임을 맡았던 것일까?

소희 : 그러게 그건 조금 이상하다. 당시 백제의 상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진수 : 나도 궁금해서 그 부분을 찾아봤어. 백제 의자왕이 저평가된 것은 패망한 국가의 마지막 임금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거든. 당시 백제가 선택한 전략은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물리친 것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독일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전략과도 비슷하거든. 즉 유인해서 힘을 빼게 만든 뒤 적을 이기겠다라는 것이거든. 문제는 러시아의 영토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그 전략은 유효했지만 백제 땅이라고 해봤자. 충청도 일부와 전라남북도 정도였다는 점을 간과한거지.


바르바로사 작전 :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한 작전으로 독일의 동부와 북부에서 180개 사단으로 편성된 400만 명에 가까운 독일군 부대가 항공기 2,000대의 지원과 전차 3,350대, 야포 7,200문등을 준비하여 승리를 다짐했으나 초.중반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면서 독일의 패배로 이어진다.


백제군사박물관

수진 : 백제 조정은 그 시점에서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서부전선인 기벌포에서 당나라군대를 막고 동부전선인 탄현에서 신라군을 막는 것은 군세로 보았을 때 불가능하다고 보고 시간을 벌어볼 요량으로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방어하게 했던 거지.

소희 : 그럼 계백이 자신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전투에 나갔다는 것은 허구일 수도 있겠네?

진수 : 백제는 멸망했고 의자왕은 무능했으며 그나마 의연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주만 : 묘하게 설득되는데.

성현 : 그리고 달솔이라는 계급이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거든. 신분제 사회인 백제에서 좌평이나 달솔은 왕실, 종친에게 내려주는 벼슬인데 말이야.

수진 : 잘 생각해봐. 5,000의 병력으로 5만명을 상대로 4차례나 전투에서 이기고 마지막 전투에서 졌다면 1:1로 보았을 때 백제군의 전력이 우세했다는 이야기가 되지. 마지막 전투야 나이어린 화랑이 전장에서 죽는 것을 보고 갑자기 기세가 올라서 신라군이 이긴거니까.

주만 : 애들아 도착했어. 비온다 우산 꺼내야 되겠다.


계백장군묘

소희 : 군사박물관인데 꼭 현충사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

진수 : 저기 세워져 있는 목책이 황산벌 전투때 백제군 진영을 재현해놓은 거야.

주만 : 저런 곳에서 어떻게 5만 명을 막아. 난 불가능하다고 봐.

수진 : 글쎄 계백은 황산에 의지해 3영을 설치했었거든. 세 개로 나뉘어서 한 부대가 싸우다가 유인하면 나머지 부대가 협공하는 방식으로 공격한데다가 달아나는 길목에는 계백과 정예군이 차단하기도 하고 2천 여명의 병력이 학익진처럼 더 많은 신라군을 포위하다가 갑자기 천이 넘는 군사들이 뛰쳐나와 화살처럼 신라군 중앙을 급습하는 등 대처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을거야.

주만 : 오~ 멋진데. 치사하게 신라는 당나라를 불러들여서 말이야.

성현 : 저기가 계백장군의 묘야. 왕릉 같지. 차라리 계백장군처럼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기에 자신의 이름이라고 붙은 묘가 남아 있지. 백제시대의 릉으로 무녕왕릉을 제외하고 송산리 고분 5호, 6호나 왕들의 무덤이라는 능산리 고분군이나 귀족들의 무덤이라는 능안골 고분군 모두 누가 주인인지 모르잖아.

주만 : 듣고보니 그러네. 나도 무녕왕릉뿐이 몰라.

수진 : 김유신이 계백을 설득도 했다고 하던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거든.

소희 : 아까 그랬잖아. 전략의 하나였지 백제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구. 그리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전략 아니야?

진수 : 신라의 김유신이나 김춘추는 자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700여년의 역사동안 신라와 백제는 치고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전란의 참화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통일도 방법이라고 볼 수는 있지.

소희 : 나는 철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인물을 해석하는 것은 양날의 칼같은 느낌이 들어. 예를 들어 장예모의 영웅과 정소동의 진용에서 진시황을 바라보는 것이 다르잖아. 영웅에서 진시황은 혼란한 시기를 끝내고 하나의 나라로 합쳐져서 전쟁이 없는 나라로 만든다는 내용이고 진용에서 진시황은 포악한 군주에 가깝잖아. 역사는 승자의 논리대로 흘러가니까.


백제계백장군지묘

주만 : 철학적인데? 잘 몰라도 난 소희에게 한 표

진수 : 하여간 너는 소희 말만 나오면 무조건 동의한다니까. 성현아 거기서 뭐해?

성현 :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 진짜 계백장군일까? 어떤 기록에서는 김유신의 지시로 계백의 시신을 찾아 황산벌의 가묘를 만들어 묻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기록에서는 백제 백성들이 몰래 계백의 시신을 수습하여 가묘를 만들었다는데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네.

수진 : 글쎄 정확하지는 않을수도 있어. 계백장군의 묘가 발견된 것은 1966년이고 계백이 전사한 이 660년이니 무려 1366년 이후에 발견된 거니까. 그냥 가매장하였다라고 전해 내려오는 장소가 가장곡이고 그곳에 묘가 있었으니까 맞아 떨어진 거지. 멀 심각하게 고민해 ㅎㅎ

주만 : 그래 그래 가자. 진수야 여기 말고 볼 곳은 없어?

진수 : 근처에 자연학습공원 하나 있어 거기나 보고 가자.

성현 : 너희들은 계백장군의 그 장렬함이 느껴지지도 않냐? 660년 7월 9일 결사대 5천을 이끌고 나갔던 계백 다섯 번째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하다.

수진 : 그래 장렬하다 장렬해. 비온다 차에 타자.

소희 : 그럼 거기 공원 들렸다가 가는거야?

주만 : 응 거기만 들렸다가 출발하자고. 진수말로는 가볼만 하대.


계백장군묘에 들어가기전에 위치한 자연생태학습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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