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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02. 2016

예고범

노력으로 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2015년을 강타한 단어가 있다. 헬조선, 흙 수저, 노오~력 이다. 2016년에는 그 단어들을 잊을 수 있을까? 아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수출부진이  지속될수록 그 단어들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여 우리 앞에 나올 것이다. 일본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다. 지금 한국의 고용불안 문제는 이미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앓아온 고질병 같은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다. 촘촘한 법제도에 기반한 일본의 국민성은 한국보다는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일명 루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도 있고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저랑 어울리기를 꺼려한다. 경쟁이 격화된 일본 사회의 시스템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예고범이다. 신문지로 얼굴을 가린 채 범행을 예고하는 이 단체는 법의 신판을 빠져나간 범죄자를 처벌하고 이를 찍어 인터넷에 유포한다. 불법이다. 그런데 그 불법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도쿄 경시청 사이버수사대의 에리카는 수사를 하지만 번번이 대중들의 비협조에 막히게 된다. 에리카는 초기에는 그들이 노력을 덜했고  그것에 대한 불만을 사회로 돌리고 있다고 판단해 버린다. 자신 역시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건을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에리카는 그들이 처했을 상황에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그들이 되지 않고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적인 문제이든 경제적인 문제 이든 간에 그들만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라 비정하다는 것을 잘 그려냈다. 비정한 현실을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비현실적으로 전개하는 한국영화와 일본 영화가 다른 점은 그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사건을 온전히 따라가는 사람은 수사과의  에리카뿐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성을 잘 이해하고 쫓아간다. 우리는 사회적 살인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방조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 영화이다. 


 자신을 지켜줄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은 사회에서 냉대를 받을 때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희망' 그런 달달한 것이 사회에 있기나 한가. 저 네 명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소박하지만 조그마한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바랐던 것인가. 신문지 한 장도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들이 내미는 손을 외면하지 말자. 


주인공은 끝에 왜 멋있어(이건 좀 비현실적) 보이려고 하는지.... 이게 일본 소설, 드라마, 영화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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