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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3. 2020

삶의 길

전팽령 옥천 양신정에서 독서하다. 

요즘에는 꽃을 보는 것도 드라이브 쓰루를 통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일상이다. 한가한 곳을 찾아가야 더 마음이 편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양성은 자연의 본성으로 이것과 저것, 정상과 비정상을 분멸하지 않고 오로지 분별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이며 독특한 삶을 누려왔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독서에서 비롯이 된다. 지금의 사람들은 독서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을까. 

옥천의 전팽령이 독서를 위해 찾았던 곳을 굳이 찾아가보았다. 전팽령은 천성(天性)이 순후(醇厚)하여 자신을 드러냄이 없었으며기쁨과 노여움을 기색(氣色)에 드러내지 않았다남을 상대할 때에는 한결같이 정성과 신의로써 대하였다고 한다.  

전팽령이 독서를 위해지어 놓은 정자 양신정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문신인 전식의 목담영당이 자리하고 있다. 목담영당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산 73-1에 자리하고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민도리집의 전면 빈칸에는 툇마루를 두고 후면 1칸은 동칸으로 영정을 봉안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두고 두변에는 막돌담장을 쌓아두었다. 

목담영당의 뒤로 올라가 보면 전팽령이 독서를 위해지었다는 정자가 나온다. 벼슬길에 나선 지 37년 동안에 네 번이나 주군(州郡)을 맡아서 다스렸는데도 집안에 한 섬 정도의 쌓아 둔 양식 저축이 없었으나 공은 오히려 느긋하고 편안하게 지내었기에 마음 편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적게 벌 때 마음이 편하다. 

전팽령은 만년(晩年)에는 벼슬을 내던지고 집에 돌아와서 산수(山水)로써 자오(自娛)하였으며조정에서 누차 공을 현직(顯職)에 제수하였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양신정은 후손들이 조상의 유적(遺蹟)을 아끼느라 단청(丹靑)하여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전팽령(全彭齡)이 밀양부사(密陽府使)로 있을 때 퇴직 후 쉬기 위한 장소로 지었는데 1545년(인종 1)인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20년(광해군 12) 중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28년(순조 28)에 다시 지은 것이다. 

스스로를 생각하게끔 하고 고민하고 나아가게 하는 독서는 책 속 옛사람과 자연 만물을 벗 삼아 고요하게 살게 만들어 준다. 양신정에 가만히 앉아서 있으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삶이 유지되듯이 정신의 온도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다. 지금은 정신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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