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전팽령 옥천 양신정에서 독서하다.

요즘에는 꽃을 보는 것도 드라이브 쓰루를 통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일상이다. 한가한 곳을 찾아가야 더 마음이 편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양성은 자연의 본성으로 이것과 저것, 정상과 비정상을 분멸하지 않고 오로지 분별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이며 독특한 삶을 누려왔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독서에서 비롯이 된다. 지금의 사람들은 독서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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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전팽령이 독서를 위해 찾았던 곳을 굳이 찾아가보았다. 전팽령은 천성(天性)이 순후(醇厚)하여 자신을 드러냄이 없었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기색(氣色)에 드러내지 않았다. 남을 상대할 때에는 한결같이 정성과 신의로써 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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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팽령이 독서를 위해지어 놓은 정자 양신정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문신인 전식의 목담영당이 자리하고 있다. 목담영당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산 73-1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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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세 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민도리집의 전면 빈칸에는 툇마루를 두고 후면 1칸은 동칸으로 영정을 봉안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두고 두변에는 막돌담장을 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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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담영당의 뒤로 올라가 보면 전팽령이 독서를 위해지었다는 정자가 나온다. 벼슬길에 나선 지 37년 동안에 네 번이나 주군(州郡)을 맡아서 다스렸는데도 집안에 한 섬 정도의 쌓아 둔 양식 저축이 없었으나 공은 오히려 느긋하고 편안하게 지내었기에 마음 편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적게 벌 때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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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팽령은 만년(晩年)에는 벼슬을 내던지고 집에 돌아와서 산수(山水)로써 자오(自娛)하였으며, 조정에서 누차 공을 현직(顯職)에 제수하였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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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정은 후손들이 조상의 유적(遺蹟)을 아끼느라 단청(丹靑)하여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전팽령(全彭齡)이 밀양부사(密陽府使)로 있을 때 퇴직 후 쉬기 위한 장소로 지었는데 1545년(인종 1)인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20년(광해군 12) 중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28년(순조 28)에 다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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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생각하게끔 하고 고민하고 나아가게 하는 독서는 책 속 옛사람과 자연 만물을 벗 삼아 고요하게 살게 만들어 준다. 양신정에 가만히 앉아서 있으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삶이 유지되듯이 정신의 온도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다. 지금은 정신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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