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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이 온다.

공간은 정겹게, 풍경은 따듯하게, 사람은 생각한다.

매월 첫 번째 글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한다. 매년 첫 번째 글은 어떤 글이 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한다.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할 때 실수가 생기게 된다. 사람의 마음, 풍경,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세상일이건만 내 마음 같지만은 않다. 풍경 혹은 야경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경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속에 독특함을 가지며 고유성을 가지며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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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면 그런 것이다. 홀로 나선 대덕구의 송촌동의 여행길, 한시진의 걸음길 끝에 도착한 송촌공원에서 입구 안으로 들아선 한 사람의 눈앞에 색다른 야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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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조명이 있어야 한다. 조명을 설치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의 한 모습일 텐데 그걸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모습이다. 어릴 때 제법 그림 좀 그리기도 했고 상도 받은 적이 있어서 가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그만큼의 여유는 없다. 좋은 글만 쓰기에도 시간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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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면 동춘당공원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공간이다. 동춘당 송준길의 역사적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동춘당은 굳건히 이곳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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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라는 화가는 주체의 보이지 않았던 형상에 뚜렷한 가시성을 부여했던 사람이다. 그의 '두 남성이 있는 저녁 풍경'을 보면 액자를 열고 들어와 자신의 뒷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그렸다. 고택의 하나하나를 보면 그 디테일이 살아 있다.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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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공원의 야경은 고택이 만들어내는 모습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모습이 있고 길에서 길로 이어주는 야경으로 구분을 해볼 수 있다. 이곳으로 인해 도심 속에서 새로운 모습이 연출된다. 별빛은 빛대로 밤하늘에서 빛나고 조명은 조명대로 공원의 색감을 만들어낼 뿐이다. 한 사람의 호가 이름을 가진 공원이 된 것을 보면 장소가 자신의 흔적으로서 역사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공간이라는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그 창고를 관리하는 것은 장소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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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정겹게, 풍경은 따듯하게, 사람은 생각한다. 은진(恩津) 송 씨 송준길의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던 그는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20여 년 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머물면서 학문에만 전념했던 송준길은 나이가 들어 보양관으로 잠시 봉직한 것을 제외하고는 관직에 발을 끊고 회덕에 머물러 살면서 여생을 마쳤다. 송촌동은 회덕의 한 지역이었지만 대전의 성리학 거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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